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석 전북도립미술관 학예연구팀장

전북도립미술관에서 10월 29일에 개최한 《달빛연가: 한지워크와 현대미술》展은 한지의 본향(本鄕)인 전주가 품고 있는 독자적인 한지 제조의 전통적인 방식과 그 정신을 새롭게 조명하고자 기획하였다. 더 나아가 전통 한지가 전통 공예로만 머무르지 않고 현대미술 작품으로 이어져 국제화(國際化) 할 수 있는 방안 모색 또한 중요한 기획 의도이다. 즉 이번 전시의 의의(意義)는 닥나무 껍질과 닥풀(황촉규)를 배합한 독창적인 제지법을 고안해낸 우리나라의 전통 한지가 옛것만을 고집하고 있지 않고 다양한 현대미술로의 확장성과 그 가능성을 제시하기 위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참여작가는 미국, 독일, 한국 등 총 30명이며, 122점의 작품이 출품, 총 5개 섹션으로 나뉘어서 전시장을 구성하였다. 1전시실은 한지 체험 코너와 함께, 현재 전북 임실군에서 전통 한지를 제작하는‘홍춘수(국가 중요무형문화재 제117호 한지장)’氏를 소개하는 <한지 문화와 홍춘수>, 2전시실은 문자 기록이나 의걸이 장 등 생활문화 안에서 과거와 현재의 만남을 이루는 <전통과 현대의 만남>, 3전시실은 한지 본연의 물성이 지닌 근원적 특성을 쫓는 <물성과 본질의 탐색>, 4전시실은 한지 재료 자체의 물질성과 개념성을 사진, 부조, 미디어 영상 등 다양한 방식으로 조형화한 <시대성과 현실에 관한 사색>, 마지막으로 5전시실은 국내외 예술가들의 자유로운 창작과 변용이 전통 한지의 포용성과 어우러진 <조형적 탐구와 표현>으로 구성하였다.

이번 전시에서 눈여겨볼 작품들을 소개해 보자. 독일의 조각가 ‘안젤라 글라즈카(Glajcar Angela)’는 전주의 전통 한지를 이용하여 공간을 체험하게 하는 <대지의 터널>(2021)을 2층 로비에 선보였다.

전시개막(10.29) 9일 전에 입국해 한지산업지원센터에서 지원받은 89g 흰색 한지 120장을 구기고 다리미로 다려서 펴고 한지 중앙에 각기 다른 사이즈의 구멍을 뚫어서 여러 장의 레이어 개념을 도입, 긴 터널의 조각 설치 작품을 완성하였다. 자연의 빛에서 ‘연노랑’을, 녹색 계열 가벽을 통해서는 ‘연녹색’을 각각 감지할 수 있는 작품으로 관객은 전통 한지를 매개로 무(無)의 공간에서 유(有)의 공간으로의 이동이 가능하다. 최현석 작가의 <신기루_매(蜃氣樓_梅)>(2020)는 일견 전통적인 한지 위에 묘사된 수묵화 작품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온도에 따라 변색하는 특수 안료를 먹으로 만들어 사용함으로써 헤어드라이로 뜨거운 열을 가했을 때 사군자 형상이 사라졌다가 열이 식으면 원래대로 돌아오는 ‘소멸과 생성’의 사유를 체험하게 한다. 유정혜 작가는 직물 공예와 섬유를 이용한 설치작업으로 주목받고 있는데, 이번 전시에 출품한 <달빛 흐르는 길>(2021)은 한지라는 재료를 섬유 예술적 조형, 염색, 구성으로 구축한 ‘사유의 길’을 제공한다.

복도 양쪽에는 각각의 전시장 별 이동시 연결고리 역할을 하기 위해 대형한지로 인쇄한 <20210607 일기 새만금>(김일권 作) 작품이 개관 이래 처음으로 특별설치작품으로 관객을 맞이한다. 새만금 풍경을 사진에 담아 디지털화하고 한지에 프린팅함으로써 미술관 복도 공간이 마치 신비한 해변으로 변해 그곳을 걷는 것처럼 드라마틱한 공간을 연출했다. 이외에도 독일 뉘른베르크 출생으로 현재 미국 뉴욕에서 활동중인 세계적인 페미니즘 아티스트 ‘키키 스미스(Kiki Smith)’가 여성의 일생을 “육아, 여성으로서의 삶, 죽음”의 3단계로 해석한 <Her Bouquet>(2007-2008) 작품도 주목할 만하다.

‘달빛연가’라는 전시 제목은 전통 방식의 한지를 떠낼 때, 닥나무의 죽물 빛깔이 마치‘달빛’을 닮았다고 전래되어 온 것에서 기인한 것인데, 이번 전시가 우리나라 전통 한지의 고유한 물성과 실용가치, 더 나아가 예술적 표현 매체로서의 가능성을 극대화하는 첫 출발점이 되었기를 기대해 본다. 또한 《달빛연가: 한지워크와 현대미술》展을 계기로 국립 혹은 공립기관의“한지현대미술관”이 한지의 본향 전주에 건립되거나 혹은“한지 현대미술 비엔날레”가 세계 최초로 전라북도에서 개최되기를 간절히 꿈꾸어 본다. 이러한 움직임들은 향후 우리나라의 전통 한지가 현대미술 작품의 중심 매체로서 매개하여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는 초석이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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