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도시락 반찬 배달 봉사하는 날이다. 매주 한 차례씩, 3년하고도 석 달이 넘게 꼬박 배달했다. 도시락 반찬을 통해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하는 ‘전라광장’ 회원들. 상부상조 정신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의 이야기다.

8일 오전 11시 전주시 도토리골 우리노인복지센터 마당. 전라광장 회원 10여명이 도시락을 손에 들고 모였다. 이날 아침 복지센터에서 만들어 준 도시락 반찬을 구역별로 배달하기 위함이다. 169번째 배달이다.
중장비 부품관련 일을 하는 정영근씨는 도토리 골 코스를 맡았다. 이 코스에는 혼자 사는 어르신 다섯 분이 도시락 반찬을 받는다. 두 명이 나란히 걸어가려면 어깨를 부딪칠 수 밖에 없는 좁은 골목을 지나간다. 첫 번째로 거동이 불편한 김모씨에게 들려 가벼운 인사를 나눈다. 두 번째 방문한 집은 김성자(가명)씨. 대문을 지난면 바로 보이는 연탄보일러가 꺼져 있다. “보일러가 고장이 난 것 같다. 보일러가 오래된 제품이 아닌 것으로 봐서 아무래도 몸이 불편하니 관리가 잘 안된 것 같다”며 안타까워 한다. 이 코스 마지막 집에는 반가운 손님이 와 있다. 센터에서 근무하는 복지사가 어르신과 함께 있었다. 서로 잘 아는 사이라며 인사를 건낸다. 오늘 정영근씨의 도시락 반찬 배달은 여기까지다.
 “제가 도시락을 배달해 주던 어르신 가운데 두 분이 세상을 뜨셨어요. 배달을 가려는데 어르신이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으면 인생이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죠”
기억에 남는 일을 말해달라는 요청에 이렇게 대답하며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며 얘기를 계속한다.
“보호 대상자 선정 기준에 문제가 있어요. 돌아다니다 보면 정말 도움이 필요한 분인데 제대로 보호를 못 받는 경우가 제법 있어요. 자식이 있거나 본인 앞으로 재산이 있다는 이유로요. 하지만 자식이 돌보지 않거나 본인이 활용할 수 없는 재산인 경우가 꽤 있어요. 이런 분들은 말 그대로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다고 볼 수 있죠”
그러면서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단체가 많이 있고 해외 개도국에서 봉사를 하는 사례도 여럿이지만 도움을 필요로 하는 가까운 우리들 이웃부터 살피는 게 더 중요하게 느껴진다고 덧붙인다.
어은골 코스로 도시락 반찬 배달을 다녀 온 송현숙(가명)씨는 올해 1월 전라광장에 가입했다. 한일문화교류 현장에서 만난 전라광장 회원의 권유로.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다는 취지에 공감했다.
지난 여름 무더위 속에 방문한 집을 잊을 수 없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아파트 4층 대상자집을 올라가 문을 두드리니 대답이 없었다. 혹시, 무슨 일이 있지 않았을까. 조마조마 한 마음이었지만 5분여가 지나자 문이 열렸다. 나중에 알았지만 어르신이 몸이 불편해 평소 문 여는 시간이 길은 편인데 날씨까지 무더워 더욱 시간이 걸렸다는 것이다. 같이 갔던 회원이 아무 일 아이라는 듯이 기다린 마음을 알게 됐다고 한다.

전라광장은 지난 2008년 10월 10일 창립됐다.
창립회원인 이종진씨는 상부상조가 전라광장의 목표라고 얘기한다.
“회원 애경사만을 챙기는 기존 사회단체들과 달리 애경사와 함께 회원들이 혼자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닥쳤을 때 서로 도울 사항이 있으면 서로 돕자는 취지로 단체가 꾸려졌다. 이 과정에서 개인적 욕심보다는 사회적인 문제, 즉 약자에 대한 관심과 지원 의사가 있는 분들이 자연스럽게 모였다”
방용승 회원도 “기본적으로 친목 모임이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보호가 필요한 부분이 많다. 우리 사회 아픔을 함께하자는 차원에서 ‘시간 나는 사람들’ 위주로 세월호 문화행사에 동참하기도 했다. 약자에 대한 관심과 보호가 우리 모임의 중요한 가치다”고 덧붙인다.
그래서 전라광장은 자발적 동참을 원칙으로 한다. 절대 강요가 없다. 회원 가입도 별다른 제약이 없다. 회원의 추천만 있으면 가능하다. 전라광장의 도시락 반찬은 외부 지원없이 회원들이 마련한 회비로 준비된다. 필요한 경비를 우리노인복지센터에게 전달하면 센터에서 도시락 반찬을 만들어 준다.
도시락반찬 배달은 대부분 도토리골 1길~3길에 있는 다섯집과 어은골 4집, 덕진동 3곳. 평화동 3곳 등이다. 배달 가정은 우리노인복지센터에서 지정해 준다. 센터는 재가노인복지사업, 노인돌보미바우처사업 등을 펼치고 있는 전문복지기관으로 박현정 원장이 전라광장 회원으로 활동하는 인연으로 도시락 배달을 돕고 있다.
전라광장 예산은 모두 회원들 주머니에서 나온다. 회원들은 연 40만원의 회비를 낸다. 절반은 회원 애경비로, 절반은 도시락 배달에 사용한다. 이와 함께 매년 1월 특별 경매를 통해서도 예산을 마련한다. 올해 1월 대략 500만원이 경매를 통해 모아졌다. 회원들이 소장하고 있는 애장품을 경매에 내놓는 특별경매는 내년에도 이뤄진다.
박영준 전 회장은 “전라광장은 약자를 돕고, 소외된 이웃과 나누는 것을 목표로 한다. 특히 전라광장은 개인보다는 함께를 중시하며 진보적 지성에 동의하는 회원들의 자발적 동참으로 이루어진 단체”라며 “우리 사회가 더불어 행복해지는 꿈을 이루기 위해 회원들은 정성을 계속 모을 것이다”고 강조했다.
/이병재기자·kanadasa@ /사진=장태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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