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현대시학’을 통해 문단에 등장한 이후 시적 언어의 한계와 가능성을 두루 구현해 온 소재호 시인이 일곱 번째 시집 ‘악성 은행나무’를 발표했다.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인간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자연의 속성에 빗대 표현한다. 

삶에 대한 끝없는 질문과 존재에 대한 깊은 성찰이 깃든 달관의 세계를 서정시로 풀어낸다. 

오랜 세월 인간의 감정적 경험을 시적 상상력으로 그려온 시인이 삶의 뒤편을 꿰뚫어보는 예리한 시선으로 빚어낸 시편들은 뭉클한 감동을 자아낸다. 

바다, 강, 섬, 달, 별, 꽃, 눈, 비 등 시집에서 주조적 이미지로 쓰인 상관물들을 인간의 삶과 연동해 이성, 이념, 사랑, 욕망으로 치환해 내는 방식도 탁월하다. 

“천지간에 휩쓸리던 무성의 음표/연록의 이파리들로 내려 앉히면/계절마다 다른 빛깔의 바람결 감겨오고/활의 악보로 무지개의 화음 내걸며/몇 옥타부씩 솟구쳐 일어섰다//밤마다 잔별 떼/금빛 은빛 음색을 고르면/하늘에 빛 부시던 전신의 교향악/베토벤보다 더 운명적인/딱 한그루의 악성//이 강산 떠돌던 신들도 기웃거리면/운명의 지휘봉 따라 몸체 기울어/뿌리까지 저리게 스미던 안단테/가을도 익고 신의 뜻도 익어 노란 잎/천지가 온통 한 음률로 번졌다//”(중략·악성 은행나무 중)

시는 우리에게 경험에 관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경험 속에 풍부한 상상력으로 독자가 빠져들 수 있도록 만든다. 

이러한 시의 속성을 제대로 간파한 소재호 시인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접촉하지 못하는 경험의 영역들을 익숙하게 만들고, 다시 우리의 경험을 심화시켜 실제 경험보다 명백하게 느낌으로 가능하게 만드는 희한한 재주를 부린다. 

시집의 표제작이기도 한 ‘악성 은행나무’를 곱씹어보면 은행나무는 쥐라기 이전 고생대 이첩기에 지구상에 나타나 터를 잡은 나무다. 

그 시간은 우리가 경험하고 가늠할 수 있는 인식 너머의 시간이다. 

시인은 은행나무가 함의하는 신비한 이미지에 시적 상상력을 부여한다. 

흔히 인식하고 있는 익숙한 일반적 이미지가 아닌, 시인만이 감각 하는 새로운 의미의 포자를 심어 한순간 은행나무를 ‘악성’으로 겹쳐 놓는다.  

유인실 문학평론가는 시집 평설을 통해 “소재호 시인은 일상과 삶의 근원 사이를 끊임없이 저울추처럼 움직이면서 시학적 범주를 늘려나가고자 한다”며 “상투적인 감정을 거부하면서 끊임없이 자신의 현재를 사유한다”고 밝혔다. 

전북 남원에서 태어난 소재호 시인은 1984년 ‘현대시학’에 추천완료 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이명의 갈대’, ‘용머리고개 대장간에는’, ‘압록강을 건너는 나비’, ‘거미의 악보’, ‘어둠을 감아 내리는 우레’, ‘초승달 한 꼭지’ 등이 있다. 

녹색시인상, 성호문학상, 목정문화상, 중산문학상 등을 수상했고, 한국예총 전북연합회(전북예총) 제24대 회장을 맡고 있다./박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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