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군수 시인의 시집 '한쪽 가슴이 없는 여자(인간과문학사)'에서 주목할 점은 수많은 경계를 지나온 희로애락이 모든 시 세계를 수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인의 시 속에 농익은 삶의 경륜이 웅숭깊이 발효되어 비유와 상징의 맛이 신선하고 현묘하기까지 하다.  

시적대상과의 은유는 가깝거나 멀지 않고, 팽팽한 유사성에 놓여 있어 순식간에 독자들을 긴장감에 빠지게 만드는 묘한 매력도 발산하고 있다. 

특히 정군수 시인은 '사랑'이라는 보편적 감정을 남성적 어조로 묘사해 모호성과 중의성을 선사하고 있다. 다양한 의미해석이 가능하고, 신선한 정서로 시 세계를 환기시키는 능력도 탁월하다. 

"한쪽 가슴이 없는 여자를 사랑하였다/배가 닿지 못하는 바위섬에서/그녀는 억센 찔레넝쿨만 키우고 살았다/내가 헤엄쳐 건너가자/그녀는 사슴을 키우기 시작했다/찔레순을 먹은 사슴의 머리에서 뿔이 돋자/황폐한 그녀의 가슴에서도 향기가 났다/내가 그녀를/한쪽 가슴이 있는 여자라 불렀을 때/섬은 외롭지 않고 바닷새도 날아와 알을 낳았다/봉우리에서 내려온 사슴은/찔레꽃 핀 언덕에 앉아 바다를 보며/명상하듯 새김질을 하였다/내 가슴 하나가/그녀의 가슴이 되어도 좋다고 생각하는 날/바다는 푸르고 수심은 깊었다/바닷가 절벽에서 바라본 것은 육지가 아니라/그녀의 가슴에 자라난 풀밭이었다/두 개의 뿔과 한 개의 가슴이 사는 섬을/나는 지도에 그려 넣었다//('한쪽 가슴이 없는 여자' 전문)"

고립무원의 바위섬을 공간적 배경으로, 찔레넝쿨 뻗는 봄날을 시간적 배경으로 삼은 '한쪽 가슴이 없는 여자'는 보편적 사랑 이야기를 형이상학적 관념어 없이 표현한다. 

시는 '사랑'이라는 보편적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참신한 낯설기로 전개돼 시인의 시적 기교, 새로운 세계의 경험을 느낄 수 있다. 

왕태삼 시인이 해설에서 "어느새 희수(喜壽)를 맞이한 정군수 시인의 시적사유는 끝없는 변이를 부르는 팔색조"라고 짚어냈듯이 실제 시인의 시 속에는 반어와 역설, 시적 정서와 환기가 풍부하다.

시의 구성요소인 함축성, 형상성, 음악성은 물론 삶의 심오한 의미와 치열한 자기 성찰, 변화의 과정을 내밀하게 엮어 보여준다. 

이 때문일까. 왕태삼 시인은 "시심을 연못에 비유하자면, 정군수 시인은 봄날 만삭의 다목적 댐"과 같다고 정의 내린다. 

제1부 '어머니는 시인이었다'부터 제6부 '더디 오소서'까지 시인이 독자에게 말하는 '희노애락'은 단순한 감정 그 의미를 넘어 자아를 들여다보는 도구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전라북도 김제에서 태어난 정 시인은 계간 '시대문학'을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전주풍물시동인회장, 한국문인협회 전북지회장, 석정문학관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석정문학회 회장을 맡고 있으며 전북시인상, 목정문화상 등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모르는 세상 밖으로 떠난다', '풀을 깍으면 더욱 향기가 난다' 등이 있다./박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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