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제작된 볼프강 페테센 감독의 ‘퍼펙트 스톰’이라는 미국 영화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개봉돼 꽤 많은 관객을 모은 재난영화다. 세바스찬 융거라는 기자이자 작가가 쓴 실화를 영화로 만든 작품이다. 강력한 대형 폭풍에 휘말린 한 어선이 결국 난파되고 선장과 선원들이 죽음을 당하는 스토리다.

영화에서 어선 안드레아 게일호 선장 빌리 타인은 다른 다섯 명의 선원과 함께 물고기를 잡으러 무리한 항해를 계속한다. 그러다 작은 폭풍과 캐나다 한랭전선, 허리케인이 충돌하면서 발생한 거대 폭풍 한가운데로 들어간다. 선원들은 목숨과 자신들의 배를 지키기 위해 사투를 벌이지만 자연의 위력에 결국 무릎을 꿇고 모두 사망한다.

퍼펙트 스톰이란 그리 세지 않은 폭풍이 다른 자연현상과 겹쳐 발생하면서 어마어마한 강도의 폭풍으로 변화하는 현상을 지칭한다.

여기서 출발한 퍼펙트 스톰은 경제 용어로도 쓰인다. 2008년 미국 금융위기 때 대형 금융기관과 거대 기업들이 줄줄이 파산하고 달러 가치 하락, 곡물 가격 인상, 물가 상승 등 악재들이 동시다발로 터졌다. 경제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을 일컬어 완전한 폭풍 즉 퍼펙트 스톰이라 했다. 그 뒤로 절체절명의 초대형 경제위기를 말할 때 이 용어를 사용하는 게 일반화 됐다.

늘 부정적인 경제 전망을 내놓아 유명해진 ‘닥터 둠’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2011년 세계 경제를 예측하면서 퍼펙트 스톰이라는 용어를 썼다. 그는 세계 경제가 미국의 재정 위기, 중국의 성장 둔화, 유럽 채무 재조정 등이 얽히면서 2013년까지 퍼펙트 스톰에 휩쓸릴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요즘 세계 경제계에서 퍼펙트 스톰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유가 등 원자재 가격 급등에 따른 인플레이션 압박, 중국 전력난 가중, 공급망 위축, 각국의 초저금리와 양적 완화, 부채 증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최악의 경제위기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대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도 예외일 수 없다. 그렇지 않아도 미국과 중국 사이에 끼어 전전긍긍하는 우리 경제는 이제 전 세계적으로 다가오는 퍼펙트 스톰의 검은 그림자 속으로 빠져들 위험에 처했다. 아직까지는 해결의 실마리도 보이지 않는다는 분석이다. 정책 당국은 현 상황을 면밀히 주시하고 대비책을 세워 자칫 ‘안드레아 게일’호 처지가 되는 것을 막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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