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과 현대의 아름다운 공존

<16>남원 수지면 최병호 기자l승인2021.12.07l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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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 유래

남원 수지면은 수지방(水旨坊)과 초리방(草里坊)등 2개 방(坊)이 있었던 지역으로, 1897년(고종 34) 8도(道)를 13개 도(道)로 개편하면서 방(坊)을 면(面)으로 바꾸었고, 1906년에는 초리면(草里面)이 수지면(水旨面)으로 편입됐다.

남원군(南原郡) 수지면은 남창(南倉), 초리(草里), 마연(馬淵), 산촌(山村), 둔촌(屯村), 가정(柯亭), 외호곡(外虎谷), 내호곡(內虎谷), 포암(包岩), 유촌(柳村), 갈촌(葛村), 양촌(良村), 진곡(眞谷), 고정(考亭), 마륜(馬輪) 등 15개 리(里)를 관할했다. 이후 남창, 초리, 산정(山亭), 유암(柳岩), 호곡(好谷), 고평(考坪) 등 6개 리 17개 자연마을로 개편하고, 호곡리에 면사무소를 설치했다.

1952년 신덕(新德)마을이 정착농원 마을로 형성되었고, 1990년에는 남창마을을 남창과 용강(龍剛)마을로 분리했다.

1995년 1월 1일 남원시·군이 통합됨에 따라 남원시 수지면이 되었고, 6개 법정리, 19개 행정리, 31개 반으로 구성되어 있다.

면을 관통하여 흐르는 수지천의 물이 깨끗하고 물맛이 좋아 ‘물 수(水)’자, ‘맛있을 지(旨)’자를 써서 ‘수지’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한다.

폐교를 미술관으로 꾸민 ‘수지미술관’도 위치하고 있어 다양한 문화생활도 영위할 수 있는 곳이다.

 

# 수지면 호곡마을(흠실마을)

남원에서 19번 국도를 타고 구례 방향으로 달리다 60번 지방도와 합류해 낮은 고개를 넘으면 수송저수지가 눈에 들어온다.

수송저수지로 들어온 수지천이 마을 앞쪽으로 흐르는데, 그 맞은편으로는 호곡마을이다. 호곡마을은 예로부터 호·영남간의 물적·인적 교류가 활발했던 지역으로, 유·불·선에 정통한 시인묵객과 한량들의 왕래가 잦았던 곳이기도 하다.

호곡마을 건너편에는 구례와 남원의 경계선에 위치한 견두산에 얽힌 재미난 사연이 있다.

견두산의 옛 이름은 호두산(虎頭山으로 이름값을 하느라고 산 주변이며 마을에 호랑이가 출몰하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

이에 조정에 탄원을 올리니 조정에서는 호랑이 기를 누르기 위해 호두산을 견두산으로 바꾸고, 호곡마을의 호(虎)자도 ‘좋을 호(好)’자로 바꾸도록 했다.

이렇게 이름이 바뀐 경위에 대해서는 일제강점기 우리 얼 말살정책의 영향 때문이었다는 이견도 있다.

어찌됐든 견두산 아래 내호곡리가 아이를 감싸는 강보라면, 몽심재는 강보에 안겨있는 아이의 형상이다.

호곡마을은 박씨 문중이 사는 안쪽 마을인 내호곡과 집안의 노비들이나 그 밖의 사람들이 거주하던 외호곡으로 나뉜다.

 

# 몽심재

몽심재는 지금으로부터 350년 전, 연당(蓮堂) 박동식(朴東式, 1763∼1830년)에 의해 건립됐다. 박동식은 14대조 선대인 송암 박문수의 ‘隔洞柳眠元亮夢 登山薇吐伯夷心’(마을을 등지고 늘어서 있는 버드나무는 도연명이 꿈꾸고 있는 듯하고, 산에 오르니 고사리는 백이숙제의 마음을 토하는 것 같구나)란 시구를 받아 첫째 줄 끝자인 몽(夢)자와 둘째 줄 끝자인 심(心)자를 따서 ‘몽심재’라고 지었다.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80호인 몽심재의 중심은 사랑채이다. 돌담을 쌓듯 단을 높이 세운 뒤 집을 올렸는데, 이는 앞산에 가로막힌 전망을 밝게 하기 위해서이다. 사랑채 바로 뒤에 있는 안채도 경사가 있는 땅에 지어 올려 전체적으로 앞으로 흘러내리는 내리막길에 건물을 세운 듯하다. 대문 옆에 지어져 있는 행랑채는 정자가 덧대어져 있어 시선을 끈다.

문간채 옆의 이 정자를 ‘요요정(樂樂亭)’이라 부르는데, 요요정은 하인들의 휴식을 위한 공간이다. 조선시대 정자는 양반들만의 공간이었으므로 노비나 종들은 감히 접근할 수 없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몽심재의 주인은 날씨가 더울 때 하인들도 마음 편히 쉴 수 있도록 문간채 옆에 요요정을 만들었다.

대문 앞마당에 떡 하니 버티고 있는 커다란 바윗돌도 눈에 들어온다. ‘복바위’로 불리기도 하는 이 바위 덕분인지 이곳에 터를 잡은 이래, 죽산 박씨 일가는 3대째부터 만석꾼이 되었다.

우백호보다 좌청룡이 훨씬 길고 튼튼해 풍수상 ‘청룡장(靑龍藏)’ 형국을 갖춘 몽심재 터에서 몸과 마음을 수행하는 도인(道人)이 많이 배출되었다.

호곡마을의 죽산 박씨 중 원불교에 출가한 교무(敎務)가 40여 명에 이르고, 54살의 후계자에게 오체투지로 절을 올려 평화로운 세습이 이루어지도록 한 전설의 인물인 박장식 옹 또한 이곳 출신이다.

몽심재에 들어서면 사랑채며 행랑채의 아기자기함에 한번 놀라고 좁은 마당위에 ㄷ자 형태로 들어선 안채 때문에 또 한번 놀란다.

만석꾼의 살림살이라고 하기엔 소박하기 이를 데 없는 행색이다. 대문 옆에 붙어 있는 두 칸짜리 행랑채와 좁다란 마당 끝에 우뚝 서 있는 다섯 칸짜리 사랑채, 그리고 중문을 지나 들어서면 이내 안채가 보인다.

이것이 호남지역을 호령하던 만석꾼 집의 전부다.

특히 몽심재는 찾아오는 손님을 후하게 대접하기로 이름난 공간이기도 했다.

구례·순천 쪽에서 과거 보러 올라가는 선비들이 들르는 단골 사랑채가 몽심재였고, 전라도뿐 아니라 함양 쪽에서 넘어오는 영남 선비들도 남원을 거쳐가며 머물르는 곳이었다. 게다가 박씨 가문은 사회 환원을 많이 하기로 유명해 앞산 건너편의 초등학교도 이 가문에서 세운 것으로 전한다.

나눔과 위로의 마음이 절실해지는 요즘 같은 때, 그 마음을 몸소 실천한 몽심재와 몽심재를 감싸 안은 호곡마을의 정신이 그래서 더욱 귀하다.

그러한 몽심재는 지난 2009년 죽산 박씨 종가에서 원불교에 기부해 현재 원불교에 귀속돼 있으며, 국가민속문화재 제149호로 지정돼있다.

지난해부터는 문화재청 ‘종가고택활용사업’ 장소로 선정돼 매년 다양한 프로그램이 펼쳐지고 있다.

 

# 어사 박문수 후손들이 살아온 집, 죽산 박씨 종가

남원 몽심재와 담장을 두고 있는 죽산 박씨 종가도 눈여겨볼 만한 곳이다.

조선시대 양반 가옥의 특징을 간직한 저택인 이 공간은 어사 박문수(朴門壽)의 후손들이 대대로 살아온 집으로, 현재도 종손이 살고 있다.

박문수는 고려 말의 충신으로 정몽주, 이색과 더불어 삼로(三老)로 불리었던 인물이다.

이성계가 왕위에 오르는 것에 반대해 두문동에 은둔했던 그는 조선이 건국되자 가족들을 이곳 호곡리로 내려보냈다. 그 후 그의 후손들이 줄곧 이곳에서 살면서 죽산 박씨의 본향이 됐다.

죽산 박씨 종가는 사랑채와 안채로 구성돼 있으며, 안채 동북쪽에는 박문수의 사당이 모셔있다.

사랑채는 몽심재와 건축연대가 비숫한 1785년 경으로 추정되며, 안채는 1841년에 지어졌다.

 

# 지역주민들과 예술을 향유하는 수지미술관

몽심재에서 약 5분 정도 거리의 초리에는 폐교를 리모델링해 만든 수지미술관이 있다.

이 미술관은 지리산과 섬진강의 아름다움에 매료돼 남원으로 이주를 결심한 박상호 대표가 만든 곳으로, 2015년 11월 20일 개관했다.

총 3개의 전시실로 구성돼 있는 수지미술관은 남원시 최초의 제1종 사립미술관으로서 연간 4회 이상의 기획전을 개최하고 있다. 또한, 주민들이 문화향유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다양한 문화예술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 2016년부터 올해까지(2020년 제외) 수지면에 거주하는 주민들과 함께 ‘수지에 문화예술을 꽃피우다’ 프로그램을 기획, 예술을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도록 했으며, 수지면 최초의 아트프리마켓인 ‘수지장터’를 성공적으로 개최해 수지면을 문화 소외지역에서 문화중심지역으로 끌어올렸다.

또 지난 2017년과 2019년에는 인근 초리마을 주민들과 함께 ‘초리시네마-마을영화관’, ‘별이 빛나는 밤에?수지미술관에서의 식사’ 등의 문화예술프로그램을 진행, 로컬문화의 가능성을 선보인 바 있다.

현재 수지미술관에서는 내년 2월 27일까지 ‘흔적-장호·정병수 유작전’을 개최, 전북 출신 작가로서 왕성하게 활동했던 2인 작가의 유작들을 다양하게 선보이고 있다.

 /최병호기자·hoya0276
 


최병호 기자  cbh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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