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항근 교육자치연구소 상임대표·전 전주교육장

AI 문명의 시대,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하는 시대, 문명대전환의 시대, 인구소멸의 시대에 뭔 꿈같은 얘기냐고 할지 모르겠다. 아이들에게 꿈을 가지라고 말해왔던 필자는 어른들 스스로의 꿈도 없으면서 아이들에게 꿈을 가지라고 말하는 것이야말로 잠꼬대 같은 소리라 여긴다. 그래서 꿈꾼다.
변화의 방향이 무쌍하고 속도는 광속인 시대를 만나면서 그 흐름에 한 인간이나 국가가 표류하듯 휩쓸려갈 것인지 조절하고 유도할 역량을 갖는지 기로에 서있다. 정신 바짝 차리고 꿈을 꿀 때이다. 지구상에 단 한 번 존재한 적이 없는 꿈도 필요한 때이다. 하물며 지구상에 이미 존재하지만 우리는 가진 적 없는 꿈을 갖는 일이야!
없는 일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능력이지만 있는 것도 못하는 것은 무능 아닌가? 더욱이 아이들에게 주어야 할 미래를 위한 일에 대한 우리 어른의 무능은 범죄일지 모른다. 이미 어느 곳에서는 이미 실현되고 있는 꿈을 말하고자 한다.
교육선진국이라 회자되는 북유럽 3국 연수소감을 되새긴다.

필자가 방문한 초등학교는 ‘교육이 예술’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한 시간 더 밖에서 놀게 하는 자유가 아이들과 사회를 밝게 한다는 생각을 실천해 가고 있는 교육. 그 속에서 보이지 않는 의도된 기획-공동체성의 유지와 확산-이 섬세하게 실행되고 있었다. 교사들이 각자의 교육을 하면서도 학교 철학과 지향에 맞추어 함께 가고 있다는 강한 느낌이 든. 우리가 수업의 기술에 각자도생하며 집착할 때 이들은 잘 짜여진 각본아래서 흥겹게 완성도 높은 예술적 공연을 하고 있었다. 이들이 세계 제일의 행복사회라 평가됨은 교육이라는 토대위에서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그것은 계량화된 수치가 아니라 표정에서 확인되고 있었다.
우리 아이들에게 아주 온전하게 한 시간의 자유시간을 줘보는 일을 꿈꾼다. 흔히 있는, 교실 안에 가두고 베푸는 자율학습 시간 말고, 학교 안팎 어데서 무엇을 하건 스스로 결정하고 실행해보는 자유. 그것이 그렇게도 중요하다고 모두가 인정하는 자기주도성의 출발점 아닐까? 자유를 상상함이 예술이라면 교육이 그것을 상상함으로 예술이 된다는 생각을 한다.

초중학교 통합형 종합학교. 학교건축과 구조 배치가 세밀한 교육적 고려아래서 기획되었고 배치되어 있었다. 공간의 재구성이 인간관계와 심리를 전제로 재구성되고 있음이 예술적 감각으로 여겨졌다.. 뜨개질과 라이센스를 목표로 한 재봉 수업, 사진 인화, 전기 기타를 만드는 목공과 용접까지 배우는, 개인이 자립해서 살 수 있는 기초교육이 직업교육이 되는 교육과정이 부럽고 알레르기 환자나 종교적 차이까지 고려한 급식, 체육관의 활용....
그들은 현재의 충분함을 바탕으로 미래를 고민하는 교육을 하고 있었다. 미래는 늘 바뀌는 것이고 교육은 그것을 조망하며 기획된다는 사고가 왜 우리에게는 머나먼 꿈처럼 느껴지는지. 현재는 과거의 연속이고 미래도 현실의 연장일 뿐인 우리교육의 놀라운 일관성이 지겹고 안타깝다. 아이들은 갈수록 망가지고 세상은 광속으로 바뀌는데 교육은 그 자리를 고집하는 한 이들에 대한 부러움은 이어질 것이다. 우리가 불편해 하면서도 넘을 수 없는 벽이라 여기는 제도와 환경, 사회가 그들에게도 있었다. 그들은 그것을 넘어섬으로 교육의 자유를 얻었고 창조의 권리를 획득했다. 우리도 해야 한다. 교육이 학교 밖으로 나오고 교사가 세상에 눈길과 발길을 주는 일, 학교 안팎의 경계를 허무는 일, 학교혁신이 교육혁신과 사회혁신이라는 목표아래서 기획되는 일이 그 시작이다.
모든 학교의 교육은 전체 사회의 반영이다. 건강한 사회 아래서는 학교의 지향이 통합되어야 하고 불순한 사회에서 학교는 각자의 주체성을 가져야 한다. 우리 사회는 정말 건강한가? 경제순위의 상승에 맞는 사회인가? 그렇지 않다면 교육과 학교에서 다시 희망을 찾자. 현재 교육의 변화에서 시작하자. 교육은 미래사회의 데자뷔이다. 그것을 창조적으로 기획하고 실행하는 순간 교육이 비로소 예술이 된다. 예술 같은 교육을 하는 나라, 교육이 예술인 나라, 그런 나라에서 우리아이들을 살아가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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