세상 살기 참 팍팍하다고 합니다. 이럴 때 필요한 일이 무엇일까요. 서로의 손을 잡아 주는 일입니다. 서로의 온기를 나누며 희망을 전해야 합니다. ‘연대’란 말이 자연스러워 지는 요즘입니다. 그래서 희망을 주고받는 현장을 찾았습니다. 두드러지지는 않지만 현재보다 미래를 위해서 작은 사다리를 놓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아보았습니다. ‘살 판’은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사진 배우길 잘했다”

사진작가 장근범(36·사진아카이브 8)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남긴 글이다.
지난 25일 그는 승합차에 조명과 스크린 등 스튜디오 장비를 가득 싣고 군산 모세스영아원을 찾았다. 군산모세스영아원. 지난 1958년 일심원이란 이름으로 문을 열었다. 가정에서 버림받은 만 6세까지 아이들이 돌봄을 받고 있는 기관이다. 모세스영아원 실내에 간단한 사진 스튜디오가 꾸며졌다.

“영찬아~, 여기~~ 까꿍~~”

영아원 선생님들의 부름에 고개를 돌리는 아이들 위에 무지개 색 비눗방울이 내린다. 아이들은 산타할아버지 모자와 루돌프 사슴뿔이 머리에 쓰거나 두르고 카메라 앞에 선다. 아이들을 향해 계속 셔터를 누르던 그는 잠시 카메라를 내려놓으며 붉어진 눈시울을 훔친다.

그의 ‘희망사진관’은 이렇듯 항상 기쁨과 함께 잔잔한 슬픔도 같이 담는다.

“처음 문화누리사업단으로부터 받은 제안은 축제 현장에 가서 100명의 영정사진을 찍어 달라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100명이라는 사람들의 사진을 찍는 것이 나름 의미는 있겠지만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사업단과 함께 고민을 했습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사진이 꼭 필요한 사람을 찾아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사연을 받았습니다. 사진이 왜 필요한지 말입니다. 편지로 사연을 받아 대상자를 정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저와 대상자들이 촬영이전 이미 소통이 이루어 졌습니다”

사연은 참 다양했다. 가족사진, 돌 사진 등 흔할 것 같은 기념사진 촬영을 제대로 못해본 사람들이 많았다. 편지에는 사진촬영을 희망하는 사람들의 구구절절한 이야기가 있었다. 결국 많은 고민 끝에 희망사진관 개업(?)사진은 그룹홈(소규모 아동보육시설) 아이들이 차지했다.

지난 5년 동안 희망사진관 작업을 해 온 그는 작업의 퀄리티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사진의 퀄리티가 떨어지면 대상자들이 단순히 봉사를 받는 기분을 느낄 수 있기에 더 긴장해서 작업을 한다. 특히 그에게 ‘대상자’는 ‘대상자’가 아니다. ‘좋은 사진이란 사진을 찍는 사람과 찍히는 사람 간 감정적 연대가 있어야 만들어진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복지는 한 쪽에서 일방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준다고 만 생각하면 오래가지 못합니다. 작업을 통해 서로주고 받는 행복이 있을 때가 바로 모두가 ‘복지’를 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 작업은 항상 대상자들과 같이 합니다. 그들이 원하는 사진을 대화를 통해 파악하고 그들이 원하는 이야기를 사진에 담습니다. 사진을 찍으면서, 보면서 같이 교감하는 행복 때문에 지난 5년 간 희망사진관을 놓지 못했습니다”

올해 그는 도내 여러 시군에서 희망사진관을 열었다.

지난 24일 부안에서는 어르신들이 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사진을 찍었다. 소방도로 개설로 곧 사라질 마을 골목길에서 이미 멀어진 청춘의 기억을 되살렸다. 또 대학 학사모를 쓰면서 석사, 박사 자녀의 모자 솔 위치를 기억해내고 그 사진을 자녀들의 사진과 나란히 걸고 싶다는 어르신도 있었다. 무주에서는 할머니 손에 부케를 쥐어 주며 ‘리마인드 웨딩’ 촬영을 통해 여전히 꽃다운 신부임을 확인시켜줬다.

순창에서는 소규모 초등학교 전교생에 카메라를 쥐어 주며 내년에 졸업하는 2명의 선배를 위한 ‘졸업앨범’ 촬영을 같이하고 남원에서는 1회용 필름 카메라를 이용한 문화예술교육도 병행했다.

28일 그는 두 번째로 모세스영아원을 방문했다. 지난번 실내 촬영에 이어 영아원 앞 이영춘 가옥 앞마당에서 야외 촬영을 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앨범은 아이들이 가정으로 입양을 가거나 만 6세가 넘어 다른 시설로 옮길 때 같이 가져간다.

문영희 모세스영아원팀장은 “돌봐줄 부모기 없어 여기에 오는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성장 앨범을 만들어 주고 싶어 이 사업을 신청했다. 전문가들이 사랑으로 만들어 준 앨범이 아이들이 씩씩하게 성장해 나가는데 작은 힘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현장이 답’이라는 장근범에게 희망사진관은 사진 이상의 의미다. 그에게 사진은 경제 활동을 위해 찍는 것이 아니라 한 장 한 장에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세상을 바라보는 또 다른 창인 것이다. 국정교과서 반대 등 정치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은 것, 소외받고 있는 이웃에 대해 눈길을 놓치지 않는 것도 더 좋은 세상을 향한 희망을 놓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작업했던 사진들은 액자나 앨범으로 만들어 오는 크리스마스 즈음에 전달할 계획입니다. 사진을 펼쳐보며 모두가 행복한 연말을 보냈으면 합니다”
/이병재기자·kanadasa@

▲희망사진관은?

▲ 장근범 작가

전북문화누리사업단이 운영하는 기획사업으로 지난 2011년 문화카드를 발급받지 않은 소외계층을 중심으로 시작했다. 지역적?신체적 한계를 가진 대상자를 위한 찾아가는 서비스를 기반으로 하는 맞춤형 프로그램이다. 대상자에게 문화예술을 통한 새로운 체험 제공하고 개인뿐만 아니라 마을이나 단체를 통해 지역 공동체를 되살리고자 하는 목적이 있다. 지난 2011년 전북에서 최초로 기획, 실시했으며 그 해 문화이용권 우수기획사업으로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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