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땅 위에 사촌 소유의 건물이 있어 철거소송 절차를 밟았지만 패소했습니다. 할아버지의 유언이 있었기 때문에 제가 패소한 것입니다. 소송에서는 유언 등의 상속문제는 쟁점이 아니었기 때문에 저는 말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말할 기회 없이 패소한 것이 억울합니다.”

상속 등과 관련해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는 이야기이며, 언젠가 나에게도 이같은 일이 벌어지지 말라는 법은 없는 소송입니다.
명도나 철거소송에서는 '핵심쟁점'이라는 것이 있는데 쟁점 이외의 것으로 판결이 내려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때는 법원의 '석명의무'를 검토하고 기간이 길어지더라도 상고해야 합니다.

'석명의무'란 법원이 소송 당사자에게 의견을 진술할 기회를 주어야 할 의무를 일컫습니다.
민사소송법 제136조 제4항은 ‘법원은 당사자가 간과하였음이 분명하다고 인정되는 법률상 사항에 관하여 당사자에게 의견을 진술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말할 기회를 주지 않고 판결하면 불법이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복잡한 상속문제나 이혼문제 등이 함께 있는 상가 명도소송 등은 쟁점이 많아집니다. 법원도 많은 쟁점을 살피다 보면 당사자에게 ‘진술할 기회’를 주지 않고 판단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건 당사자는 특정 쟁점에 대해 진술할 기회 없이 소송에서 패소했다면 상고해야 합니다.

실제로 “철거소송 당사자에게 진술할 기회를 주지 않고 판단한 원심판결은 잘못되었다”며 파기환송 한 대법원 판례가 있습니다(2021다200914).
자세히 살펴보면, 토지소유주 A는 자신의 땅위에 있는 사촌 B의 건물을 철거하라는 소송을 냈습니다. B는 “내 건물은 20년 이상 A토지 위에 있었기 때문에 취득시효 법리에 따라 땅은 자신의 것이 되었다”며 “소유권이전등기를 하라”고 맞섰습니다.

원심은 B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할아버지로부터 상속되어 온 해당 토지는 따지고 보면 B의 것이 맞다”는 취지의 판결이었습니다. 결국 A의 철거소송이 패소한 것입니다. 이에 A는 “B는 취득시효를 주장했는데 판결은 상속문제에 근거해서 나왔다”며 “재판 중 상속문제는 쟁점이 아니었기 때문에 말할 기회도 없었다”는 취지로 상고했습니다.
이에 대법원은 “A를 패소시킨 원심의 사실관계 판단자체는 문제가 없다” 면서도 “A에게 특정부분에 관한 의견진술 기회를 주지 않은 것은 문제가 있다”는 취지로 판시하며 사건을 돌려보냈습니다.

대법원은 “만일 당사자가 전혀 의식하지 못하거나 예상하지 못하였던 법률적 관점을 이유로 법원이 청구의 당부를 판단하려는 경우에는 그 법률적 관점에 대하여 당사자에게 의견진술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 고 전제한 것입니다.
이어 “유증을 원인으로 한 소유권이전등기절차 이행청구권의 존부 등에 관하여 당사자들에게 의견진술의 기회를 부여하거나 석명권을 행사하지 아니한 채 판단한 원심의 판단에는 석명의무를 위반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 고 판시했습니다.

즉, “A에게 진술기회를 주지 않고 판단한 잘못은 석명의무 위반이니 다시 판단하라”며 사건을 돌려보낸 것입니다.
만약 소송 중 주된 쟁점이 되지 않았던 내용으로 판결을 받아 패소했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현명할까요. 먼저 당사자들이 주장하는 내용이 소송에서 주로 다루어졌던 쟁점 인지를 확인해 봐야 합니다. 당사들이 ▲주된 쟁점을 몰랐기 때문에 차마 다투어보지 않았던 점이 판결을 다른 방향으로 이끈 것은 아닌지 판단해 보라는 뜻입니다. 물론 이럴 때는 법률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으며, 검토를 통해 ▲ 상고 조치를 해야 문제가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법원은 법률에 따라 당사자들에게 의견을 진술할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혹시, 패소했을 때는 다툼의 기회를 제대로 보장받았는지 확인해 시간과 비용이 들더라도 사건의 진실을 바로 잡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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