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세계가 어지러울수록 인간은 종교를 찾기 마련이다. 종교는 절대자에 의지하며 마음의 평화를 얻고 사회의 질서를 안정시키는 역할을 한다. 역사적 경험을 돌이켜 보면 종교가 반드시 인간이 바라는 바대로 순기능적인 역할만 한 게 아니다. 심각한 예로 조선시대에는 성리학의 원리주의에 집착해 결국 나라가 망하고 백성은 도탄에 빠지기도 했다. 서양에서는 중세시대에 교권이 세속화하고 인민을 착취하는 암흑기가 천년 넘게 지속됐다.

지금 우리는 어떤 종교를 도반으로 삼아 이생을 건너가고 있는가? 대다수 국민이 불교와 원불교, 천주교와 기독교 이른바 4대 종교에 의지하며 일상생활을 누리고 있다. 전라북도는 한국 종교사상의 발상지로서 4대 종교가 세계종교평화회의를 결성해 종교간 평화와 공존, 지속가능한 사회를 모색하고 있다. 전라북도가 특별히 세계종교평화회의를 결성한 것은 전라북도의 종교적 역사성을 반영하는 것이다. 

일찍이 신라 말기에 태인 현감을 지낸 고운 최치원은 우리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으니 이를 일러 풍류라고 했다. 풍류는 실제로 유교와 불교, 도교 삼교를 포함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최치원이 실행한 풍류의 유적은 유상곡수 그리고 후대의 무성서원 등으로 나타난다. 현묘한 도는 단군이 홍익인간 재세이화의 이념으로 개국한 이래 이어져 온 하늘과 땅, 인간의 삼위일체를 근간으로 하는 천신숭배 사상으로 귀결된다. 모든 중생을 이롭게 하고 이치로 깨닫게 한다는 진리의 믿음이다. 하늘의 도를 세우고 실천하는 그 자체에 유, 불, 선 삼교의 모습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현묘한 도, 우리 고유의 종교사상이 있기 때문에 유, 불, 선 삼교 또한 토착화 경향을 보인다. 양자 간에 융합이 일어나 유교는 종교 이전에 생활철학이 되고, 불교는 대승불교로 꽃을 피웠으며, 도교는 신선사상으로 승화됐다. 조선 말기 천주교가 들어오면서 천주교를 비롯한 서양문화를 일컬어 서학이라고 했다. 이에 대응해 수운 최제우가 동학을 창시하니 종교사상은 동·서학 양대 축으로 근대를 지배하게 됐다.

지난 10월 9일 전북대학교에서 열린 2021 세계종교포럼에서는 이 같은 전라북도의 종교사상을 집대성하겠다는 발표가 있었다. 김익두 전북대학교 전 교수는 ‘한국사상사 맥락에서 본 전북사상사의 역사적 전개’라는 논문을 통해 의욕에 넘치는 계획을 발표했다. 김익두 교수도 홍익인간 사상을 원천으로 정읍에서 풍류도를 이루고 유·불·선 삼교로 종교사상의 체계를 갖춰 나왔다고 본다. 백제의 미륵사와 금산사를 중심으로 하는 미륵사상은 전라북도 종교사상의 핵심이다. 특히 백제가 패퇴한 이후 이 지역에서 미륵은 구세주이자 메시아로서 신봉되고 있다.

신라 후기 남원 실상사를 중심으로 한 실상산문과 고려 후기 고부 출신 경한화상은 선불교를 크게 일으켰다. 조선 초기 태인에서는 정극인이 풍류도를 유교적으로 실천했으며, 정읍의 이항은 이기일물설을 강하게 주창했다. 부안에서는 유형원이 중농주의 실학사상을 열었으며, 전봉준은 동학혁명을 통해 동학사상을 전 세계에 알렸다. 김항은 정역사상으로, 김치인은 중학사상으로 그리고 강일순은 해원·상생·대동사상으로 중생제도의 길을 열어 갔다.

지금은 천주교와 기독교가 상대적으로 교세를 크게 떨치고 있다. 이 또한 우리 고유의 미륵사상의 현대적 표현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전라북도 종교사상의 보편성이 소위 서학과 서교의 번성을 가능하게 했다고 할 수 있다. 김익두 교수의 전북사상사 집대성이 크게 기대되는 이유이다. 전라북도는 이처럼 뛰어난 종교사상을 바탕으로 21세기 세계문명을 이끌어낼 당위성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저작권자 © 전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