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시 부량면 용성리에 있는 벽골제는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111호로 지정되었다.

이름의 유래는 몇 가지 설이 있는데, 김제의 옛 지명인 벽비리국 벽골군에서 유래했다는 설과 유홍준교수의 나의문화유산답사기 에서 밝힌 “축조공사가 순조롭지 않아 고민하던 공사감독관의 꿈에 선인이 나타나 ‘푸른 뼈’를 넣으면 무너지지 않을 거라고 해서 말뼈를 넣어 둑을 완성해서 벽골제라고 이름 지었다는 것이다. 글자 그대로 ‘푸른 저수지 물’을 뜻한다는 설도 있다.

-대한민국 대표 농업유산

2018년 3월 전라북도와 김제시는‘사적 제 111호 김제벽골제’유산에 대해 문화재청에 잠정목록등재 신청을 하였으나 같은 해 5월 문화재위원회 세계유산분과위원의 심의에 따라 부결되었다.

김제시는 2016년도 벽골제의 잠정목록등재를 위해 학술연구용역을 추진했으며, 용역결과에 따라 신청서를 작성해 등재신청서를 정식 제출했으나,‘벽골제’의 구체적인 고고학증거 및 학술적 검증 부족으로 인한 대상유산의 원형 및 제반요소 특정 어려움 등이 부결의 사유로 지적됐다.

그러나 ‘벽골제’가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농업유산으로서 가치가 있다는 점은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벽골제’가 국내에서 대표적이며 가치가 있는 유산이라 할지라도 세계유산은 다른 문제다.

세계인들의 시각에서 어떠한 가치가 있는지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기준 눈 맞춤과 철저한 검증과 설명이 필요하다. 또 유산에 대한 충분한 가치규명이 선행되었는지, 향후 어떠한 연구가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준비로 다시 시작해야 한다.

-국내 최대의 대형 수로 확인

벽골제의 가치규명을 위한 학술연구는 1975년 충남대학교에서 처음으로 발굴조사를 실시한 이후 이루어지지 않다가 최근에서야 이루어졌다. 2012년부터 2016년까지의 발굴조사를 통해 그간 미확인 수문지였던 중심거의 확인 및 제방의 축조방법 등을 규명하는 등 일부 성과를 얻기도 하였으나, 풀리지 않은 과제 역시 남아있다.

우선, 벽골제의 규모이다. 벽골제를 답사해 보면, 약 2.5km라고 하는 제방과 장생거·경장거 그리고 중수비만이 남아있다. 문헌 속에 벽골제는 수여ㆍ장생ㆍ중심ㆍ경장ㆍ유통 5개의 수문이 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2012년도 발굴조사를 통해 확인된 중심거를 확인하였다.

또한 지난 2020년 5월에는 그간 문화재 지표조사 및 마을주민들에 의해 전해지고 있던 수월마을 일대 수여거 수문 추정지에 대한 시굴조사를 실시하였고 국내 최대의 대형 수로가 확인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향후 수여거 추정지에 대한 보다 정밀한 발굴조사가 이루어져야 하며, 제방의 남쪽 끝부분에 위치하는 유통거 또한 추가적으로 확인된다면, 문헌 속 내용이 입증되는 성과와 함께 제방의 전체규모 역시 자연스럽게 밝혀질 것으로 기대된다.

-벽골제 제방 축조목적

또한 오랫동안 이견(異見)이 있는 벽골제의 축조목적이다. 1975년도 발굴이후 벽골제가 330년에 축조되었다고는 하나 그 목적이 물을 담았던 제방인지 바닷물을 막았던 방조제인지에 대한 문제는 학계에서 이견이 있다. 발굴조사에서 확인된 보축제방과 토낭, 문헌기록 등을 통해 벽골제는 적어도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는 제방으로서 이용되고 있었음은 확실하다. 그렇다면 축조당시에는 어떠한 모습이었을까? 이러한 문제해결을 위해 지질조사 및 자연과학분석 등의 지속적인 연구와 함께 학계전문가들의 논의를 통해 축조목적을 규명해야 할 것이다.

단, 벽골제의 기능이 무엇이었든지 간에 벽골제를 쌓기 위해 국가적인 차원으로 백제시대에 대규모의 토목사업이 진행되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는 벽골제가 설령 방조제였다고 할지라도 그 가치는 훼손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처음 축조된 목적이 방조제였다면, 대한민국의 간척의 역사가 기존의 고려시대에서 백제까지 소급된다는 점에서, 벽골제의 가치는 더 확장될 수 있다.

-지역민과 함께 세계유산 추진

벽골제는 세계유산과 별개로 1963년 국가사적 제 111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농업생산유산이다.

물론 벽골제의 축조목적과 미확인수문지를 전부 찾는다고 세계유산에 등재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세계유산에 등재되기 위해서는 유산보존을 위한 체계적인 시스템을 마련해야 하고, 등재과정에서 지역주민들과 함께 가야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일례로 익산의 경우 유산을 지키고자 지역주민들이 조직한 ‘고도보존협의회’가 등재심사 시 좋은 점수를 받았다고 한다. 이와는 반대로 세계유산을 추진하려고 했으나 주민들의 반대로 추진자체가 무산된 경우도 있다. 이는 결국 세계유산 등재는 지역민과 함께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유산은 정치적인 목적으로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여 급하게 추진한다 해도 등재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세계유산 제도의 설립취지는 문화유산의 보호와 보존이 그 목적이기 때문이다.

이에 벽골제는 당장의 세계유산이라는 성과보다 현시점에서 벽골제를 지역주민과 함께 어떻게 지키고 잘 가꾸어서 우리 후손들에게 온전하게 물려줄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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