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이 닮은 마을, 신들의 비호를 받다

<순창군 동계면 구미리와 거북이> 최병호 기자l승인2021.11.11l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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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를 의미할 때, 떠오르는 것이 십장생이다. 십장생은 해[日]·달[月]·산(山)·내[川]·대나무[竹]·소나무[松]·거북[龜]·학(鶴)·사슴[鹿]·불로초(不老草芝)라고 말하기도 하고, 해·돌[石]·물[水]·구름[雲]·소나무·대나무·불로초·거북·학·산이라고도 표현한다.

장수를 의미하는 십장생 중 특히, 거북이를 상징하는 마을이 많다. 거북은 포유류로서 장수를 상징하는 영물로 선사 시대부터 신앙의 대상이었다. 사람과 집, 마을 등을 보호해 주는 「사신도(四神圖)」에도 등장하며, 북쪽 현무(玄武)에 거북이 배치된다. 따라서 거북은 장수의 상징으로서 수호신, 보호신으로 숭배되어 왔다.

순창에도 거북이에서 유래해 이름이 지어진 곳이 있다. 동계면에 속하는 구미리로 거북 구(龜) 자와 꼬리 미(尾) 자를 합해 구미리(龜尾里)라 부르게 됐다.

구미리는 법정리로 구미리 안에 귀주마을과 용동마을이 있다. 이 마을 앞에는 거북이에서 유래한 마을답게 입구에 딱하니 거북바위가 지키고 있다. 거북바위가 입구를 딱하고 지키며 수호신 역할을 한다.

구미리 거북바위는 머리 부분이 마을 밖으로 향하고 꼬리 부분이 마을을 향하고 있다. 구미리 돌거북은 거북 형상을 꼭 닮은 자연석으로, 머리 부분은 잘린 상태이나 몸체와 발 부분, 꼬리 부분은 매우 정교할 만큼 조형성이 뛰어난 거북 형상을 가지고 있다. 길이는 150㎝, 높이는 100㎝ 정도 된다.

구미리는 마을 전체가 거북이의 형상을 나타내고 있다. 구미리 뒤쪽으로 무량산이 보이며 밑에서 마을 전체를 바라보면 거대한 거북이가 산으로 엉금엉금 오르다 정상 가까이에서 잠깐 멈추고 뒤를 뒤돌아보는 등귀형(登龜形)이라고 할 수 있다.

네발 달리고 땅을 기어다니는 짐승이 경사진 곳을 오를 때나 내려갈 때는 꼬리가 있는 괄약근 쪽에 힘이 많이 들어간다. 괄약근 끝 지점에 붙어있는 꼬리를 좌우로 움직이면서 균형도 잡고 힘을 얻는다. 또한 알을 낳는 부위이기도 해 풍요을 상징한다. 바로 그 곳에 귀주마을과 용동마을이 있다. 이곳에 남원양씨 宗家가 자리잡고 있다.

구미마을 앞산의 칠성바위

구미리 칠성 바위는 동계면 구미리 마을 앞 앞산에 위치한다. 칠성 바위가 위치하는 곳은 ‘한 일(一)’ 자형의 지대 위로, 옹기종기 모여 있는 여러 개의 바위 윗면 평평한 곳에 북두칠성이 조각되어 있다.

가로 2m, 세로 2m, 높이 1m 정도 되는 바위에 겹성 혈과 같이 둥근 바위 구멍을 새기고 바위 구멍끼리 연결하여 북두칠성을 표현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선사 시대는 물론 고대 국가 시대부터 북두칠성을 숭배하는 고유의 신앙이 있다. 하늘의 북두칠성은 방위를 가리키고 1년 4계절이 변화하는 시간을 재는 기준이었다. 북두칠성을 칠성신(七星神)이라 불렀는데, 칠성신이 길흉화복과 생명, 수명을 관장한다고 믿었다. 도교가 중국에서 전래하면서 불교와 결합한 도교의 북두칠성 신앙이 민간 신앙과 교유하면서 도교의 칠성 여래, 칠원성군(七元星君)을 모시는 민속 신앙으로 정착했다.

구미리 칠성 바위는 구미리에 거주하는 주민 가운데 과거 시험을 앞둔 가족들이 찾아가 합격을 기원하는 의례를 거행하는 곳이었다. 도교에서 북두칠성은 과거 급제를 관장하는 문창제군(文昌帝君)으로 조선 시대 과거를 응시하는 유생들이 적극 선호했으며, 선비 계층에도 널리 알려진 문형(文衡)의 신이었다. 도교 신앙에서 문창제군을 봉안하여 소원을 비는 신앙은 조선 시대 민간 신앙으로 정착해 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구미리에서 칠성 바위에 치성을 드리거나 합격 기원 의식을 거행하는 일은 없어졌다. 조선 시대의 과거 합격을 기원하던 대상이었기에 시대 변천에 따라 무용지물이 되었지만, 과거 시험이 실행되던 당시의 문형 유적이라 할 수 있다. 

구미리는 남원 양씨(南原楊氏)의 집성촌이며, 조선 시대 과거 합격자를 많이 배출한 마을이었다. 북두칠성을 새긴 칠성 바위는 구미리 남원 양씨 가문에서 유생들의 합격을 기원하였던 문형 유적으로, 다른 지역에서 찾아볼 수 없는 매우 소중한 유산이다.  

구미리에 위치한 구암정

구암정(龜岩亭)은 순창군 동계면 구미리 섬진강 만수탄 천변 위에 자리 잡고 있는 정자로, 문화재자료 제131호로 지정되었다. 귀암 양배는 남원 사람으로 일찍부터 학문을 닦아 그 지식이 높았으나 무오사화와 갑자사화의 양대사화로 어진 사람들이 오히려 화 당하는 것을 보고 자연 속에 묻혀 아우 돈(墩)과 함께 세상을 잊고 살았다.

연산조(燕山朝)에 이르러 여러 차례 조정에서는 그의 학문과 덕행이 높음을 듣고 사헌부 장령의 벼슬을 내렸으나 지금도 적성강 상류 만수탄에는 양씨 형제가 고기를 낚던 바위가 남아 있어 배암, 돈암이라 부르거나 합쳐서 형제암이라 부르고 있다.

그가 죽은 뒤에 후손들이 적성면 지북리에 지계서원(芝溪書院)을 세워 그를 배향했으나, 1868년(고종5년)에 서원 철폐령에 의해 헐려진 후 그의 유업을 기리기 위해 1901년 호를 따서 구암정(龜岩亭)을 세웠으며, 구암정(龜岩亭)은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되어있는데 남원양씨(南原楊氏) 대종회(大宗會)에서 보호 관리하고 있다.

섬진강변을 따라 길게 난 자전거 도로 옆으로 구암정이 위치해 있다보니 봄, 가을이면 자전거 라이더들이 잠시 땀을 닦고, 뭉친 다리를 푸는 휴식 공간으로도 활용된다.

순창 열부 이씨려

마을 입구 도착하면 바로 옆으로 순창 열부 이씨려가 보인다. 이씨 부인에 관련된 이야기는 1760년 편찬된 『옥천 군지(玉川郡誌)』 경신판(庚辰版) 열부 이씨전(烈婦李氏傳)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직제학(直提學) 양수생(楊首生)의 부인으로 이씨가 임신 중에 남편과 사별하였다. 그의 부모는 젊어서 과부(寡婦)가 되는 것을 불쌍히 여겨 이씨의 뜻과 상관없이 재가(再嫁)를 시키려 하였으나, 이씨는 죽음으로 항거하고 아들을 낳으매 겨우 몇 년을 지나 또 강제로 시집보내려 하니 이씨는 몰래 비복(婢僕)들 서너 명과 아기를 업고 남편의 홍패(紅牌)와 대제학(大提學)인 시부(媤父)의 홍패를 간직하여 남쪽으로 양씨의 옛터인 남원부 교룡산 아래로 내려왔다. 얼마 안 되어 아지발도(阿只拔都)의 난을 만나 비홍치(飛鴻峙)에 올라 본군(本郡) 무량산(無量山) 쪽을 보고 가히 사람이 살 만한 곳임을 알고 가시를 헤치고 들어가 자리를 잡으니 구미촌(龜尾村)이다.”

이씨 부인은 정절을 지키고 자손을 번창시켜 일약 문벌지족으로 성장시킨 공로를 인정받아 세조 대왕께서 그 정절을 아름답게 여겨 정려(旌閭)를 내려줄 것을 명했다.

이씨 부인은 가문의 전통을 지키려 남편과 시아버지의 홍패를 가슴에 품고 남원까지 내려왔으며, 친정 부모의 간곡한 부탁인 개가를 뿌리치고 두 남편을 섬길 수 없다는 정조 관념과 자손을 이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순창의 남원 양씨가 대대로 번창하게 만들었다.

대체로 효자 열부의 정려는 부모 봉양이 우선적인 가치 기준이지만, 동계면 구미리의 이씨 부인은 정절과 자손 번창의 공로를 인정받아 정려를 받은 특이한 사례이다.

또한 이씨 부인이 가슴에 품고 내려온 과거 합격증 홍패는 고려 시대의 과거 제도 연구에 매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어 남원 양씨 종중 문서 일괄로 1981년 7월 15일 보물 제725호로 지정되었다.

지금 동계면 구미리는 주말이면 관광객들로 붐빈다. 과거에는 장군목을 가려는 관광객들로 붐볐지만 최근에는 용궐산 하늘길을 보러 모인다. 구미리 앞을 지나가던 도로는 말끔해지고 도로 폭도 넓어지며, 오는 가는 길이 많이 개선됐다.

요즘 관광객이 많아지고 차량 소통이 많아지면서 구미리 주민의 교통안전을 신호등, 과속카메라 등 교통체계도 많이 좋아졌다.

구미리에 도착하면, 현대의 관광시설도 좋지만 구미리가 간직한 다양한 문화재를 보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최병호기자hoya0276@
/순창=이홍식기자·


최병호 기자  cbh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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