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험하고 깊은 숲이 많으며 도로는 짐승이 다니는 좁은 길과 같다. 1천여 호가 있으며 좋은 밭이 없고 해산물을 먹고 스스로 산다. 배를 타고 남북으로 다니며 장사한다.”
  일본의 나가사키현에 딸린 섬 대마도에 대한 최초의 역사 기록으로 중국 ‘삼국지’에 언급된 부분이다. 여기서 보듯 대마도는 섬 대부분이 해발고도 400m 내외의 산지로 이뤄져 있다. 농경지 면적은 총 면적의 4%에 불과하다. 계단식 밭이 많고 최근까지 화전을 일구는 경우도 있었다. 토지가 협소하고 척박해 식량을 외부로부터 조달해야 했다. 여기서 대마도란 이름은 우리나라 부산 쪽에서 보았을 때 마치 두 마리 말이 마주 보고 있는 것 같다는 데서 비롯됐다.
  지리적으로 한반도와 가장 가까운 외국 땅인 대마도는 우리나라와 깊은 관계를 맺어왔다.
  고려 말부터 대마도는 우리나라에 조공을 바치고 그 대신 쌀과 콩을 답례로 받아갔다. 그런데 대마도인들은 먹고 살기가 힘들어지자 조선조 때는 해안으로 자주 침범해 노략질을 일삼았다. 이를 왜구라고 하는데 조정에서도 골칫거리였다.
  결국 태종과 세종은 대마도 정벌을 결정했다. 그리하여 세종 원년에 이종무가 이끄는 군선 200척과 병력이 대마도를 공격했다. 적의 군선을 불태우고 병사들을 죽인 끝에 도주로부터 항복을 받아냈다. 하지만 우리 측 피해도 제법 컸다. 거기에 저항도 만만치 않아 정벌은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후 대마도는 한반도와 일본 본토를 잇는 교통요충으로 역할을 했다. 조선통신사가 빈번하게 이곳을 오갔고 임진왜란 당시에는 왜군의 근거지가 되기도 했다. 지금도 대마도에서는 매년 8월 조선통신사를 소재로 한 축제가 열린다.
  그 대마도에 최근 한국인들이 적극 진출하고 있다고 일본 산케이 신문이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이곳을 방문하는 한국인은 작년 26만여 명으로 전년 대비 121%나 늘어났다고 한다. 올해도 연간 30만 명 돌파가 확실하다는 것이다. 또 한국인들의 현지 부동산 매입도 부쩍 증가하고 있다. 섬의 곳곳 토지와 건물들을 한국인들이 매입해 한국인 전용 숙박시설을 만들거나 리조트 등으로 개발한다고 전해졌다. 신문은 한국 자본이 대마도 주민 생활에 깊이 침투하고 있다고 논평했다.
  한국인들의 대마도에 대한 관심은 각별하다. 워낙 역사적으로 깊은 관계를 형성한 때문일 것이다. 지금도 경남도 등 일부에서 대마도가 한국 땅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기도 하다. 이곳에 대한 한국인 진출이 활기를 띠는 현상은 그런 의미서 단순한 투자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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