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읍시 칠보면에 가면 유상대가 있다. 칠보면의 옛 이름은 태산군이다. 유상대란 신라 때 태산 군수를 지낸 고운 최치원이 유상곡수연을 즐기던 곳이다. 유상곡수연이란 수로를 굴곡지게 해 흐르는 물에 술잔을 띄운 다음 술잔이 자기 앞에 오면 시를 한 수 읊는 놀이다. 최치원은 만년에 이곳에서 사람들과 더불어 이런 놀이를 하며 자신의 고매한 뜻을 펼치지 못한 울분을 삭였다. 백여 년 전 사람들은 최치원을 추모하는 뜻으로 이곳에 감운정을 지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곳을 ‘남도풍류 일번지’라고 부른다.
  최치원은 풍류도의 비조로 받들어진다. 그는 ‘난랑비서문’에서 “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으니 이를 풍류라 한다. 이 교를 베푼 근원에 대해서는 ‘선사’에 상세히 실려 있거니와, 실로 이는 삼교(유 · 불 · 선)를 내포한 것으로 모든 생명과 접촉하면 이들을 감화시킨다”라고 썼다. 최초로 풍류가 언급된 문헌이다. 최치원은 이로부터 풍류도에 관한 한 원조격 인물이 됐다.
  풍류의 뜻은 대략 속되지 않고 멋스러우며 풍치가 있는 일 또는 그렇게 노는 일이다. 옛 선비들의 시회나 아회 등을 생각하면 잘 이해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원로 국학자 유동식은 풍류를 멋과 한(하나), 삶으로 정리한 바 있다.
  이 풍류도는 최근 한류가 전 세계를 휩쓸면서 또 한 번 관심의 대상이 됐다. 한국 전통의 노는 문화에 전 세계가 매료된 것이다. 사서에 자주 나오는 한국인의 정체성 중에는 술과 노래, 춤을 즐긴다는 대목이 있다. 이런 유전자가 오늘에 발현돼 한류라는 독특한 대중문화를 만들어낸 것으로 보아 무방하다.
  며칠 전 전주에서는 2021 세계종교포럼 전국학술대회가 열렸다. 주제 발표에 나선 전북대 김익두 교수는 ‘한국 사상사 맥락에서 본 전북 사상사의 역사적 전개’라는 논문에서 전북 사상사의 큰 줄기로 풍류 사상을 들었다. 그는 최치원에 의해 재활성화된 풍류도가 불교 미륵사상과 함께 전북 정신사의 원류가 됐다고 했다. 또 풍류도는 마한의 제천의식에서 나타난 우주생명 조화사상에 녹아들어 결국 동학과 증산사상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한국 문화를 말할 때 단골로 등장하는 단어는 신명, 끼, 흥, 멋 등이다. 전북이야말로 역사적으로 이런 문화의 원산지였다. 한류의 본질이 전북 사상과 문화에 그대로 배어 있다고 보아야 한다. 전북인에 남겨진 숙제는 풍류도로 대표되는 전통사상을 오늘에 되살리고 외래문화를 포용하는 일이다. 그렇게 하면 나름의 고유문화가 창조될 것이라는 기대를 가져도 좋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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