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전기 역사의 중심은 하남 위례성이다. 고구려 주몽의 아들 비류와 온조가 내려와 각기 나라를 세웠는데 비류백제와 온조백제다. 먼저 온조는 하북 위례성을 근거지로 나라를 세우고 그 이름을 십제라고 했다. 미추홀에 정착한 비류 집단은 나중에 온조백제에 합류한다. 이를 계기로 온조는 도성을 하북 위례성에서 하남 위례성으로 옮기고 국호도 백제라고 했다. 그러니까 초기 백제 도읍지는 바로 온조가 왕성을 건설한 하남 위례성(한성)이다.

하남 위례성의 위치에 대해서는 설이 분분하다. 서울 풍납동 토성이라는 게 다수설이고 몽촌토성, 하남시, 천안시 등이 각기 하남 위례성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한때 몽촌토성이 하남 위례성으로 주장되기도 했으나 왕성 수준의 유물이 나오지 않아 지금은 잦아들었다. 그리고 대신 강력한 후보가 된 곳이 바로 풍납동 토성이다.

풍납 토성은 한성백제 그러니까 BC 18년에서 AD 475년까지 약 500년간의 백제 도읍지로 믿어지고 있다. 고구려 침공으로 한성백제가 불타자 백제는 웅진으로 천도를 단행한다. 그때가 475년이었다. 이후 백제는 185년간 존속한다.

풍납 토성이 하남 위례성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고고학적 증거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우선 규모만 해도 한반도에서 가장 큰 토성이다. 현재는 2.2km 정도만 남아 있지만 원래는 3.5km가 넘는 대규모였다. 토성 아랫부분 너비는 무려 40m였고 높이는 10m가 넘었다. 또 성 내부 발굴에서는 넓은 면적의 주거지와 도로, 수로, 대형 건물터, 우물, 제사용 토기, 말 머리뼈 등 수만 점이 쏟아져나왔다.

그런데 최근 삼표산업 풍납 레미콘공장 땅에서 풍납토성 서성벽이 확인됐다고 한다. 이 공장 중 일부 반환부지 시굴 조사 결과 판축 기법을 사용해 쌓은 성벽이 있었다. 또 성벽의 가장 안쪽을 강돌과 깬돌을 사용해 마무리한 점 등이 이미 발굴조사가 진행 중인 다른 서성벽과 일치한다고 한다. 조사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보존 상태가 아주 좋아 가치가 높다는 의견을 냈다.

백제사는 이상하게도 공주와 부여, 익산이 중심이 되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정도 이 지역에 국한됐다. 하지만 백제사의 70% 이상이 한성백제에 해당한다. 또 그때 백제가 가장 강성했다. 중국과 왜, 가야 등 이웃 나라와 교류도 활발했다. 논란이 계속되는 중국 요서 백제 개척도 한성백제의 전성기 때 이야기다. 풍납토성이 제대로 복원되면 묻혀있던 500년 백제사가 되살아날 수 있다. 아울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백제역사유적지구로 추가 등재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의 발굴조사 결과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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