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근식 국민연금공단

고구마를 담는다. 고향집 텃밭에서 수확한 고구마를 상자에 담는다. 올해는 서툰 농사꾼 탓인지 아니면 잦은 비 때문인지 수확이 별로다. 썩은 고구마도 있고 예년보다 크기가 작다. 고구마를 담으면서 고개가 자꾸 시골집 뒤안길에 간다. 뒤안길에서 어머니가 내 이름을 부르며 걸어 나오실 것 같았기 때문이다. 허전한 마음을 달래면서 고구마를 상자에 담는다. 모두 12박스이다.
 지난봄 나는 처음으로 고구마를 직접 심었다. 경운기로 이랑을 만들고 비닐을 씌운 뒤 고구마 줄기를 심었다. 농작물은 주인의 발자국을 먹고 자란다는데 객지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내가 고구마를 잘 가꾸었을 리가 만무하다. 그나마 건강이 좋은 않은 아버지의 덕분에 고구마를 조금이나마 수확할 수 있었다.

고구마가 담긴 상자를 보니 마음이 허전하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빈자리 때문이다. 어머니는 고구마를 캘 때 지금까지 한 번도 자리를 비운 적이 없었다. 수년 전 어머니, 아버지가 토닥거리는 모습이 떠올라 잠시 파란 가을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십여 년 전 어느날, 어머니가 혈액암 투병 중일 때 고향집을 찾았다. 그때가 가을이 끝날 무렵이었다. 부모님은 가을걷이를 끝내고 한가한 시간이었다. 부모님은 고향집 감나무 아래에서 고구마를 상자에 담고 있었다. 감나무에 빨간 홍시가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그해도 일손이 부족해서 감을 제때 따지 못해 나무에 달린 감이 홍시가 되어 고향집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빨간 홍시가 주렁주렁 달린 감나무 아래에서 시골 노인 두 분이 고구마를 담는 모습은 한 폭의 동양화같이 아름다웠다. 나는 두 분 사이에 들어가서 고구마를 담고 상자를 옮겼다.

부모님은 택배 상자에 고구마를 담았다. 먹기에 적당한 크기만 담았다. 누구에게 보낼 거냐고 물으니 삼촌과 막내 이모에게 보낼 거라고 했다. 두 분 모두 자기 동생에게 보낼 고구마를 담았다. 어머니는 이모에게, 아버지는 삼촌에게 보낼 고구마를.

고구마를 담은 뒤 아버지가 상자를 포장하려는데 어머니가 투정했다. 자기 동생인 이모에게 보낼 고구마가 적어 보인다는 이유였다. 아버지는 그럴 리가 없다고 하자 어머니는 믿지 못하겠다며 상자를 번갈아 저울에 올렸다. 우리의 눈은 저울을 향했다. 예상 밖의 일이 일어났다. 이모에게 보낼 상자가 삼촌에게 보낼 상자보다 무거웠다. 어머니는 고구마를 알맞게 담았다며 포장을 하라며 상자를 아버지 앞에 내려놓자, 아버지는 삼촌에게 보낼 상자에 고구마 하나를 슬쩍 담았다. 그러자 어머니도 지지 않겠다며 웃으면서 이모에게 보낼 상자에 고구마 하나를 더 담았다. 어린아이처럼 토닥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한마디 거들었다. 부부싸움은 아들 없는 곳에서 하시라고 하면서 웃었다.

부모님을 보면서 결혼에 관한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요즘은 서로를 확인하고 믿음이 있는 경우에 결혼하지만, 부모님의 시대는 달랐다. 부모님이 결정한 사람이 배우자가 되었다. 부모님도 마찬가지였다. 아버지가 군대 복무 중에 결혼했는데, 결혼식 전날 처음으로 어머니 얼굴을 보았다고 한다. 그런데도 부모님은 연애 결혼한 우리 부부와는 달리 결혼생활 50여 년 동안 부부싸움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어머니가 잔소리하면 아버지는 지게를 지고 들에 나가시니 부부싸움이 되지 않았다. 나는 연애 결혼을 했지만 아내와 마음이 맞지 않아 다툴 때가 많았다. 아이들이나 부모님을 이유로 소리 내며 다툰 적도 있었다. 그때마다 중매 결혼과 연애 결혼 중에 어떤 것이 더 행복할까 하는 의문을 가지곤 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일 수 있지만 결혼 후 서로를 알아가는 것도 괜찮겠구나 하는 생각도 했었다.

고구마 상자를 창고에 옮긴다. 그중에서 가장 큰 고구마는 따로 두었다. 돌아오는 어머니 제사상에 올리고 싶어서다. 일을 마친 후 아버지께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섰다. 파란 하늘 때문인지 고향집을 나서는 오늘은 유난히 눈이 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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