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과와 지방자치연구소는 2학기 기획이론특강에 국내 재계·학계를 대표하는 명사들을 초청해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10배의 혁신’을 고민한다. 전(前) 국토교통부 장관인 김현미 초빙교수가 담당하는 기획이론특강은 국내 저명인사들과 함께 전북의 미래를 혁신적으로 그려보는 ‘문샷씽킹(moonshot thinking)’을 구체화한다. 16일에는 승효상 제5기 국가건축정책위원장이 전북대학교 진수당을 찾아 ‘메타시티-코로나시대의 도시와 건축’을 주제로 전주다운 전통의 의미를 되새겼다.

“메타시티(Metacity)는 물적팽창이나 지역적 광역화가 아닌, 내적인 질적성장을 추구합니다. 이제는 협력과 공존의 도시, 더 나아가 성찰의 도시를 지향해야 합니다. 인문학적 상상력이 넘치는 도시, 이제 우리는 메타시티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이자 30년 넘게 ‘빈자의 미학’을 추구하고 있는 승효상 전(前) 국가건축정책위원장은 이날 특강에서 “더 이상 팽창위주의 도시정책을 고집하기 보다는 공동체와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갈 수 있는 도시를 조성하자”며 자신이 주창한 ‘인문학적 상상력이 넘쳐나는 도시’를 거듭 강조했다.

“‘10분 동네’ 또는 ‘15분 동네’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10분 동네는 보통 1㎢의 크기이고, 2만명 가량이 거주할 수 있는 규모입니다. 자치적이고 다양성을 앞세우면서 경쟁도 유도하는 획일화하지 않은 공간을 만들 수 있습니다. 메타시티의 방향성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승효상 위원장은 “다소 엉뚱할 수도 있겠지만 전주를 ‘차 없는 도시’로 만드는 방안도 고민했으면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전주는 전통이 살아 숨쉬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에서도 손꼽히는 도시”라면서 “전통도시에 걸맞게 차량이 보이지 않는 도시를 만들었으면 하고, 특히 전주역 앞 첫마중길을 차 없는 길로 만들면 전주가 달라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메타시티를 강조하면서 “코로나19 전과 후를 나눠 도시를 바라보는 지향점이 달라지고 있다”며 20세기 이후부터 현재까지의 건축개념을 긴호흡으로 설명했다.
“유럽의 경우 프랑스혁명과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극심한 도시화의 진통을 겪게 됩니다. 런던과 같은 대도시들은 한결같이 고밀도로 인해 사람들의 주거환경이 비참해졌습니다.

이로 인해 1918년부터 모더니즘이 고개를 들면서 중세시대의 도시구조와 결별하기 위한 새로운 도시환경 개념이 도입됩니다. 특히 20세기 건축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가 공동주택인 아파트를 제안한 이루 거대 콘트리트 빌딩이 당연시되고, 정체가 없던 땅을 등급화하고 계급화시키는 20세기의 서구 건축문화가 보편화됩니다. 땅을 잊어 버리고 구름 위에 사는 고층화가 한동안 미덕인 것처럼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유럽과 서양의 건축기조가 달라졌다”고 전제한 그는 “21세기 초입에 열린 2000년 베니스건축비엔날레의 표제는 ‘덜 미학적인 것이, 더 윤리적이다(Less Aesthetics, More Ethics)’였다”면서 “그동안 주변을 무시하고 스펙터클한 도시풍경과 랜드마크만을 좇았던 서양건축이 이제는 인간의 이성에 경도된 모더니즘을 비판하면서 ‘도시는 이미지보다는 이야기가, 미학보다는 윤리가, 완성보다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화두를 던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정작 한국은 지난 1970년대 이후 서양에서 실패로 규정하고 폐기한 아파트형 건축을 ‘서구화’로 포장해 지금까지 추구하고 있다”면서 “인간관계를 비롯한 소프트웨어는 외면한 채 빽빽한 고층아파트로 대표되는 하드웨어에만 열광하는 한국의 도시건축문화는 문제가 있다”고 쓴소리를 던졌다. 그는 특히 “코로나19 이후의 시대는 과거의 관행으로 돌아가기 보다는 이제부터라도 삶을 바꾸라는 제안한다”면서 “숨가쁘게 달려온 우리들에 대한 경종이 울린 만큼 사실상 와해된 공동체사회를 복원하고 보편적인 가치를 새롭게 정립해야 할 때”라고 밝혔다.
“평지에 도시를 조성한 서양과 달리 우리나라는 도시가 들어선 사정이 달랐습니다. 평지가 보이면 논이 들어섰고, 도시는 산자락에 조성했습니다. 도시 조성을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토건에너지를 수반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은 1970년대 개발시대에 접어들면서 땅은 용도별로 칠해지고, 작전세력이 준동하는 불길한 기운이 거세집니다. 100년 전만 해도 산과 물과 집이 어우러졌다면, 20세기 이후에는 정체불명의 도시건축이 으르렁대고 있습니다. 부동산욕망은 그칠 줄을 모르고 질식할 것 같은 삶의 방식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대규모 아파트는 공동체를 무너뜨린 범죄적 현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메가시티의 수렁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럴수록 인간의 삶과 관계를 중시하는 ‘메타시티’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그는 “당장 우리부터라도 도시가 팽창하겠다는 정책을 버려야 한다”면서 “도시마다 네트워크의 미덕을 앞세워 서로 나눠 가지며 장점을 더 심화시키고 자주 교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메트로폴리탄의 ‘메트로(metro)’는 라틴어로 ‘마더(mother)’란 뜻이며, 번식과 팽창을 의미합니다. 무엇보다 비인간화를 바탕으로 삼고 있습니다. 100만명의 인구를 가진 이 메트로폴리스는 21세기가 시작되던 해에 무려 450개나 되었고, 그 가운데 약 25개 도시는 이미 1000만명 인구의 메갈로폴리스(Megalopolis)나 메가시티로 팽창했습니다. 한발 더 나아가 지구 전체의 단일도시화를 의미하는 에쿠메노폴리스(Ecumenopolis)도 등장했습니다. 2050년에는 인류의 75%가 도시민이 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들의 삶은 안녕할까요.”

그는 메타시티의 대안으로 모로코의 마라케시(Marrakech)를 주목했다. 그는 “12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마라케시는 얼핏 무질서해 보이지만 질서있게 성장하고 있다”면서 “10채의 집을 단위로 여전히 증식하면서 앞으로도 1000년 이상은 지속가능한 도시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간구조가 지속 가능해야 지속가능한 도시가 된다’는 그는 “산등성이에 위치한 이른바 ‘달동네’를 무시할 수 없다”면서 “가난하지만 서로 애환을 나누고 노동과 놀이가 살아숨쉬는 공동영역을 갖춘 달동네를 통해 많은 건축적 영감을 얻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팽창 위주의 메트로시티‧마더시티 등이 분명한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치단체들은 관성적인 도시개발에 매달리고 있다”면서 “전주와 전북이 선제적으로 다원적 민주주의의 도시, 도농공동체(Rurban community-farm city), 연대도시(Network-node), 공유도시를 그려갔으면 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김현미 초빙교수는 “이번 강의를 통해 어떻게 하면 사람답게 사는 인문학적인 도시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과제를 안게 됐다”면서 “이제부터라도 ‘전주다운 전통과 감흥’이 무엇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고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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