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에서 통신사 행렬을 구경하는 사람들은 모두 길 밖에 앉았다. 작은 사람이 앞에서고, 조금 큰 사람이 두 번째 줄을 서며 큰 사람은 그 뒤에 있었다. 질서정연하게 모여서는 엄숙한 분위기라 떠드는 사람은 없었다. 이러한 인파가 수천리 길에 이르렀는데 단 한명도 제멋대로 행동하여 행렬을 방해한 사람은 없었다.”
  1719년 조선통신사의 제술관으로 일본을 다녀온 신유한이 쓴 ‘해유록’의 한 대목이다. 통신사 행렬에 깊은 관심을 보이는 일본인들의 모습이 잘 그려져 있다.
  조선통신사는 일본의 막부장군에게 파견된 공식적 외교사절을 이르는 말이다. 조선 국왕이 막부장군에게 파견하는 사절을 통신사로 부르고 반대로 일본 막부장군이 조선에 파견하는 사절을 일본국왕사라고 불렀다.
  조선통신사가 파견된 것은 1429년 세종 11년 때이지만 이런 저런 사정으로 지지부진하다가 본격적으로 활동 한 것은 임진왜란 이후다. 이때는 주로 전쟁 뒷수습과 막부장군이 새로 바뀌었을 경우 축하 그리고 국정 탐색 등이 주 임무였다. 그런데 그런 정치 외교적 목적 이외에도 조선통신사는 문화사절로서 역할이 컸다. 통신사 일행은 6개월에서 1년에 걸쳐 일본을 방문했는데 당시 일본은 통신사 일행을 국빈대우로 맞았다. 그 이유는 앞선 조선의 문화를 접하기 위해서였다.
  각 번이 향응과 호위를 했는데 그 규모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성대했다. 화려하고 사치한 향응과 의전은 국가 재정을 흔들리게 할 정도였다. 조선통신사를 사상 최초의 한류라고 칭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 조선통신사 관련 한국과 일본의 기록물들이 유네스코 세계기록 유산으로 등재 되는 것이 사실상 확정됐다. 유네스코 사무국은 지난달 심사를 거쳐 이 기록물들을 내년에 세계유산으로 지정하기로 최종 결정을 내렸다. 양국을 합해 111건 333점이 대상이다. 유네스코는 조선통신사를 200년 이상 지속된 한일간 선린 우호 상징물이며 앞으로 인류가 계속적으로 보존해야 할 유산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이번 세계기록 유산 등재는 양국 정부 차원이 아니라 민간 차원의 협력으로 이뤄졌다고 한다. 한일간 껄끄러운 외교문제들이 도사린 상황서 순수 민간인들이 쾌거를 이룬 것이다. 조선통신사는 앞서도 언급했듯 문화교류로서의 의의가 더 깊다. 물론 조선 보다는 일본이 더 열광하고 반기기는 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앞으로 한일의 선린 우호관계 역시 문화적인 측면서 접근하는 게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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