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은 갈수록 다양화, 복잡화 하는 수요에 맞춰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그런데 행정 조직은 수장을 정점으로 하는 피라미드 조직이 기반이다. 수장은 흔히 독임제라고 해서 단독으로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그에 따라 관료 조직이 움직인다. 복잡 다기한 정치사회적 변화에 발맞추기가 어려운 처지가 된 것이다.

그래서 탄생한 게 위원회라는 조직이다. 위원회는 멀리 고대 그리스나 로마에까지 거슬러 올라가기도 하지만 대개 유럽 절대왕정 시대 추밀원에서 그 흔적을 찾는다. 16세기 영국 국왕은 정치자문 기구인 추밀원을 휘하에 두었다. 귀족들로 구성된 추밀원은 왕을 보좌해 정책에서부터 회계 재정관리, 지방행정 조정 나아가 법원 감독까지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행정이 아닌 규제를 목적으로 하는 위원회로는 19세기 말 미국의 주간 통상위원회를 든다. 이 위원회는 당시 극심한 혼란 상태에 있던 미국 철도산업을 규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됐다. 이후 세계 각국이 이를 모델로 삼아 경제사회 문제를 규제하는 독립된 위원회를 만들기 시작했다.

위원회 제도는 꽤 성공적이었다. 영국이나 미국은 물론 우리나라 등 세계 각국에서 위원회 제도를 두었다. 위원회는 수장의 권한 남용을 막고 전문성 확보에도 기여 한다.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참여함으로써 민주적인 운영이 가능한 장점도 갖고 있다.

전국 17개 광역자치단체에 설치된 위원회 4곳 중 1곳이 지난해 단 한 차례도 회의를 열지 않았다고 한다. 행정안전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전국 광역자치단체 위원회는 무려 2만8천여 개이며 이 가운데 1년간 회의를 아예 개최하지 않은 위원회가 7천100여 곳이었다.   위원회를 만들 때 기능 및 필요성을 충분히 검토했다면 결코 벌어지지 않을 일이다.

토론과 타협 그리고 합의를 통해 현실 정책 결정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위원회가 상당수 부실하다는 것은 그냥 넘길 일이 아니다. 그렇지 않아도 위원회들이 당초 목적과는 달리 시간과 경비를 낭비하고 관료들의 책임 전가 도구가 되거나 강경 의견의 독주로 제구실을 못한다는 지적이 많다. 이런 논란들이 오래전부터 끊이지 않고 있음에도 여전히 광역자치단체들이 위원회를 부실 · 방만 운영한다는 사실이 놀랍다. 유감천만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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