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국제금융위기는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대의 경제 참사로 기록되고 있다. 복잡한 이유로 미국 금융시장이 붕괴된 이후 그 여파는 세계 곳곳으로 파급됐다. 그리고 실업률 상승과 부동산 가격 하락, 경기 침체 등으로 이어져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 대부분이 고통을 당했고 그 후유증은 지금까지도 남아 있다.

문제는 이전에 이미 위기가 닥친다는 경고들이 다수 있었다는 점이다. 미국은 당시 저금리정책을 통해 통화량을 늘리고 있었고 이것이 주택가격 폭등으로 이어졌다. 금융기관들은 옳다 싶어 저소득층에까지 마구 돈을 빌려줬다. 이른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다. 투자 은행들은 금융기관의 이 채권을 사들였고 이를 고위험 파생상품으로 만들어 전 세계에 투자했다. 하지만 세계 경제는 당시 불황이었다. 금융시장은 달아올랐지만 실물경제는 침체일로였다. 금융감독기관들은 이런 상황을 보면서도 팔짱을 낀 채 방관했다.

그리고 미국에서 금리 인상과 함께 부동산 버블이 꺼졌다. 저소득층이 빚을 갚지 못해 무너졌고 은행과 투자자들이 연쇄적으로 파산했다. 리만브러더스, 메릴린치 투자 은행의 파산은 그 위기의 절정이었다. 결국 미국 정부는 막대한 공적자금을 동원해 급한 불을 끄는 강수를 두었다.

미국의 정책분석가인 미셸 부커는 2013년 세계경제포럼에서 국제금융위기와 관련해 ‘회색 코뿔소’라는 새 용어를 썼다. 이 개념은 지속적인 경고로 충분히 예상할 수 있지만 쉽게 간과하는 위험요인을 말한다. 코뿔소가 다가오면 엄청난 몸집과 무게 때문에 누구나 알아챌 수 있는데도 두려움이나 피할 방법을 몰라 내버려 둔다는 의미다. 2008년 금융위기는 그 전에 많은 징후들이 있었음에도 정치인이나 경제리더들이 이를 소홀히 했다는 지적이다.

요즘 세계 경제 흐름에서 회색 코뿔소의 진동이 느껴진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우선 미국이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우리나라도 이에 따르는 추세다. 과다한 가계 부채는 극히 위험한 상황이다. 부동산 거품도 걱정이다. ‘세계의 공장’이라는 중국 경제가 식어가는 것도 문제다. 이런 요인들은 모두 우리 경제에 회색 코뿔소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2008년 국제금융위기와 ‘회색 코뿔소’론의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할 시점이다. 안팎의 상황이 우리 경제에 순풍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정책 당국과 경제리더들은 먼저 회색 코뿔소 존재를 인식하고 그 성격을 파악해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는 데 힘써야 한다. 물론 대세를 거스르지 말고 불어오는 바람과 같은 방향을 유지하는 것도 필요하다. 미셸 부커가 제시한 회색 코뿔소 대응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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