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석현 한국전기안전공사

 요즘 SNS를 보면 ‘멍’이라는 접미사가 붙은 단어들을 자주 본다. ‘불멍, 비멍, 달멍, 숲멍’ 등 종류도 다양하다. 캠핑장에서 불을 피워놓고 쳐다보는 것을 ‘불멍’, 공원에서 초록 숲을 바라보는 것은 ‘숲멍’, 비가 오는 풍경을 바라보는 것은 ‘비멍’이라고 한다.

 접미사 ‘멍’은 ‘멍 때린다.’라는 표현에서 가져왔다. ‘멍’은 코로나19로 인해 행동이 제한되어 한곳에 머물면서 특정 대상을 바라보며 휴식을 취하는 새로운 트랜드에서 생겨났다. 그렇다고 해도 멍하니 한 곳만 바라보는 행위가 유행한다는 사실을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다.

 멍하니 한 곳만 바라보는 행위가 어떤 희열을 불러일으키기에 이토록 유행된 걸까? 해바라기가 해만 바라보는 것은 생존의 이유라고 하지만, 인간이 한 곳만 바라보는 데에는 그런 대의적인 이유는 없을 것이다.

 ‘멍 때리기’가 유행이 된 이유를 다시금 생각해본다. 아무것도 하기 싫을 만큼 사회의 구성원들이 지쳐있다는 경고일까? 아니면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휴식이 필요한 것일까? 나는 후자에 좀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대게 휴식이라고 하면 휴양지로 여행을 가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쇼핑도 즐기는 것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이조차도 힘겹게 느낄 정도로 방전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멍하니 바라보는 것으로 휴식을 느꼈을 것이다. 

 이렇게 만든 배경에는 경제 불황이 존재한다. 가계 부채가 늘어나고 불안정해지니 스트레스도 많아지고 생활 피로도도 더 높아졌다. 경제 불황의 여파는 취업시장에도 영향을 미쳤다. 안정적인 소득을 추구하는 이들이 늘어나 공무원 시험 경쟁률도 높아졌다. 올해 9급 공무원 경쟁률은 보면 교육행정이 282:1로 가장 높았고, 일반행정도 100:1로 세 자릿수를 기록했다고 한다. 282명 중 1명이 합격이라니 어마어마한 경쟁률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무한 경쟁을 이겨내어 취업을 해결했다 해도 끝난 것이 아니다. 바로 앞에 내 집 마련의 관문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가정을 꾸리려면 집을 마련해야 하는데 월급은 적고 모은 돈은 없다. 방송에서 아파트 가격이 ‘억’이라는 말이 쉽게 나오고 있으니 답답할 것이다. 

 ‘억’을 마련하려면 ‘억’소리 나게 일을 해도 부족할 판이다. 결국 내 집을 마련하려면 대출을 받지 않고서 꿈꿀 수가 없다. 월급만 모아서 내 집 마련이 가능했던 부모 세대와는 다르다. 최저시급이 올랐다고 해도 노동력의 가치는 이전만 못 한 것이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대출도 능력이다.”라는 말이 있듯, 집을 마련할 수 있을 정도로 대출이 가능한 것에 행복해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 대출에 성공해서 집을 마련해도 매달마다 옥죄는 이자를 갚기 위해 더욱더 자신을 채찍질해야 한다.

 한계의 한계까지 모든 것을 끌어올리다 보니 전원 꺼진 스마트폰 배터리마냥 방전되기 십상이다. 방전된 스마트폰은 충전기를 연결해 한참을 두어야 사용할 수 있다. 평범한 삶을 꾸려가기에도 벅찬 사회 속에서 방전된 삶을 이어가려면 휴식이 필요하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겨울 땐 잠시 내려놓고 쉬어야 한다.

 몇 년 전에 김제 금산사의 템플스테이에 참가했었다. 템플스테이의 테마는 “나는 쉬고 싶다”였다. 쉼을 제대로 즐길 수 있도록 최소한의 프로그램만 운영되었고, 그조차도 원하지 않으면 참가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숙소에서 가만히 누워있다 절을 거닐곤 했다. 상쾌한 공기를 마시는 것만으로도 심신의 안정을 느꼈던 기억이 있다. 어쩌면 그것이 바로 ‘쉼’의 미학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멍 때리기’ 휴식을 통해 지친 삶을 회복하여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치열한 삶을 잠시 멈추고 요즘 유행한다는 ‘멍’을 해보자. 모든 것을 내려놓은 홀가분함이 새로운 원동력을 부여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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