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지역 400여‘농업인품목연구회’는 최고의 기술력으로 선진 농법을 추구하며, 농작물을 활용한 가공과 판로 확대까지 연구하는 모임이다. 이들은 앞서간 선배의 기술을 배움으로써 경쟁력을 확보하고, 상호 협조로 당면 문제를 해결해 나갈 뿐만 아니라, 해당 품목의 미래를 함께 고민하면서 시장장악력을 강화해 간다. 점차 어려워지는 영농 현실 속에서 전북지역 농업·농촌의 뿌리와 기반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품목연구회’다. 완주군 포도연구회는 이영식 대표(63)로부터 시작된다. 35년간 포도 농사를 짓다 보니 어느덧 완주군 포도연구회 회장을 넘어 전국 포도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전문가가 됐다. 이 대표에게 우리나라 포도의 미래를 물었다.

◆완주군 포도연구회
완주군 포도연구회의 시작은‘행복한 포도밭 농부’(구 자연포도원)의 이영식 대표로부터 비롯된다. 이 대표는 고향 봉동읍에서 29세 때부터 포도룰 재배해 약 35년 가량 포도농사만 지은 배테랑 농부이다. 처음 노지에 포도를 심었다가 고생을 경험한 이 대표는 농사 5년만에 일찍이 시설(비닐하우스)을 시작했다.
이 대표는“시설화는 완주군뿐만 아니라 아마 전북에서도 처음이었을 것”이라며“당
시 전북에 하우스 포도농가가 없어 충북 옥천 등으로 하우스 포도재배 기술을 배우러 다녔던 경험이 생생하다”고 회상했다.
그는 1996년 국내 최초로 일본에 거봉포도를 수출할 정도로 기술력을 확보했고, 1997년 국내 최초로 겨울에 포도를 수확했다. 2005년엔 3년 연구 끝에 포도분재를 개발(특허 등록)했으며, 2006년 중국 감수성 우웨이시 초청 포도교육 및 1993년부터 지금까지 농업기술센터 포도대학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이 대표는 본인이 강사인 이유로 품평회에 가급적 출품을 꺼린다. 이 대표는“그런데 회원들이 성화다. 결국, 최근 다시 한 번 전국포도인 대회 품평회에출품했고, 대상을 2회 받았다”며“쑥스러운상이었다”고 말했다.
연륜과 경험에 걸맞게 농림부장관상, 친환경농업 전북도지사상, 농협 새농민상 등을 수상한 이 대표는 현재 완주군 품목별 연구모임 포도연구회 회장이자 완주군 친환경연합회 공동대표, 한국 유기농협회 교육강사, 한국 포도회 교육이사 등을 맡고 있다.

◆분산수확도 기술이다
이 대표네 포도농장은 일반 농가보다 조금큰 약 4,800평(1만6,000㎡) 규모로, 가족 5명이 농사에 참여한다. 포도농사 선구자가 짓기에는 평범한 규모다. 그런데도 평당 소득이 타 농가와 크게 비교될 정도라고 알려졌다.
무엇이 비법일까?
타 작목도 비슷하지만, 요즘 포도농사에서겪는 가장 큰 어려움이 알솎이를 하는 약 2주간의 짧은 기간 동안 숙련된 일손 다수를 구하는 일이다. 알솎이 시기는 타 농사 정식기까지 겹치면서 일손이 모자라게 돼 숙련자를 어느 정도 확보하느냐에 따라 여름 수확량이 크게 달라진다는 게 이 분야의 정설이다. 그러나 이 대표는 꽤 큰 농장을 이 대표 포함, 가족 5명이서 넉넉히 운영하며 일손에
허덕이지 않는다. 그것도 아버지(99)와 어머니(84)가 아직도 농사에 참여하고, 딸과 사위까지 5명이서 농사를 책임지니 인건비를 지속적으로 벌게 되는 효과가 있다.
이 대표는 먼저 가온 600평, 무가온 2,500평, 친환경 하우스 1,700평으로, 또는 무농약인증 1,800평, 저농약인증 3,000평으로 각각 포도 알솎이 및 수확기를 분산시켰다. 또 포도송이 길이를 늘리거나, 길이가 긴 품종을섞어 키움으로써 알솎이 시간을 다양화 해 5명이서도 알솎이를 꾸준히 할 수 있게 만들거나, 알솎이 작업 자체를 없애는 특화 기술도 보유(킹 델라웨어, 알렉산드리아 등)했다.
일거리를 분산시킨 덕분에 인건비를 크게줄이고, 알솎이 인력난으로 고생하는 일도 사라졌다. 아울러 타 농가보다 포도를 약 3개월 먼저 출하하기 때문에 가격도 제대로 받는다.
또 더 늦게까지 수확하기 때문에 순수익율이 크게 올라간다.
이 대표는“항상 가격을 내가 정할 정도는 된다”는 말로 매출이 높음을 암시했다. 또 “타 농가와 면적당 매출 및 수익은 굉장히 클것”이란 말로 이 농장의 매력을 엿볼 수 있게 했다.

◆품종 다양화로 연중 농사 만들어
일반적으로 노지포도는 8월 하순부터 10월초까지 수확한다. 그러나 이 대표네 가온(3중하우스 온열 공급)포도는 이보다 3개월 가량 빠른 5월 중순부터 수확이 가능하다. 제철 포도보다 상당히 높은 가격에 팔릴 수밖에 없다. 캠벨의 경우 일반 노지포도가 kg당 5,000~7,000원에 팔릴 때 가온포도는 5월 희소성으로 인해 kg당 평균 1만5,000원을 받는다. 한낮 온도를 25℃까지 맞춰야 하는 등 비용과 노력이 필요하고 수확량도 적지만, 대가는 충분하다.
이후, 무가온 3중 하우스에서 6월 중순부터 포도를 수확하고, 친환경비가림(1겹 비닐하우스)에서 8월 하순부터 포도를 수확한다.
이 대표네 포도는 이미 신세계, 현대, 롯데 등 국내 유명 백화점에 20년간 수확한 포도를 모두 납품하고 있을 정도로 품질과 맛을 인정받고 있다. 이들 백화점은 친환경코너에서 판매하기 위해 이 대표네 포도를 고가에 매입한다.
이 대표의 기술은 이 뿐만이 아니다. 품종을 다양화함으로써 알솎이 시기 및 가격 우위를 지켜내고 있다. 청포도, 거봉, 캠벨, 홍포도 등을 재배하는데, 품종의 다양화, 재배 환경의 다양화, 송이 길이 변화 등으로 알솎이 시기를 다양화시킴으로써 인력난을 피하고, 고가 판매를 실현하는 것이다. 특히, 이대표네 포도를 보고 포도농부들은“잎이 좋다”고 말한다. 이 대표는“잎이 열매를 키우고 당도를 만들기 때문에 잎이 좋아야 품질과 당도가 올라간다”며“이는 땅을 살아있는 토양으로 만들면 된다”고 조언했다.

◆비법은 친환경 원칙
이 대표에게 살아있는 토양 만드는 방법을 묻자“요소(비료)를 줄이고 완숙퇴비 위주로 땅심을 키우면 되는데, 타 농가들은 질소 위주의 비료 방식으로 포도를 키운다”고 지적했다. 이어“질소로 과일 살은 빨리 찌울 수 는 있지만, 사람처럼 과일도 살이 너무 찌면 성인병에 취약하고 건강성도 떨어진다”며 “작물의 불필요한 살을 빼고 건강하게 키우면 단단하고도 맛있는 수확물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가 교육에서 강조하는 점도“살아있는 토양을 만들자”이다.
이 대표는“땅이 살아야 농부가 살게 된다. 땅이 병들면 작물도 병들게 되고, 병 해결을 위해 약을 쓰게 되면 농부에게 약이 묻으면서 농부도 병들게 된다”며“반면, 땅이 살면 그런 걱정 없이 작물, 농민, 소비자 모두 살게 된다”고 친환경 원칙을 강조했다.
이 대표에 따르면 비법은 따로 없다. 작물이 흡수하기 원하는 토양을 만들면 그뿐이다. 갓 수확한 농작물이 맛있는 것은 핵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 신선도와 핵산이 하락한다. 핵산을 늘리려면 식물이 좋아하는 아미노산 토양을 줘라. 아미노산은 미생물이 만드는데, 미생물은 유기물을 먹고, 유기물은퇴비에서 나온다. 그런데 퇴비는 고추모나 상추모가 죽지 않을 정도의‘완숙 퇴비’를 사용해야 한다. 시중에서 대부분 미완숙 퇴비를 유통하는데, 완전히 완숙시켜 사용하면 된다. 이를 계속하면 건강한 토양이 되고, 작물은 이런 땅을 너무 좋아한다. 참 심플한 원칙이다.

◆스타 강사
이 대표는 겨울 농번기에 전국으로 출장교육을 다닌다. 각 시군 농업기술센터 포도
농법 교재에는 이 대표의 기술이 실려 있다. 11월은 컨설팅으로 바쁘고, 12월부터는 다시 포도농사 준비에 바쁘다. 비닐을 교체하고, 가지치기를 시작하는 등 항상 바쁘다. 그러면서도 지역 각 연구회 초청 교육은 빼먹을 순 없다. 완주군 품목별연합연구모임 회장을 4년간 맡으면서 블루베리, 감, 생강, 복숭아, 대추 등을 강의했다.
이 대표는“과실류는 비슷한 조건에 비슷한 결과를 낸다. 과일끼리도 일맥상통하는 것 이다. 모든 과일은 크고, 신선하고, 맛있고, 병 안걸리기를 바란다. 과일을 키우는 사람의 마음도 그렇다. 결국, 거기서 거기, 농사도 다 똑같은 것이다”고 정의했다.
이 대표는 너무 바쁜 이유로 이제는 가까운 완주군 내 농가들 교육에 주로 참여하며, 먼 곳은 시간적·육체적으로 피곤해 정중히 거절하는 편이다.
이 대표는“한 때 제주도 및 중국에까지 초빙돼 교육에 나섰지만, 바쁜 스케쥴에 교육 만 마치고 관광은 하지 못하는 일이 다반사 였다”며“많은 곳을 다녔지만, 관광은 초보자”라고 말했다. 이제는 특정 연구에 대한 결과물이 나오면 전국에 있는 포도농사 고수들을 불러 기술을 전파한다. 이들이 전국에 관련 기술을 전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포도의 미래
이 대표는 포도농사 강국들과의 FTA 체결을 꽤 큰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이 대표는“우리 농민들이 돈을 벌어야 하는데, 점점 문제점이 커지고 있다”며“몇 명만 벌어서는 우리 포도농가 기반이 사라진다.
농가 전체의 기술 수준을 올려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법뿐이다”고 해결책을 제시했다.
이 대표는“연중 수입포도와의 가격 경쟁 및 출하시기가 겹치는 등 영향을 받고는 있으나, 고정 판매처에 전량 납품하는 등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우리 농장을 모델로 삼았으면 좋겠다”며“매년 약 2,000명이 견학을 와 강의시간이 모자를 정도지만, 기술 교육을 요청하면 조금이나마 힘이 돼 주고 싶다”고 말했다.
또 이 대표는“일본 소비자는 일본 포도가 세계 최고라고 자화자찬한다. 실제 품질도 상당히 좋은 편이다”며“우리 소비자도 우리포도가 세계 최고라고 느끼면, 수입산 걱정이 사라지고 국내농가도 번창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포도 한 품목만이라도 그런 수준으로 끌어 올리고 싶다는 게 이 대표의 포부다.
이 대표는“수입품을 못오게 한다고 정말 그렇게 되는 것도 아니고, 불평한다고 해결 되는 것도 아니다”며“일이 편하고, 일하는 단계도 줄이는 포도 기술을 습득해 자식에게 물려주는 농사를 짓자”고 제안했다.

이영식 대표와 그의 어머니가 포도밭을 가꾸고 있다. /황성조기자·food2dr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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