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현 국민연금공단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우울한 연말을 맞고 있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다가오는 새해를 기념하는 인파들로 온기가 퍼져야 할 골목이 한산하다. 전대미문의 전염병으로 인해 마주보며 이야기할 기회가 없어지다 보니, 연말 분위기는커녕 인간관계까지 점점 멀어지고 있다.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정말 어려운 시대이다. 서로 만남을 기피할 뿐더러 사회적 거리두기가 격상되다보니 9시만 되면 모든 식당들이 문을 닫는다. 어쩌다가 만남이 있어도 오래 앉아 있기 힘들다. 식당 안의 모든 손님들은 신데렐라처럼 9시가 되면 자리에서 일어나야 한다.
 동화 ‘신데렐라’에서 왕자님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여주인공 신데렐라는 마법이 풀리는 12시가 되자 자리를 떠난다. 황급히 떠난 그녀의 자리에는 유리구두만이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현대판 신데렐라인 식당 손님들은 9시가 되면 야속한 시계바늘을 바라보며 아쉬움을 유리잔에 담아둔 채 떠난다. 유리구두를 바라보며 신데렐라를 애타게 찾는 왕자 같은 사람이 있으면 좋으련만 9시 이후에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코로나19는 서로 마주보는 것을 두려워하게 만들었다. 비대면이라는 단절 같은 단절 아닌 단어가 사회적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모든 것이 비대면으로 이뤄지고 있다. 올해 나는 대학원의 영상문화콘텐츠 학과에 입학하여 교육을 받고 있다. 시대가 시대인 만큼 수업은 비대면 온라인 교육으로 이뤄진다.
 모니터 속의 교수님은 매우 열정적이긴 하나 내게 어떠한 학문적 질의나 답변을 구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수업을 들을수록 배움에 대한 갈증만 늘어난다. 온라인이라는 벽에 가로막힌 교수와 제자 사이에는 학문의 심화 성취를 위한 치열한 토론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일방적인 지식전달만이 있을 뿐이다.
 얼마 전 모니터 속의 교수님에게 ‘시뮬라시옹’이라는 개념에 대한 내용을 배웠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원본을 복제하여 원본보다 더 진짜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을 ‘시뮬라르크’라고 하고, 그것을 만드는 과정을 ‘시뮬라시옹’이라 한다.
 시뮬라시옹의 대표적인 사례는 인터넷이다. 우리는 인터넷에서 이름 대신 ID를 이용하며 얼굴도 알지 못하는 이들과 생각을 나눈다. 온라인 커뮤니티나 SNS를 통해 현실에서는 만날 수 없는 사람들과 대화를 주고받는다.
 온라인 세계는 실제 존재하지 않는 공간에 또 다른 나를 만들어 낸다. 온라인 속의 나는 의도에 따라 현실과 전혀 다른 삶을 살기도 한다. 현실에서 펼칠 수 없는 재능을 펼칠 수도 있고 심지어 신분도 속일 수 있다.
 온라인은 현실과 다른 세상이지만, 그렇다고 현실과 단절된 세상은 아니다. 온라인상에서 형성된 여론은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실제로 현실에서 몇 마디 말을 하는 것보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몇 자 적는 것이 더욱 큰 공감과 파장을 일으키기도 한다.
 나와 교수님이 그러하듯 화면 속에서만 얼굴을 마주하거나 그마저도 없이 글자로만 대화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나아가 온라인 속의 나의 모습이 나라는 존재 자체가 되는 일이 나타나기도 한다. SNS가 그렇다. 인플루언서라고 불리는 SNS 스타들은 SNS를 통해 자신을 포장한다. 그렇게 포장된 자신은 현실 세계의 자신보다 커다란 영향력을 가진다.
 원본인 나의 존재가 복제된 시뮬라르크인 SNS 속의 내가 원본인 나보다 더 영향력 있고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새 SNS의 내가 실제의 나라는 착각에 빠져 집착하게 되고 현실의 나를 등한시 여기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코로나19로 현실에서의 관계가 단절되며 시뮬라시옹 현상이 더욱 가속화 되고 있다. 시대의 흐름상 어쩔 수 없다지만 이러한 현상이 현실 속 인간관계의 단절을 초래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사람과 사람이 맞닿아야지 정도 생기고 관계라는 것이 맺어진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고 거리두기와 비대면이 일상으로서 정착이 된다면, 코로나19 극복 이후 과연 제대로 된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가뜩이나 인정이 메말라 가는 세상이 비대면으로 인해 더욱 각박해지지 않을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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