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하늘은 유난히 높고, 다채로운 풍경을 선사한다. 특히 서쪽으로 넘어가는 해를 바라보며 노을을 감상하는 일은 일상의 작은 기쁨이라고 할 수 있다. 좋아하는 정읍의 노을 명소를 소개해 본다.

▲정읍천과 동진강이 합수하는 두물머리 '만석보터'
고부군수 조병갑은 부임 후 각종 명목으로 세금을 거둬들이며 착취를 일삼았다. 횡포의 정점은 ‘만석보’라고 할 수 있다. 원래 정읍천에 만석보가 있었는데, 부임 후 조병갑은 정읍천과 태인천이 합류하는 동진강 상류에 새로운 보를 막고 수세라는 명목으로 쌀을 착취했다. 백성을 강제로 공사에 동원하고, 선산의 노송을 마구 베어내고, 첫해에 수세를 받지 않겠다는 약속도 어기며 가혹하게 수세를 징수했다. 견디다 못해 일어난 고부 농민들의 민란이 동학농민운동의 발단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만석보터임을 알리는 만석보유지비가 세워져 있었을 뿐 공원이나 편의 시설이 없었다. 지금은 주차장과 산책로, 모정과 벤치 등 방문하는 사람들을 위한 편의 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물론 도심의 공원처럼 자주 정비하는 곳이 아니라서 관리가 소홀한 면이 있지만, 시골의 정취를 느끼며 역사 탐방을 겸하기에 충분하다.

특히 해지는 시간 방문을 추천한다. 만석보유지비 맞은편, 봉긋하게 솟은 언덕 위로 올라가 배들평야(현재 지명, 이평) 너머로 지는 해를 오래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정읍천과 태인천이 합류하는 두물머리와 새로 보를 막았던 동진강 상류 물줄기도 시원하게 조망할 수 있다.

정읍천을 지나는 도로 아래 억새와 코스모스가 핀 길을 따라 맞은편으로 건너가 보았다. 억새꽃이 피는 가을이 되면 천변은 장관을 이뤘는데, 노란 들꽃이 점점 세력을 키우고 있다. 억새의 개체 수가 지난해보다 확연하게 줄었다. 억새가 자꾸만 이름 모를 노란 들꽃에게 자리를 내주고 있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아름다운 억새를 볼 수 있는 만석보터, 역사적 가치가 있는 장소를 보존하기 위해 경관을 유지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둑 위 나무 한 그루가 우뚝하니 서서 해를 배웅하고 있다. 펄럭이는 천을 이용한 설치물 너머 붉은 햇살이 영롱하게 번지는 모습이 멋지다. 봉기를 위해 나선 농민들이 흔들었던 무수한 깃발을 상징하는 설치물 같기도 하고 노을과 어우러지며 이색적인 풍경을 연출하기도 한다.

▲일몰이 멋진 '용산호'
정읍에는 걷기 좋고 산과 호수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내장호 수변 길이 있다. 하지만 멋진 일몰을 보고 싶다면 내장산 골프·리조트 단지 바로 옆 용산호 수변길을 추천한다. 용산호는 지금 다양한 체험 콘텐츠를 갖춘 공원을 조성해 시민과 관광객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현재 둘레길은 일부 구간만 임시 개통한 상태다. 아직 걷기에는 구간이 짧고 공사 중인 곳이 있지만, 사람들이 찾지 않은 곳에서 여유롭게 노을을 보고 싶은 분에게 추천한다. 용산호는 노을 경관이 아주아주 빼어나다. 주변에 카페와 한우 홍보관이 있어서 저녁 식사와 휴식을 겸해 방문해도 좋겠다.
용산호는 국토교통부 공모사업으로 국비를 지원받아 둘레길과 쉼터, 경관조명, 포토존, 분수 등을 조성하고 있다. 원점으로 회귀하는 둘레길까지 완공되면 정읍의 또 하나의 명소가 될 것이다. 정촌가요특구와도 지척이고 내장산IC에서 내장산으로 가는 길에 있어서 접근성도 좋다.

해가 지고 아직 주위가 어두워지기 전 주변을 빙 둘러보았는데 꽤 넓은 공원이 있다. 언뜻 보기에 모아이 석상 같은 돌기둥이 열을 지어 있고, 편히 조망하며 쉴 수 있는 모정도 있다. 호수 안쪽으로 들어가는 곳에 바리케이드가 있어서 돌아 나왔지만, 내장호수보다 작아서 부담 없이 원점으로 돌아올 수 있는 코스가 될 것 같다.

/김대연기자·red@/자료제공= 전북도청 전북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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