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크리스마스트리로 애용되는 나무가 있다. 미려한 수형에 독특한 향을 내는 이 나무는 바로 구상나무다. 원산지는 뜻밖에 한국이다. 1917년 영국 식물학자 어니스트 윌슨은 한라산에서 놀라운 발견을 한다. 당시까지도 분비나무로 여겨졌던 나무가 전혀 새로운 종이었다. 그는 1920년 한 보고서에 이를 Abies Koreana라는 이름으로 소개했고 씨앗을 채집해 영국으로 가져갔다. 유럽인들은 이 이 나무에 매료돼 결국 널리 보급되기에 이르렀다. 유럽인들은 이를 한국 전나무라고 부른다.

이 나무는 소나무과에 속하는 상록 침엽수다. 침엽수는 잎이 바늘처럼 뾰족하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자방이 밖으로 노출된 겉씨식물인데 구과를 만들어낸다고 해서 구과식물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침엽수는 모두 14속 44종이 있다. 이중 구상나무를 비롯해 설악눈주목, 풍산가문비 등은 우리나라 특산종이다. 주로 한라산과 지리산, 덕유산 등 고산지대에 분포한다.

침엽수를 깊이 들여다보면 이야깃거리가 꽤 많다. 우선 역사적으로 침엽수는 활엽수보다 1억 년 정도 빨리 세상에 뿌리를 내렸다. 중생대 때에는 지구 대부분이 침엽수로 덮여 있었다. 그런데 뒤늦게 나타난 활엽수가 침엽수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기후 조건이 활엽수에 유리하게 변한 때문이다. 게다가 활엽수는 곤충이나 새, 포유류 등과 공생하면서 씨앗을 퍼뜨리는 데 반해 침엽수는 바람을 이용해 스스로 번식을 해야 했다. 결국 지구 생태계는 침엽수 시대가 저물고 활엽수 시대를 맞았다. 이는 종의 다양성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현존하는 침엽수는 대략 600여 종이고 활엽수는 무려 2만4천 종에 달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고산 침엽수들 역시 멸종 위기에 처했다고 한다. 산림청의 조사에 의하면 한라산과 지리산 등 고산지대 침엽수림이 급격하게 쇠퇴하고 있다는 것이다. 구상나무림은  33%, 분비나무림은 31%, 가문비나무림은 40%가 줄었다고 한다. 2년 사이 평균 32%가 쇠퇴한 것이다. 산림청은 이에 따라 ‘제2차 멸종 위기 고산 침엽수종 종 보전대책’을 세웠다. 정밀조사는 물론 모니터링 체계를 고도화하고 복원에도 힘쓰기로 했다.

어떻게 보면 이런 현상들은 진화의 법칙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 전문가들은 침엽수의 3분의 1이 멸종 위기에 몰려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하지만 침엽수의 대량 멸종은 종의 다양성을 해치는 것은 물론 산사태 등 자연재해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이제 침엽수는 고산지대나 척박한 토양으로 밀려나 근근이 살아갈 처지다. 침엽수를 돕는 일이 무엇일지 지혜를 짜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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