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황화대」를 통해 우리나라가 이탈리아와 비교되는 동아지중해의 해양강국이며, 고대국가시대에 변산반도가 해상교통의 요충지임을 알게 됐다. 해상교통의 요충지이다 보니 조난사고가 끊이지를 않아 해상들은 항해의 안전과 풍어를 기원하는 믿음을 갖게 됐다. 지금도 바다 신에게 제를 올리는 풍습이 이어지고 있다. 송화섭 교수님의 연구에 따르면 변산반도 죽막동 해변굴과 수성당은 천연의 세계 최고 관음성지이다. 관음신앙은 여러 형태로 오늘날까지 계승되고 있다.

죽막동에서는 정월 열나흘 날 당제를 지낸다. 항해의 안전을 기원하는 제사이다. 위도 대리마을에서는 정월 초이튿날 원당제와 용왕제를 지낸다. 원당에서는 원당마누라 즉 백의관음보살에게 원당제를 지내고, 대리마을 포구에서는 용왕제를 지낸다. 용왕제를 지낼 때 마지막으로 띠배에 제물을 실어 바다로 띠배보내기를 한다. 용왕제는 풍어제인 동시에 고기잡이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하는 원혼을 달래는 위령제이다. 대리마을 당제는 바닷길을 관장하는 백의관음보살에게 지내는 원당제, 바다 속을 관장하는 용왕에게 풍어를 기원하는 용왕제, 바다에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하는 수중고혼을 위로하는 띠배를 바다에 띄워 보내는 송액제로 제사가 진행된다.

변산반도 줄포만에는 이처럼 1,500여 년 동안 해양신앙이 역동적으로 내려오고 있다. 그 중심에는 죽막동 해변굴이 자리 잡고 있다. 개양할머니는 죽막동 해변굴에 처소를 정하고 8도에 딸들을 시집보내고 관장하는 항해 보호신이자 남해관음이다. 남해관음신앙은 세계적으로 펼쳐진 신앙으로서 고대국가시대부터 보편적인 믿음이다. 변산반도가 고대 해양신앙의 중심지임을 입증하고 있다. 

원래 남해관음은 인도 상인들이 항해 보호신으로 신봉했다. 인도 상인들은 말라카해협을 통과해 북태평양으로 진출하면서 인도차이나반도 남해, 중국 남해에도 백의관음보살 신앙을 전파했다. 『법화경』 관세음보살보문품에 “폭풍이 불어 금은보화를 실은 배가 떠내려가더라도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부르면 구제된다.”고 했다. 이 지역 해상들은 자연적으로 남해관음을 항해 보호신으로 적극적으로 믿게 됐다. 남해관음은 이에 따라 남인도 남해의 포탈락카, 중국 주산군도의 보타낙가산, 한국 변산반도의 죽막동 해변굴을 중심으로 뿌리를 내리게 된 것이다. 

죽막동 제사유적지에서 나오는 유물이 5세기 중엽에서 6세기 중엽의 제사용 토기가 주류를 차지하며 중국과 일본 유물 등이 포함된 것도 이를 증명한다. 그 시기는 백제 동성왕과 무령왕 대이며, 백제가 공주로 천도한 이후 중국 남조와 외교관계를 활발히 전개하던 시점이다. 발정(發正)의 『관세음응험기』는 백제와 중국 남조의 해상교류를 보여준다. 발정은 월주계 산의 관음도실에 들렸다가 2명의 구도자들이 겪은 관세음응험을 기록한 것이다. 여기에서 구도자들에게 밥을 제공하는 노구(老?) 할머니가 등장하는 데 이 할머니가 죽막동 수성당 할머니의 원형일 수 있다는 해석이다. 

발정 스님의 『관세음응험기』에 나오는 해신할머니는 관세음보살의 화신이다. 관음도실 등 발정 스님의 행로와 연대를 볼 때 수성당 개양할머니는 보타낙가산 주산반도에서 몇 걸음 걸어서 온 관음보살이다. 이처럼 백제시대에 중국 보타낙가산의 관음신앙이 변산반도에 들어온 것으로 볼 수 있다. 개양할머니는 하얀 옷을 입고 키가 우뚝하니 크고 8명의 딸들을 거느리고 있다. 개양할머니는 해신할머니요, 관음보살의 화신이다. 

수성당의 할머니상도 하얀 옷을 입은 관음보살로 표현되고 있다. 천연의 해변굴은 관음굴이며, 주변에 자생하는 죽도 관음죽이다. 보타낙가산도 해변굴과 자죽림이 유명하다. 전라북도는 이 같은 세계 최고의 관음성지의 전통을 살리며, 새만금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해양강국의 시대를 열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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