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면은 임실군의 동쪽에 위치한 해발 200m내외의 중산간지로써 둔남천의 발원지이며, 임실군의 주봉인 성수산이 있는 곳이다.
전주에서 32km 지점에 있는 성수면은 삼국시대 백제의 운수현에 속하다가 고려시대에는 남원부, 조선시대에는 상동면과 하동면으로 나뉘어져 있다가 1914년 일제시대 행정구역개편으로 성수면으로 통합하여 현재는 11개 법정리에 21개 행정리 그리고 45개의 자연마을로 형성되어 있다.
인구는 850여 가구에 2,100여명에 이르고 전체 면적 중 80%가 산림으로 형성되어있다. 대부분 농업을 생계의 수단으로 삼고 있는 면민들은 쌀농사에 주력하고 있으나 일부 농가는 대규모 축산업에 종사하여 축산의 필수적 과제인 자급사료 확보를 위한 조사료생산에 힘을 기울이고 있으며, 이를 달성키 위해 겨울철 노는 땅을 이용하여 전 농토에 조사료포를 조성, 푸른 들판을 가꾸고 있다.
또한 과수산업의 발달로 봉강, 오류, 대판마을과 인근마을의 복숭아재배는 초봄 군이 주최하는 복사꽃축제의 장으로써 널리 알려지기도 한 곳이다.
고대 역사적인 측면을 살펴보면 성수산은 道詵(선도) 國師(국사)와 함께 고려태조 왕건이 기도를 한곳이고, 그 후 암자를 세워 도선암이라 불렀으며 無學大師(무학대사)와 함께 도선암에서 기도를 하고 조선을 개국하신 태조 이성계로 하여금 기도를 마친 뒤 “성수만세”라고 만세를 부른 후 도선암을 “上耳庵(상이암)”이라 불렀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특히 왕건이 직접 쓰셨다는 “歡喜潭(환희담)”이라는 글씨와 태조 이성계의 친필로 알려진 “三淸洞(삼청동)”이라는 어필은 비각을 세워 보존하고는 있지만 아직까지도 문화재로써 지정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이와 관련 태조 왕 건과 이성계가 건국을 하기 위하여 100일간을 기도하였다는 기도터가 지금도 많은 관광객을 부르고 있다.
이 지역은 태조 이성계와 관련된 조치, 왕방, 수철, 대왕리, 그리고 상이암과 관련된 지명이 많은 곳으로 유명하며, 최근에는 6.25를 겪으며 지리산과 회문산 다음으로 성수산이 격전지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로써 앞으로 행정기관이 주축이 되어 종합적인 개발계획을 세우고 매년 지속적인 투자와 함께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관리한다면 타 어느 지역에 뒤지지 않을 만 끔 좋은 관광자원이 풍부하여 군에서도 발전가능성이 가장 큰 지역으로 보고 있다.
이와 함께 구 한 말 성수면출신인 정재 이석용 의병대장과 28의사의 활동 본거지가 성수면이고 성수산 상이암과 주변지역에서 의병활동과 관련하여 모의를 하였다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또한 군민의 날에 대표적인 문화축제의 하나인 소충제는 충, 효 사상을 기리기 위하여 매년 정기적인 기념행사가 열리고 있으며, 임실군이 “충효의 고장” 이라고 부르는 용어 자체가 성수면에서 그 동안 충신과 효자, 효부가 많이 배출되었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성수면은 성수산과 자연휴양림, 왕방산과 계곡, 오봉산, 삼봉산, 덕재산, 고덕산과 함께 산 좋고 물 맑은 청정지역에서 옛것을 거울삼아 현대를 살아가고 있으며 많은 출향인사들이 학계와 재계에서 성공을 거두고, 전국각지에서 고향성수를 생각하며 활동하고 있기에 큰 힘이 되고 있다.
▲ 소충사
소충사는 임실역에서 남원쪽으로 1.5㎞지점 신촌마을에서 동쪽으로 꺽어 3㎞쯤 가면 성수면 소재지에서 장수 산서방향으로 2㎞정도 가면 나온다.
소충사는 구한말 정재 이석용장군을 주변으로 그의 휘하에서 활동하던 28의사를 배향하는 사우(祠宇)로서 성수면 오봉리 산 130-1번지 일원에 부지 2만3백여평에 분묘 2기, 사당 20평, 기념관 43평, 관리사 20평 등의 시설을 23억6천5백만원의 사업비를 투입, 1992년부터 2002년 11월까지 조성하여 항일투쟁과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순절하신 충의열사의 호국정신을 계승하기 위하여 시설한 곳으로 항일독립운동의 산 교육장으로 많은 참배객이 다녀가고 있는 임실군의 대표적인 보훈시설이다.
▲ 상이암
상이암은 천년고찰을 말해주듯이 고목들이 즐비하고 성수산줄기가 군신처럼 빙 둘러 감싸 안고 있다
상이암은 신라 헌강왕 원년 875년 가야선사가 창건하였고 그 후 조선 태조 3년(1394년) 각여선사가 중수했으며, 1884년 동학혁명때 방화로 1909년 김대원선사가 재건했다.
큰 바위를 지나면 수 백 년 된 편백나무가 자리 잡고 있으며, 우측으로 이태조가 친필로 쓴 ‘삼천동’이라고 쓴 비문이 있는데 6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1992년 8월15일에 ‘태조고황제어필’이라는 기념비를 세웠다. 그 옆의 바위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과 문구들이 새겨져 있다.
▲ 혜월당과 두곡당 부도
상이암 입구에는 전북문화재 제124호인 혜월당 부도와 두곡당 부도가 있다.
화강암으로 조각되어 혜월당 부도는 항아리모양의 몸체위에 8각형의 옥개석을 올리고 두곡당 부도는 석종형 부도로 8각의 하대석위에 고복형으로 된 탑신을 세우고 그 위에 보주를 얹은 높이 126㎝의 부도이다. /임실=임은두기자 · led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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