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영광 되찾자” 전주 중앙동 웨딩거리 부활 날개짓

<2. 전주 중앙동 웨딩거리>70년대 금은방거리 호황 전주역 이전인구 분산 80년대 들어 쇠퇴일로 전라감영 복원 ‘전환점’ 유동인구·관광객 증가세 최병호 기자l승인2021.08.19l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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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동의 지명유래와 행정구역 범위
'지나가는 강아지도 금목걸이-금발찌를 차고다닌다'는 농담이 나돌정도로 번화했던 곳이 전주 중앙동 웨딩거리이다.
웨딩거리가 속해있는 중앙동은 조선시대 전주부성 내에서 시작됐다. 그러던 중 1907년부터 전주부성 성곽이 철거되면서 성곽 내·외 경계가 사라지고 행정구역 명칭 또한 일본식으로 변경됐다.

일제강점기에는 중앙동 1·2가 일대는 '대정정 1·2목'으로, 중앙동 3·4가는 당시 도청의 팔달로와 관련 '팔달정'이라 불리웠다.
기존의 성벽을 허문 자리를 중심으로 도로가 형성되며 중앙동은 일상생활에도 큰 변화를 맞이했다.

일본상권이 중앙동에 진출하고 중앙동에는 일본인들이 거주하기 시작했다. 특히 '혼마치' '다이쇼마치' 지명은 현재의 중앙동 일대를 뜻하는 인본식 행정구역 지명인데 이곳을 중심으로 일본인들의 집단적 거주와 상권이 형성된 것이다. 일제강점기 동안 일본 거주민들은 지속적으로 조선인들의 상권과 경쟁을 했고 세력싸움에서 밀려난 당시 조선인들이  집단 이주한 곳이 지금의 한옥마을 시초일 정도로 중앙동은 당시에도 전주 상권의 중심지였다.

그러던 중 1945년 해방 후에도 중앙동은 행정 중심지였다. 이는 중앙동 일대에 자리잡았던 옛 전북도청사가 계속 유지됐기 때문이다.그 외 전주시청-법원 등 각 행정·사법기관도 중앙동에 자리잡고 있었다.
본격적으로 중앙동으로 불리운 시기는 해방이후 공식적으로 붙여졌으며 여느 지역과 마찬가지로 전주의 중심이라하여 중앙동으로 붙여졌으며 1957년 전주시 조례 제108호가 시행되면서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한때 전주 상업의 중심
전주 중앙동은 상업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조선시대부터 지금의 약전거리에 해당하는 곳에는 당시 3대 약령시였던 전주 약령시장이 열렸었다. 이 약력시장은 해방 직전까지도 성행했다고 전해진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해방이후 중앙동에는 전북도청사를 비롯해 행정·사법기관이 밀집하며 이 일대를 중심으로 상가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툭히  현재 전라감영 일대, 웨딩거리 등이 중앙동의 중요한 상권거리였다.
1970년대 들어 웨딩거리는 시계점, 금은방, 다방, 백화점 등이 들어서며 호황기를 누렸었다.

상인 뿐만 아니라 공공기관 종사자들이나 인근 학교 학생들까지 왕래가 잦았던 최고의 상권 중심지였던 것이다. 그만큼 많은 유동인구를 보유하고 있었던 곳이다.상권의 발달과 더불어 유흥문화도 발달했으며 전주 시민들의 만남의 장소이여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이기도했다.
사실 1970년대만 해도 지금의 웨딩거리는 금은방거리로 불리웠다. 1974년도에는 규모가 큰 금은방이 3~4곳 있었고 금은방이 웨딩숍보다 훨씬 많았다. 당시 금은방이 많을때는 20곳이 넘게 성행했을정도라 한다. 지금은 10여곳으로 줄었지만…

-중앙동과 웨딩거리의 쇠퇴
중앙동의 성장은 지속되지 못했다. 1980년대에서 2000년대 전주도시계획 변경과ㅡ동부 우회도로·서부우회도로 등 도시 외곽 대로 건설, 그리고 공공기관 이전 등으로 인구가 분산되고 상권이 나뉘며 화려했던 상권 중심지로서의 면모를 잃어가게 된다.

중앙동의 쇠퇴 원인을 살펴보자면 첫째, 공공기관 이전이다. 전북도청사와 전주상공회의소 등 가 신시가지로 이전하며 음식업-카페등의 상업시설도 덩달아 옮겨갔다. 가장 큰 원인이기도 하다.

둘째 1980년대 초 전주역이 현재 우아동(동부대로)으로 옮기면서 외곽 발달로 인해 인구 분산이 가속화되고 그 반면에 중앙동 유동인구는 줄어들게 됐다.
주요 가게와 거리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는 과거에 대한 향수만 짙게 남겼으며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절에 대한 아쉬움이 묻어나는 곳으로 남게됐다. 이렇게 중앙동은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서서히 잊혀져 갔다.

중앙동에서 한 평생을 장사와 생활을 했던 이 곳의 상인들 또한 과거의 '잘 나갔던 시정' '돈 긁어 모으던 시절'에 대한 추억과 회상이 묻어나기도 한다.
지금 중앙동 웨딩거리는 평일 주말을 가릴 것 없이 한산해 불황의 기운이 얼마나 심한가를 느낄 수 있다.

20년 넘게 영업을 이어온 한복집 관계자는 "전주에만 한복집이 수 백곳이 된다는데 치열한 경쟁 속에 불황은 그 어느때보다 심하다"며 "한복대여와 맞춤한복 모두를 다루지만 맞춤한복은 문의도 없어 아예 제작조차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결혼 자체가 많이 줄어든 것 같냐는 질문에 "당장 내 딸 조차도 결혼할 생각이 없으니 말 다 했다"며 "한복 만으로는 경영이 어려워 이불도 함께 판매하고 있는데 IMF 때보다 훨씬 어려운 느낌이다"고 밝혔다.

귀금속가게 대표 역시 45년 넘게 운영을 해왔지만 올해가 가장 힘들다고 답했다.
그는 "이미 예물거래는 죽은지 오래다. 다들 서울에 가서 맞춰오기 때문이다"며 "폐업한 가게도 많고 저 역시 예물거래는 한 건도 하지 못하는 달이 수두룩 하다"고 밝혔다.

설상가상 코로나 장기화로 인해 예식이 줄면서 찾는이가 점점 더 줄어든 상태다.
지금은 사무실 겸 골목의 터줏대감으로서의 역할만 감당할 뿐이라는 하소연도 나온다.

주민이 말한 "시대가 그런걸 어떡해. 다시 옛날로 돌아갈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안되잖아"라는 말은 과거에 대한 향수가 짙지만 현재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무기력증이 역력하다.

-새 희망 꿈 꾸는 중앙동
이러한 어려운 현실 속에서 중앙동은  과거의 영광을 되살릴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
2000년도 들어 한 평생 살아온 자신들의 집과 사업장에 대한 애착으로 인해 떠나지 못한 주민들과 전주시가 힘을 합쳐 특화거리를 조성해 한옥마을을 연계한 관광객 유치와  시민들이 거리 풍경을 즐기며 '다시 찾아오는 거리' 조성을 하고 있는 것.

이런 노력으로 인해 중앙동 일원은 유동인구와 관광객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이 중 대표적인것이 전라감영 복원이다. 지난 2020년 1단계 복원된 전라감영은 한옥마을에 편중됐던 관광객들의 동선을 연장했으며 이에 따른 주변 상가도 동반 활기를 띄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서울 이태원 일대의 '경리단길'과 유사함을 빗대어 비슷한 분위기를 형성해 이름 붙여진 '객리단길'에는 다양한 식당과 물건들을 파는 가게들이 방문객들로부터 인기를 끌고 있다.

그리고 웨딩거리-차이나거리 주변은 근대 건축물과 예술인들, 특이성을 가진 식당과 카페 등으로 인해 주말이 되면 특유의 운치를 즐기는 명소로 거듭나고 있다.
중앙동 주민들 또한 동네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 수 십년을 웨딩거리에서 가게를 운영해온 상인은"왜 중앙동이겄어. 전주의 중앙이니까 중앙동이지. 지금 조금 힘들어도 난 여기가 좋아. 왜냐고 이유는 단 하나야 그냥 중앙이니까""
이렇게 중앙동과 웨딩거리는 옛 영광을 되찾는 부활의 날개짓을 펼치고 있다.
/최병호기자·hoya0276@


최병호 기자  cbh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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