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마토를 선보이며  파이팅을 외치고 있는 회원들.

최근 영농조합법인이 등장하면서 새로운 농법을 선도하는 집단으로 나서고 있지만, 아직은 농촌에서 최고의 노업 기술력을 갖춘 집단을 꼽자면 '품목연구회'다. 한 농작물에 대한 재배법 연구와 판로 확보까지를 고민하는 농업인 위주의 '품목연구회'는 전북지역에 약 400여개 존재한다. 이들 모임은 앞서간 선배의 기술을 배움으로써 경쟁력을 확보하고, 상호 협조로 문제를 쉽게 해결할 뿐만 아니라, 해당 품목의 미래를 함께 고민하면서 경쟁력을 강화해 간다. 어려워지는 영농 현실 속에서도 농업·농촌의 뿌리와 기반 역할을 하고 있는 것도 '품목연구회'다. 정읍시 토마토 생산을 주도하고 있는 '정읍시 토마토연구회'를 찾아 연구회의 존재 이유를 들어봤다./

◆품목별연구회란

품목별농업인연구회(품목연구회 또는 농업인연구회)란 영농기술 향상과 협동경영에 관심이 많은 회원들이 자율적으로 만든 조직체다.
회원들은 주로 한 지역에서 특정 품목을 주로 생산하는 전문농업인들이며, 이들의 기술력과 경험의 전문성은 해당 지역에서는 전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소위 '농업인의 힘'으로 통하는 '품목연구회'는 이러한 이유로 정부·단체로부터 현장견학, 연찬회, 연구모임, 교육 등의 지원을 우선순위로 받는다.
이들의 기술력과 시장 장악력, 지역 네트워크는 정부의 우선 지원을 가능케 하기에 충분하다.
이들은 소지역, 소규모로 비료와 농약 등을 공동구매하고 같은 작물을 생산하는 작목반과 차별될 정도로 시군단위 모임이 주를 이루며, 블루베리·오디 등 신생 품목회까지 전북지역에 약 400여개 '품목연구회'가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생산, 선별, 유통 뿐만 아니라 해당 품목의 미래까지 고민하는 연구모임으로, 지역 농업인 경쟁력의 척도 역할도 한다.

◆정읍시 토마토연구회

2005년 50여 농가가 참여해 시작한 '정읍시 토마토연구회'는 지역 내 토마토 생산자들이 공동선별을 위해 모인 단체다.
연구회는 2006년 정읍시 토마토명품화사업 5개년 개발 사업 대상에 선정돼 정부로부터 48억원을 지원 받아 소형 선별장까지 갖춤으로써 지역 쌀 산업을 대체할 작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결국, 이 연구회는 타 폼종에까지 공동선별모임의 필요성을 일깨웠고, 현재는 지역내 6개 농협이 공동 출자한 정읍단풍미인공동사업법인 공동선별장을 세우는 계기가 됐다.
2008년 농협중앙회 최우수작목반상, 2015년 국무총리 표창을 수상하기도 한 '정읍시 토마토연구회'는 현재 34농가가 34ha에서 연간 완숙토마토 1,200톤을 생산해 약 3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이강인 연구회장

'정읍시 토마토연구회' 이강인 회장(56)은 1978년부터 2,000평 토경(땅에 직파)온실에서 토마토를 재배해 온 경험자로, 회원들에게 폭 넓은 기술을 전수할 수 있는 토마토 고수다.
이 회장은 "과거 토마토 농사를 배울 곳이 없어 많이 울고 다녔다. 눈이 많이 내리는 정읍에서 폭설로 비닐하우스가 모든 방향에서 찌그러지는 것을 경험했었다"고 회상하며, "이러한 시행착오를 모두 겪었기에 회원들의 고생을 줄여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회장은 "이젠 회원들 작물을 보면 상태를 바로 알고 대처할 수 있을 정도인데, 아직도 가장 두려운게 농사"라며 "내 농사가 훌륭한 모델이 돼야 회원들이 인정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연구회인 만큼 회장의 기술력은 중요하다.
하지만 이 회장은 회원들의 기술 습득 노력이 더욱 중요함을 강조한다.
이 회장은 "회원들 작물을 보면,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적용해야 하는 기술이 모두 조금씩 달라 어려움이 있고, 그래서 농사가 어렵다"면서 "회원들도 남 탓 하지 말고 기술과 경험 등 부족한 부분을 더 많이 생각하고 연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내 살길은 스스로가 찾아야 한다는게 이 회장의 주장이다.

◆연구회 성과

정읍시 토마토연구회는 매월 8일 월례회의를 개최한다.
처음엔 기술지도가 주 목적이었다.
경험 많은 선배가 교육을 주도해 이제는 회원들이 어느정도 기술 평준화를 이뤘다.
최근에는 "터 놓고 토론합시다"를 모토로, 토마토 농가가 앞으로 가야 할 방향과 사업 논의가 회의의 목적이다.
회원들은 혼자 고민하는 것보다 결론을 빨리 도출하고, 이상이 있으면 조사 후 바로 처방이 시작되기에 토론에 적극적이다.
생산을 뒷받침하는 역할이 연구회가 계속 이어져야 하는 기본 이유인 것이다.
아울러 긴급 회의 및 회원간 정보 전달 등 중요한 기능도 담당한다.
때문에 회원 관리를 1개 창구에서 진행하는 효율성을 얻고, 회원들은 정예화 돼 기업화의 길을 진행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성장한 1개 품목연구회가 신뢰를 얻어 이제는 타 품목연구회를 양산하는 시너지 효과도 내고 있다.
이강인 회장은 항상 연구하는 회원이 되기를 주문한다.
이 회장은 "타인의 지시 및 권유로 농사를 짓는 것은 항상 위험도를 안고 가는 것이며, 정부 말을 믿다가도 시련이 닥칠 수 있다"며 "회원들은 스스로가 가능한 미래를 설정해 위험에 대비하는 상상력까지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 연구회는 선진지 교육까지도 조심스럽게 결정한다.
이 회장은 "과거 유명했던 정읍 참외가 기후와 토질 등 조건이 달랐던 성주참외를 따라하다가 품질 저하로 시장에서 도태되는 경험을 했다"며 "우리 연구회의 선진지 견학은 우리와 가장 근접한 환경을 고르는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연구회 특징

'첨단온실'에서 토마토를 양액재배하는 회원들은 가공 및 요리용으로 사용되는 유럽계 토마토를 재배한다.
다년생 가지과 식물인 토마토는 이곳에서 1년씩 관리되며, 센서가 일조량까지 계산해 3중 스크린을 조정하는 자동화에서부터 외부에서 스마트폰으로 온도 및 시비량까지 조절하는 스마트파밍을 구축하고 있다.
기존 회원들이 상당수 보유한 '토경온실'의 핵심은 연작 피해 해결이다.
주로 새콤한 일본계 식용 생과 품종을 담당하는 토경온실은 연작피해를 줄이기 위해 오이, 호박, 메론, 가지 등과 돌려짓기를 해야 하는데, 연구회는 고령농 위주로 돌려짓기 품목 및 수량을 분배해 영농 공백기를 없애준다.
또한 토경온실을 주로 경작하는 60~70대 고령농들을 위해 최근 미생물농법으로 연작 장해 해결 기술을 터득, 시험 재배를 끝낸 상태다.
토마토 토경 재배 후에는 선충(회충)이 암 같은 역할을 하는데, 미생물을 활용해 선충과 바이러스를 잡는 법을 직접 보여주는 식으로 교육도 진행되고 있다.
이강인 회장은 "같은 미생물일지라도 활용법이 다른데, 회원들에게 환경 및 조건을 알려주자 180도 다른 효과을 보고 있다"고 말한다.
또 정읍 토마토는 장수, 익산 토마토와도 다른 특성을 갖는데, 고도와 기온, 물의 성질 등이 다 달라 맛과 선명도 등이 다르다.
이 회장은 "정읍이 우물 '정'자를 쓸 정도로 수량이 많고 수질이 좋은데, 이 때문에 토마토 맛이 좋고 영양소가 풍부하다"고 말한다.

◆공동선별

연구회는 농가별 생산 품종을 1종류로 단일화시켜 전문성을 강화했고, 365일 생산체제를 갖추고 3~5월 사이 약 60~70%의 토마토를 공동선별을 통해 출하한다.
회원들은 생산에 집중하고, 선별 및 판매는 조공이 담당함으로써 효율성을 높인다.
회원들은 생산만 신경쓰니 품질이 좋아지고, 공동선별은 품위를 올려 가격 협상력을 강화하는 구조다.
지난해 3월부터 새로운 조공 선별장이 생기면서 노동력이 줄고, 선별 품질도 향상되고 있다.

◆연구회의 미래

최근 이상기온과 일조량 부족 등으로 생산이 60~80일 편차가 생기며 토마토 품질 유지가 어려워졌다.
더욱이 50대 미만 회원이 3명, 50대가 4명일 정도로 고령화가 심하다.
이에 연구회는 젊은층을 최우선으로 입회 받기 원하며, 토경 기술 등 다양한 지원책으로 젊은 농부를 유도하고 있다.
다음 세대에 연구회의 농법을 전할 수 있도록 최선 다 할 계획이라고 이강인 회장은 강조한다.
고령농 은퇴 후 하우스를 회원들이 인수해 경영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그러나 연구회가 살아남을 수 있는 필수 조건은 풍부한 시장 및 적당한 가격이다.
연구회 막내 회원 박성호씨(42)는 15년 전 귀농해 7~8년 전부터 2,000평 토마토 농사를 짓고 있다.
연간 150톤 정도 생산해 2억5천만원 정도의 매출을 올린다는 박 씨는 "마진이 25% 정도로 박해 운영비를 줄이는 것이 연구 대상이 되고 있다"고 호소했다.
이에 이강인 회장은 "토마토는 각종 찌개 속에 넣어도 궁합이 좋을 정도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관련 연구가 부족해 소비가 한정적"이라며 "아울러 회원들도 소비자들이 뭘 원하는지를 항상 알 수 있을 정도로 깨어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한다"고 말했다.
여러가지 피해를 대비해 농사 교체 품목까지 염두에 두고, 타 지역 연구회와 네트워크를 통해 가격을 주도하는 등 자발적 경쟁력을 갖추는 것 등이 연구회원의 조건이자 미래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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