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화 전주시의회의장

대한민국의 역사 속에 기이한 애증으로 남은 몇몇의 이름들이 있다. 그들은 대통령으로서 국민을 대표하긴 했으나, 군부 쿠데타의 주동자이자 독재자라는 정체성을 결코 지우지 못했다. 그들은 대한민국 역사의 상처이자 지금도 해결되지 못한 갈등의 한 요인이 되고 있다. 그들이 차례로 세상을 떠나고 있다. 사망 소식조차 갈등과 애도의 양가적 감정을 국민에게 남긴다는 점에서, 그들의 이름은 우리 모두에게 크나큰 상처임이 분명하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났다. 사망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1996년 개봉한‘꽃잎’이란 영화 속에서 정신을 잃고 광야를 헤매고 다니던 소녀의 형형한 눈빛이다.

‘꽃잎’은 1980년 5월 광주의 현장에서 사람들이 값없이 목숨을 빼앗기고 인권을 유린당하는 참상을 겪고 미쳐버린 소녀의 이야기이자,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숱한 희생자와 그 유가족의 이야기다.

상처는 때론 너무나 적나라해서 잊어버리고 싶어지기도 한다. 많은 이들이 그날의 참상을 잊어가고 있다. 5.18 민주화 운동을 폄훼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그 의미를 모르는 청소년들도 많아졌다.

그러나 덮어버린 상처는 곪기 마련이다. 반드시 진실을 규명하고 진정한 사과와 위로가 있을 때만, 진정한 치유가 가능한 것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별세는, 그것을 불가능하게 해버린 일이기에 안타깝지 않을 수 없다. 법으로 더 이상의 대가를 치를 수 없다 해도, 그는 반드시 지난 역사의 상처를 사과했어야 했다.

1979년 무려 17년 동안 독재를 이어오던 박정희 전 대통령이 피살되면서, 많은 국민들은 억눌려왔던 민주화의 꿈을 이루기를 원했다. 그러나 전두환 전 대통령을 선두로 한 신군부는 불시에 비상계엄을 내렸고, 총칼과 무력으로 정권을 찬탈했다.

이때 광주에서 대학생과 계엄군과의 충돌이 일어났고, 이 사태는 시민에게로 이어져 공수부대에 의해 광주의 무고한 시민들이 무작위로 학살되었다. 이후, 전투사단과 공수여단 병력 2만 5천명은 대한민국의 국민이자 광주시민인 민간인에게로 장갑차를 앞세우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 사태로 추산된 피해자만 민간인 사망 154명, 실종 79명, 상이 3천여 명 등 모두 5천명이나 되었다. 대한민국의 진정한 민주주의 정착을 열망했다는 이유만으로 숱한 시민들이 귀한 목숨을 잃었던 것이다.

시간은 흐른다. 설사 회복되지 못한 상처였다 하더라도, 인간은 극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지난한 역사를 걸어오며, 숱한 상처에 맞서 싸워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는 뜻이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은 이후 대한민국 민주화 운동의 원동력이자 밑거름이 되었고, 1995년에는 <5.18 민주화 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제정으로 희생자에 대한 보상과 묘역 및 성역화가 이루어졌다.

비록 가해자들의 진정한 사과는 받지 못했으나, 분명한 것은 독재자의 시대가 마감되었다는 점이다.

내년부터는「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의 시행을 통해 본격적인 자치분권 2.0시대가 개막한다. 민주주의는 물론 지방자치의 진정한 실현을 위해 더욱 도약하게 되는 시기다.

전주시의회 또한, 시대의 변화에 발맞추어 시민을 진정한 시대의 주인으로 세우기 위해 입법, 행정 등 다양한 분야에서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있다. 이제는 민주화를 꿈꾸는 시대가 아니라, 그 이상의 가치를 구현할 수 있는 시대인 것이다.

아픔의 역사는 분명 잊히지 않겠지만, 그 역사를 잊지 않고 과오가 반복되지 않도록 민주주의 가치와 소중함을 되새겨 노력해간다면, 아픔보다는 미래의 희망이 더욱 빛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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