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들어 종남산 마루에서 울리는 풍경소리는 예사롭지 않았다. 서방산에서 급하게 종남산을 타고 내려오는 깊고 예리한 겨울바람 탓은 아닌 듯하다. 아직껏 남아있는 몇 개의 마른 참나무 잎이며, 무겁고 짙은 빛의 솔잎들이 부산하게 떨고 있는 것을 어찌 바람 탓이라 할까? 새로운 한해를 맞아들이는 성스러운 울림이라고 볼일이다. 이 울림들이 종남산 아래 송광사 대웅전 추녀 끝에 달려있는 풍경을 거들고 있다. 때마침 한 낮이어서 햇살은 청명하고 땅 밑 온기가 피어올라 대웅전 앞마당은 윤기가 흐른다. 하늘과 땅의 조응이 예사롭지 않게 새해의 기운을 피우고 있는 중이었다. 종남산(終南山)은 이곳이 남쪽 끝 지점이라는 것을 알린다. 이제 예서부터는 남극으로 이어지는 남해바다라는 뜻일 게다. 바다는 신들의 세계이다. 바다는 소리 변화를 따라 “밝다”에서 생겨났고, 태양이 머무는 신들의 세상이라는 말이다. 아마도 큰 빛인 태백(太白)이 덕유를 지나고 운장을 내려와 서방산에서 잠시 쉬었다가 마지막 머물렀던 곳이 종남산이었다. 그래서 종남산 앞 들녘을 소양(素陽)이라 불렀다, 그 연유로 종남산 발아래에 송광사를 세웠을 것이다. 송광사는 예사 사찰이 아니었다고 한다. 기록에 의하면 소양천이 흐르는 산골 입구에 일주문이 있었다 하니 그 규모를 상상하기 어려울 만하다. 오도천을 따라 길게 자리 잡았을 송광사가 오늘은 누추하기만 하다. 그렇더라도 어찌 체격으로만 가늠할 일은 아니다. 송광사의 풍경소리가 이처럼 가슴 속 가득히 차고 드는 연유가 있었던 까닭이다. 종에 물고기를 메달아 소리를 내는 까닭을 불가에서는 고기가 항상 눈을 뜨고 있듯이 언제나 깨어있으라 하는 뜻이라 하나, 어쩌면 이곳이 바다라는 것을 상징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혹시라도 아둔한 인간들의 깨달음이 미치지 못할까 염려했던 탓일까? 일찍이 삼국유사를 쓴 일연은 “물고기는 부처의 그림자”라고 지적했다 한다. 그리고 종은 점성(占星)의 상징으로 종이 울리는 것은 하늘의 시간을 알리는 것이다. 이유야 어찌되었건 오늘 송광사의 풍경소리는 커다란 풍악처럼 들려오고 있었다.

옛 사람들은 우리 음악을 풍악이라 하였다. 사람이 부르는 것을 소리라 하였고, 악기가 내는 연주 소리를 풍악이라 하였다. 풍악(風樂)은 사람이 내는 소리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렇다고 어찌 단순한 바람(風)소리였을까. 그것은 하늘의 소리라는 말이었다. 뿔 달린 벌레(?)는 하늘의 사도(司徒)였다. 움집(?) 즉 부도 안에 사는 그들은 천국의 지혜를 전해주는 천사들이었다. 그들의 소리를 옛 사람들은 바람이라 불렀다. 풍경이 불가에서 세상을 밝히는 도구로 쓰인 까닭일 것이다. 인간의 나태함을 깨우치고 세상의 빛을 열어주는 소리가 그 소리였다. 그런데 오직 송광사에서 신비한 풍악을 들을 수 있다. 사실 대웅전의 풍경소리는 종남산의 바람이 이는 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대웅전 깊숙한 곳에서 하늘의 사도들이 연주하는 풍악이었다.

송광사 대웅전은 여느 사찰의 것에 비해 특별히 체구가 크지는 않지만 단장을 한지가 오래지 않아 매끈하고 매무새가 깔끔하다. 내부는 더욱 화려하고 웅장하여 불국(佛國)의 모습을 한눈에 알게 한다. 불당 안에는 과거 세상과 현재. 그리고 미래세상을 밝혀 준다는 3세불인 석가모니와 약사불과 아미타불 등 체구가 큰 3분의 부처가 앉아 조용히 풍악을 듣고 있다. 만발한 연꽃이 가득하고 또한 거대한 용들이 부처를 맴돌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송광사의 매력은 풍악에 있다. 11분의 비천(飛天)들이 풍악과 춤으로 공양하며 3세불을 찬양하고 있는 것이다.

비천들은 전면과 좌우 천장 가장자리에서 날고 있다. 춤을 추거나 악기를 연주하고 있는 형상들인데 모두 하늘에 떠 있는 모습으로 옷자락은 바람에 날려 한껏 우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불전에 핀 연꽃들이 연주소리에 맞춰 하늘거리듯 화려하고, 대들보를 타고 노는 용들의 움직임은 한층 활발해 보인다. 묵선은 굵고 힘이 넘치고 있으나, 천사들의 유연함을 돋보이려 가급적 절제하였다. 화면 가득하게 그려져 움직임들이 더욱 웅장하고 장엄한 느낌을 준다. 전체적으로 옥색 바탕에 또한 옥색 비단을 주로 활용하여 고아하고 깊은 화려함이 넘친다. 절제된 색채 속에서 간간히 붉은 색, 황색 등이 더욱 감각적이고 생동감을 강조하며 한층 신비감을 부추기고 있다. 무엇보다 화면 가득히 나풀거리는 옷자락들이 매우 환상적이라 할만하다. 11분의 비천들 중 여섯 천사들이 장고, 북, 바라, 나발, 비파, 피리 등 6가지 악기를 연주하고 있으며, 천도를 헌정하는 천사와 함께 승무, 비상무, 무당무, 신도(神刀)무를 추는 4명의 비천들의 춤은 참으로 역동적이며 활기가 넘친다. 춤을 추는 인물들은 물론이려니와 악기를 연주하는 인물들도 모두 소리에 리듬을 타며 춤을 추고 있는데, 바람에 날리는 옷자락은 천사들의 날개를 드러내는 메타포이다. 특히 온 몸을 감싸고 있는 고름이 하늘로 날리며 소리를 더욱 우아하게 세상 밖으로 전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이처럼 하늘에 날리는 고름은 뱀의 도상이며 뱀은 바람과 다르지 않은 기능자로서 신의 소리 전달자이다. 이렇듯 송광사는 세상 남쪽 끝자락에서 풍악을 통해 신의 의지를 전하고 있다.

그렇더라도 송광사는 소박하기가 평범한 여느 아낙과 다름없는 행색을 하고 있다. 작고 소탈해 보이는 일주문은 마치 성전의 화혈(花穴)처럼 절 입구에서 대웅전과 일직선에 자리하고 있다. 화혈은 태양을 받아들이는 문이다. 그리고 풍악을 통해 그 햇살은 다시 소양에 머문다. 맑고 깨끗한 빛이라는 뜻의 소양(素陽)은 그래서 신들의 놀이터이다. 소양을 가로지르는 오도천 물이 봉황이 노는 위봉사 가슴에서 솟는 물이고, 그 물은 또 용들의 놀이터인 용진으로 젖어든다. 소양에서 풍악이 울려야 하는 연유가 간단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곳이 신들의 세상이고 바다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새해 들어 연일 붉은 태양은 소양에 머물고 있다. 아마도 송광사에 들러 풍악을 즐기려하는 것일 것이다. 송광사의 풍악소리는 사실 3세불을 위해 연주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오도천과 소양천 그리고 또 만경강을 붙잡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소리임이 분명하다. 새로운 한해를 맞아 송광사에 들러 풍악을 담아 가야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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