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아 청목미술관학예실장

신년 벽두, 기사 하나로 미술계는 한층 고무되었다. ‘실험예술 한길 80세…'이건용 현상' 세계적 갤러리도 홀렸다’는 기사가 그것이다. 한국실험미술의 거장, 이건용 작가(80)가 페이스갤러리(PACE GALLERY)와 전속 계약을 체결했다.미국계 다국적 화랑인 페이스갤러리는 뉴욕·런던·홍콩·제네바·서울 등 전 세계에 9개의 지점을 운영하는 세계 유수의 화랑으로 이우환 작가 소속 갤러리이다. 페이스갤러리는 2018년 서울 지점, 2019년 베이징 지점에 이어 올해 1월 14일부터 3월 3일까지 홍콩 지점에서 이건용의 세 번째 전시를 연다. 뿐만 아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뉴욕 구겐하임미술관과 협약을 맺고 이건용을 포함한 한국아방가르드미술 특별기획전을 진행할 예정이다.

2019년 여름, 필자는 부산으로 떠난 미술여행길에 해운대 달맞이길 조현화랑을 비롯한 몇몇 갤러리를 둘러본 후 부산시립미술관으로 향했다. 거기서 뜻밖의 전시를 만났다. 그것은 한국현대미술작가조명전의 두 번째 전시로 《이건용_이어진 삶》展이었다. 이건용 작가는 2015년 전북도립미술관에서 진행된 ‘아시아현대미술전 국제퍼포먼스’ 참여 작가였다. 그는 전주객사5길 도심에서 진행된 게릴라식 퍼포먼스에서 중국, 대만, 홍콩, 일본 등 아시아 작가들과 함께 ‘이어진 삶’을 펼쳐보였다. ‘이어진 삶’은 1977년 초연해 몇 가지 방식으로 실행한 퍼포먼스였다. 필자는 논리와 폭넓은 통찰을 환기하는 그의 생생한 퍼포먼스 현장을 눈앞에서 목격하는 호사를 누렸던 기억이 있다.

군산대학교 교수로 30여 년간 재임했던 이건용 작가는 최근 몇 년 사이 국내외 미술계에서 가장 크게 위상이 달라진 미술가 중 한 명이다. 2021년 9~10월 갤러리 현대에서 열린 개인전에서 전시작이 완판되었고, 지금도 그와 공식 관계를 맺고 있는 갤러리현대와 리안갤러리에는 그의 작품 구입을 희망하는 대기자가 수십 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것이 이른바 ‘이건용 현상’이다. 여기서 ‘현상’이란 ‘어떤 것을 좋아하는 현상이 전염병과 같이 전체를 휩쓸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이유가 무엇일까. 예술에 대한 본질적이고 지속적인 탐구와 실험예술 인생 40년이 방증하는 그의 전위성과 독창성을 인정받은 결과로 볼 수 있다. ‘이건용 현상’이 일어난 이유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그동안 기존 울타리 안에 있지 않았다. 항상 바깥에 머물고 바깥에서 생각했다. 그래서 새로운 것들을 할 수 있었다.”

예술경영지원센터 집계에 따르면 지난 2021년 국내 미술시장 규모는 약 9,157억 원에 달했다. 이는 주요 유통영역 시장규모를 추산한 수치로 2020년 시장규모 3,277억 원과 비교하면 3배 가까이 확대된 셈이다. 하지만 코로나 위기에 오히려 뜻밖의 호황을 맞은 한국미술시장에 대해 미술계 일각에서는 우려가 깊다. 아직 시장이 견고하지 않고 극복할 난제가 많다는 이유에서다. 상업화랑의 역사가 50여 년인 점을 고려하면 상황이 썩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견해도 있으나, 기저에 깔린 문제점들은 열거하기 벅찰 만큼 다양하다. 미술시장에서 거래되는 작가 숫자가 적다는 점, 참고할 만한 기준 혹은 지표가 부족하다는 점, 미술작품 구입 및 거래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오해가 깊은 점, 양질의 기획과 비평의 부재 문제, 실효성 있는 국가 지원책 미흡 등이 그것이다. 이는 우리 미술시장이 단시일 내 감당하기에는 어려운 거시적 문제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그러나 우리 미술시장이 크고 작은 문제와 갈등을 해결해가면서 확장·발전될 것으로 기대하는 긍정의 시각도 분명 존재한다.

한국미술시장이 앞으로 10년 동안 뜨거울 것으로 전망되는 현시점에서 전북의 미술시장은 어떤가. 견줄 데 없을 만큼 열악해 보인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물꼬를 터야 할까. 무엇보다 미술 소비시장 진작이 급선무라고 생각된다. 국내외 아트페어 진출기회 확대, 컬렉터 양성, 상업화랑이나 기획사 같은 미술품 유통전문업체 설립 장려, 개인·사회·기업 등의 소비 네트워크 증대 등 어렵지만 꼭 해내야 하는 일들이 산적해 있다. “꼭 해야 하는 일이 있다면, 바로 실행하라, 상황은 언제나 불가능한 법이다.”라는 말처럼 바로 지금부터 사소한 노력이라도 실행할 필요가 있다. ‘한 가정에 그림 한 점씩, 한 가게에 그림 두 점씩, 한 기업에 세 점씩 그림을 걸자’는 운동으로 출발하는 것은어떨까. 전북시각예술가의 약진을 위해 모두 함께 연대하고 크고 작은 실천을 점진적으로 확산해 가는 ‘전북미술 현상’이 우리 지역에도 일어나 들불처럼 번져가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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