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훈(전북대학교 약학대학 교수)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의 범위에서 인류가 끊임없이 추구해온 것은 시·공간 한계의 극복과 행복 추구라 볼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윤리학의 대전제로서 “행복”을 제시하였다. 윤리나 선(善)도 모두의 행복을 위한 수단으로 인식될 수 있다. 단순하게 보면, 인류는 유사 이래 오늘까지 “행복하게 영원히 존재하고자” 하는 열망을 유지해오고 있다. 필자는 행복과 영원을 별개의 속성으로 보기 보다는 생명의 통합적 속성으로 본다. “행복해야 지속가능하고 지속 가능해야 행복하다.”라고 표현해 볼 수 있다.  즐겁게 생명을 지속하기 위한 길(道)을 찾는 여정에서, 의약(醫藥)도 하나의 수단이다. 천재들은 오감에 의존하여 길을 찾아가던 선조들의 기록에 기초하여 과학이라는 길을 내었다.

질흙같은 어둠속에서도 과학은 끊임없이 새로운 길을 열어왔다. 영원을 향한 여정에서 의약(醫藥) 분야의 최근 이슈 중 하나는 디지털치료제(Digital therapeutics)와 전자약(Electroceuticals)이다. 디지털치료제는 근거 기반의 고도화된 소프트웨어(모바일 애플리케이션, 게임, 가상현실, chat bot, 인공지능 등)를 활용하여 질병이나 장애를 예방하고 관리·치료하는 기술이며, 전자약은 전류나 자기장 등 에너지로 뇌

또는 기관, 조직, 특정세포를 자극해서 기능을 변화시키고 치료 효과를 내는 기술이다. 2011년 노보큐어(Novocure)의 '옵튠(Optune)'이라는 전자종양치료기술이 미국 FDA승인을 받았고, Pear Therapeutics는  세계 첫 약물중독 치료용 소프트웨어인 ‘reSET’에 이어 1918년 아편류 중독의 디지털치료제 소프트웨어인 ‘reSET-O’을 개발하여 미국 FDA 승인을 받았다. 그 외에 2형 당뇨 디지털 치료제로 웰독의 블루스타와 불룬티스의 인슐리아 등도 있다. 전자약과 디지털치료제의 적용범위가 더 이상 정신질환이나 신경질환 등에 국한되어 있지 않다.

신경자극과 면역, 대사기능의 관계를 이용하여 비만과 당뇨병, 고혈압, 심혈관 질환, 항암까지 그 치료 범위를 확장하고 있고, 그 시장 규모도 연 20% 이상씩 빠른 속도로 증가하여 2025년에 디지털치료제가 약 10조원, 전자약이 약 40조원에 이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머지않아 고혈압이나 당뇨, 부정맥, 위염과 같은 만성질환에 화학약물을 복용하지 않거나 최소화되는 세상이 올 것으로 판단된다. 두통이나 소화불량과 같은 가벼운 증상에도 이 기술이 적용되어 집집마다 전자약이 비치되고 각자의 이동전화기가 건강을 관리하고 증상을 치료하는 세상이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다.

전자약과 디지털치료제의 핵심기술은 생체표적 + 올가노이드 + 마이크로 로봇 기술 + IT 기술이다. 이중에서도 생체표적 + 올가노이드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기존 의약기술이다. 생명 현상을 설명할 수 있어야 마이크로 로봇과 IT 기술을 생체에 적용할 수 있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이 분야의 글로벌 R&D를 선도하는 그룹은 다국적제약사들이다. 그들은 기술-벤처회사들과 전략적 제휴를 통하여 시장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대형병원의 R&D 팀과 IT 기술 벤처회사들이 소규모 연합을 통하여 대항하고 있다. 여전히 생명현상을 조절하는 “약(藥)”이라는 개념이 중심에 있다. 집단지성이나 집단지도체제와 같이 미래 산업과 과학에서는 집단기술이 필요하다. 전혀 연관성이 없을 것 같은 분야의 과학자들이 융합하여 창조해내는 집단 기술이 생명 연장과 행복의 길을 열어갈 것이다. 그런데, 우리사회가 정해 놓은 법이 현실적 장애가 될 수 있다. 단적으로 의약품(醫藥品)의 법적 정의는 “사람 또는 동물의 질병의 진단·치료·경감·처치 또는 예방의 목적으로 사용되는 것으로 기구·기계가 아닌 것”이다.

전자약과 디지털치료제는 기구·기계에 가깝지만 질병의 진단·치료·경감·처치 또는 예방의 목적 즉, 사람의 구조·기능에 약리학적 영향을 주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된다. 화학 의약품처럼 전자약과 디지털치료제도 유효성과 함께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 사용에 있어서 전문가의 엄격한 통제가 필요함을 시사하고 있다. 예를 들어, 최근에 탈모치료를 목적으로 전자약과 디지털치료제 사이에 경계가 모호한 제품의 광고를 볼 수 있다.

그 제품의 사용에 따른 위해성은 전무할까? 탈모의 종류와 심각도, 범위, 탈모자의 성별과 연령, 체중, 질병여부, Life style 등에 상관없이 동일하게 사용해도 되나? 전문가의 관리 없이도 괜찮을까? 탈모는 그렇다 치더라도 혈압강하 목적의 디지털치료제나 전자약이 나온다면, 그 유효성과 안전성에 기반한 용법과 관리는 훨씬 더 복잡해 질 수 있다.

30여 년 전 다국적 제약사들이 바이오의약품 분야를 개척할 때 우리 제약기업들은 준비 부족으로 그 시장을 남의 떡으로 넘겨주고 말았다. “전자약과 디지털치료제”라는 새로운 세상에서도 유사한 상황이 재현될 수 있다.

2020년 3월 전북대학교는 약학대학을 개설하였다. 미래를 향한 적절한 준비로서 시·공간의 극복과 행복을 향한 인간의 열망을 풀어갈 여정에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는 배를 준비한 셈이다. 전북대학교에서 약학은 생체표적에 기반한 핵심기술을 제공하고 학문간 융합 즉, 집단 기술의 형성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기존 대학들의 가부좌가 오래되어 틀기가 여렵더라도, 새로 자리를 살피는 전북대학교 약학대학은 생명과학의 방향과 자세를 정할 뿐만아니라 사회약학을 활용하여 의·약학의 법·행·재정적 문제를 풀어갈 수 있다. 약학대학이라는 플랫폼은 국민보건과 의약산업의 두 관점을 조화롭게 적용하며 전자약과 디지털치료제의 개발을 안내하고 조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 필자는 그런 희망을 가지고 이순(耳順)을 뒤로한 체 의미있는 시·공간을 찾아서 이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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