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주군 봉동읍, 오래된 읍내에 최근 특별한 공간이 생겼다. 바로 초등학교 앞 오래된 문방구였던 자리에 문을 연 ‘사부작 채집가’다. ‘사부작 채집가’는 쇼룸, 아트 스튜디오이자 예약제 화실이기도 하다. 이러한 정체성과 세련됨이 다소 낯설고 이질적일 법도 하지만 주변 풍경과 묘하게 잘 어우러지는 공간이기도 하다. <사부작 채집가> 공동대표인 시각예술가 김시오 작가를 만났다.

이름이 매우 독특하다. <사부작 채집가>는 어떤 공간인가.
사부작 채집가는 말 그대로 지역을 사부작사부작 돌아다니며 채집을 한다는 의미다. ‘살며시’, ‘별로 힘들이지 않고 계속하다’라는 ‘사부작’의 의미처럼 지역의 풍경, 모습들을 발견하고 그것을 채집·재해석한 작업을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다. 얼핏 보면 쇼룸, 아트 스튜디오, 예약제 화실이라는 공간 활용이 너무 다른 결의 활동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이 활동들이 지향하는 바는 모두 같다. 바로 사부작사부작 채집한 지역의 모습을 보여주고, 공유하고, 연결하는 것이다.
현재 <사부작 채집가>가 가장 많이 이용되는 용도는 화실이다. 몇몇 매체에서 ‘그림방’으로 소개해주시기도 했지만 개념이 좀 다르다. <사부작 채집가>만의 특징이 있다면 바로 ‘수업이 없는 화실’이라는 것이다. 이곳은 다양한 재료(수채물감, 색연필, 연필, 크레파스 등)를 경험해보고 스스로 그리는 즐거움에 빠져 볼 수 있는 경험, 그리고 그림을 그리기 위해 다시금 우리 주변을 돌아보고 재발견·재해석하는 경험을 하는 공간으로 운영하고 있다. 만약 그림이 그리기 막막하거나 너무 어렵다면 이곳에 비치된 도안을 활용할 수도 있다. 비치된 엽서 크기의 도안은 완주에서 채집한 다양한 풍경과 사물, 일상의 모습을 담고 있다.

굳이 ‘수업 없는 화실’을 시작하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
수업을 하지 않는 이유는 사람들이 그림을 ‘즐길 수’ 있게 하고 싶어서다. 나는 그림을 전공했지만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꼭 거창하고 대단하고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막상 ‘수업’을 하게 되면 사람들은 ‘잘 그려야 한다’ 또는 ‘적어도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만큼은 돼야지’라는 생각을 자꾸 가지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자유롭게 그림을 그려보세요’라고 하면 의외로 많은 분이 당황스러워하신다. 하지만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서 사람들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스스로 몰입하는 과정에서의 기쁨과 즐거움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그래서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 개입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내가 오롯이 몰입하는 즐거움을 느껴보고 그 경험을 자신의 삶으로 가져가 보시기를 꼭 권하고 싶다.

시각예술활동을 하다가 <사부작 채집가>로 활동을 확장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처음에 <사부작 채집가>는 문화예술공동체로 시작했다. 현재 함께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소현대표와 이야기를 하다가 ‘그림을 그리는 과정을 즐기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지역을 채집해서 다른 가능성과 이야기를 들려주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바람들을 2~3년 전부터 나눴다. 이 아이디어를 실제로 실행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올해 덜컥 일을 저질렀다.
시각예술을 전공하고 한동안 작품활동에만 전념했었다. 꽤 긴 시간이었다. 작품활동에도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셨지만 원화를 구매하는 분 말고도 더 많은 분들이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었다. 사실 원화를 구매하기에는 생활에 비해 다소 가격이 부담스러운 부분도 있지 않은가. 그래서 굿즈에 대해 고민을 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처음에는 파우치나 가방 등 스스로 만들 수 있는 것을 많이 시도했었다. 그러다가 지역자원,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예술과 디자인을 시도하게 됐다. 그러면서 <사부작 채집가>로 자연스럽게 확장이 됐던 것 같다.

<사부작 채집가>는 화실 외에도 재미있는 활동을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다.
<사부작 채집가>를 준비하며 우연히 지역에 대한 탐색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봉동 하면 생강인데, 생강으로 어떤 것을 만들어 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처음에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던진 말이었는데, 또 덜컥 일을 저질러 버렸다. 곧 생강으로 만든 제품이 출시 될 예정이다. 3년 동안 고민 끝에 내놓은 결과물이기도 하다. 지역을 탐색하고 채집해서 다른 가능성과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그렇게 발견한 것이 완주, 봉동의 ‘토종생강’이었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생강은 개량된 품종이다. 토종생강은 개량된 품종에 비해 크기나 양으로 비하면 경제적 가치로서는 우위를 점할 수 없다. 하지만 많은 생강을 비교해보면서 토종생강이 향과 맛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고, 이를 꼭 활용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서 토종생강으로 만든 화장품을 개발하고 있다. 곧 사부작 채집가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

예술가이면서 쉽게 확장하기 힘든 활동영역이다. 어려운 점은 없었나.
공간도 그렇고 제품개발도 그렇고 주변에서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사부작 채집가> 공간을 마련할 때만 해도 주변에서 ‘용감하다’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아마 이전에 있던 제품이나 서비스가 아니라 낯선, 새로운 활동이라서 걱정들을 많이 해주셨던 것 같다. 하지만 이런 활동을 하게 된 것도 내가 작가이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한다. 나는 작가란 어떤 현상을 해석하고 새로운 시각언어로, 이야기로 만들어 내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생강화장품을 만드는 것도, <사부작 채집가>도 이와 마찬가지다. 그런 맥락에서 이러한 활동-지역을 탐색하고 채집해서 다른 가능성과 이야기를 하는 것이 작가의 역할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사부작 채집가>에 방문하시는 분들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사는 게 늘 완성형이고 완벽한 것은 아니지 않나. 그림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왕이면 그 과정을 좀 충분히 즐기셨으면 좋겠다. <사부작 채집가>는 그 과정을 그림을 통한 몰입과 즐거움이라고 말씀드리지만 궁극적으로는 그 경험을 통해 좀 더 여유를 되찾고, 스스로에게 조금 더 너그러워지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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