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강은 우리네 주방에서 빠질 수 없는 구비품 중 하나다. 고기의 잡내를 잡아주기도 하고, 음식의 풍미를 더해주기 때문에 어느 음식에서건 잘 어울린다.

이 생강 중 가장 으뜸이 ‘완주생강’이다. 완주군 봉동읍은 생강의 시배지이자 100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그 역사만큼 생강의 농업 기술도 뛰어나 해마나 가장 뛰어난 질 좋은 생강을 수확해 낸다. 특히, 완주 생강의 저장방식은 국가중요농업유산으로 지정돼 국가적으로 보전하게 됐다. 선조들의 놀라운 지혜와 이를 잘 계승한 후손들 덕분이다.

생강은 고온성 작물로 겨울에 씨종자를 잘 보관했다가 봄에 농사를 시작한다. 섭씨 13도 이하에서는 동해를 입기 때문에 보관이 중요하다. 완주군의 조상들은 온돌식 생강굴로 바로 그 문제를 해결했다. 창의적이며 과학적인 농업 지식의 정수로 손꼽힐 만하다.

한민족 고유의 온돌 문화는 그 자체로 독창적이고 과학적인 난방 방식이다. 선조들은 이 온돌방식을 생강 저장에 이용했다. 완주 생강 온돌식 저장굴은, 고래(방의 구들장 밑으로 나 있는, 불길과 연기가 통하여 나가는 길) 밑에 생강저장굴을 만들고 고래에 바위를 깔아 아침저녁 음식을 준비하는 화기(火氣)로 고래 바윗돌을 데워서 생강 씨종자를 보관의 적정 온도를 유지한다.

이 저장 방식은 한반도에서 고온성 작물을 안정적으로 재배할 수 있게 만든 핵심적인 기술이다. 완주의 선조들은 일찍이 온돌식 생강굴을 개발해 생강 농업을 수백 년 동안 지속해왔다. 완주군이 생강 농업의 명산지로 거듭날 수 있었던 이유다.

주민들에 의하면 온돌식 생강굴은 가가호호 있어 매우 친숙했다고 한다. 현재도 141개소의 생강굴이 남아있다. 이중 74개소는 여전히 사용 중이다.

온돌식 생강굴 못지않게 또 한 가지 선조들이 살고 있는 터전의 땅속 특성을 완벽하게 이해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완주생각의 주산지인 봉동은 평야지대로 예전 봉상 지역이다. 국어사전에 봉상생강으로 등재되어 있는 바로 그 봉상이다. 선조들은 땅속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고, 이를 제대로 활용했다.

생강 농사가 시작되는 봄이 되면 고산천의 수량이 많아지고 그것은 곧 심토자갈층을 통해 생강 농사를 짓는 논밭의 토양에 수분을 머금게 한다. 심토자갈층 분석도와 봄이 되면 우물의 수위가 1.5~2m 상승하는 것이다. 평야지대 어디서든 평균 6m 정도의 파이프를 꽂기만 하면 물이 나온다는 주민들의 증언은 모두 그와 관련된 방증들이다.

완주 봉동 장기리, 낙평리, 신상리 일대는 시원적 상태의 자연환경에서는 고산천 물길이 지나던 곳이다. 물은 낮은 데를 찾아 흐르는 법이라 갈래갈래 물길이 나뉘면서 이곳저곳에 하상도(河床島)가 형성된다. 장기리, 낙평리, 신상리는 가락가락 갈라진 물길과 여기저기 형성된 하상도의 땅이다.

땅속 특성에 대한 이해는 곧 생강농사와 직결된다. 선조들은 생강 씨종자를 파종한 후 발아가 되기까지 생강풀을 덮어뒀다. 생강 씨종자가 싹을 틔우기 위해서는 고온다습한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심층자갈층으로 유입된 수분이 날아가지 않게 하는 동시에 토양을 비옥하게 하면서 생강의 발아 및 생장에 절대적 기여를 하는 것이다.

땅에서 품어 낳은 생강은 자연의 선물이며, 지혜의 산물이다. 자연의 위대한 힘과 조상의 지혜를 생각해보며 완주생강을 장바구니에 넣어본다. 알고 먹는 것과 모르고 먹는 것은 단연코 다르다./완주=임연선기자ys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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