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수탈 통로 '춘포역사'는 울었다

익산 춘포면 대장촌 김종순 기자l승인2022.03.10l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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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장역(춘포역의 첫 이름)
   
▲ 춘포 만경강 해넘이

신고산이 우루루루 화물차 가는 소리에 ~ 

지원병 보낸 어머니 가슴만 쥐어뜯고요

어랑 어랑 어허야, 양곡 배급 적어서 콩깻묵만 먹고 사누나

신고산이 우루루루 화물차 가는 소리에 ~

정신대 보낸 어머니 딸이 가엾어 울고요 

어랑어랑 어허야 풀만 씹는 어미 소 배가 고파서 우누나

신고산이 우루루루 화물차 가는 소리에 ~

금붙이 쇠붙이 밥그릇 마저 모조리 긁어갔고요

어랑 어랑 어허야, 이름석자 잃고서 족보만 들고 우누나

 

철도가 탄생되면서 일제 수탈이 본격화 된 뒤에 아픔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기위해 개작된 신고산타령의 민요이다. 

당시 철도는 학도병, 정신대, 강제 공출된 물자를 실어 나르는 침략의 통로로 우리역사에 슬픔을 간직한 그 자체였다. 

쇠죽조차 쑤어 줄 수 없는 열악한 식량 상황, 창씨개명을 받고 이름 마저 빼앗긴 사람들의 억울함과 분노를 노래하고 있다.

 

익산시 춘포면의 대장촌은 1914년 통합이전에 익산군 동일면이였다.

2014년 전라선이 개통되면서 대장촌의 지명으로 대장역이 개통되고 일본 봉건세력(사무라이)의 한반도 진출을 위한 시범부락이였다고 한다.

또 쌀 수탈현장의 연습장이였다는 우리 역사의 슬픈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익산시 춘포면에 소재한 대장촌(大場村)은 그 지명에서 일제 수탈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다. 대장(大場)이라는 뜻은 일본 사람들이 큰 농사를 지었다 해서 붙여진 이이라고도 한다. 

일본 이름 호소가와 모리다치는 일본의 러일전쟁 승리 직후 조선의 내정을 장악한 일본의 힘을 등에 업고 1904년 당시 15만원을 투자하여 춘포에 농장을 짓고 대장촌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그것이 대장촌이라는 지명의 효시이고, 일제는 춘포면 일대에서 수탈한 쌀을 대장촌역(현 춘포역)을 통해 군산항으로 옮겼으며 군산항을 통해 일본으로 수탈했다고 한다. 

 

▲ 춘포역(春浦驛)

익산시 춘포면 덕실리에 있는 춘포역은 전라선의 폐지된 철도역이다. 1914년에 지은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로 슬레이트를 얹은 박공지붕의 목조 구조 건물이다. 춘포역은 처음에는 대장역(大場驛)이라는 이름으로 개통하면서 익산(당시 이리)과 전주를 연결하는 전라선의 보통역으로 시작했다.

대장이란 이름은 일제 강점기  춘포면 소재지 지명인 대장촌(大場村, 오오바무라)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일본은 토지조사를 완료한 후 제방공사를 통해 농경지를 만들었다. 일본인들은 하나둘 씩 모이기 시작했고, 자신들의 농장을 만들었다. 농사를 짓기 위한 물자와 마을에서 생산된 쌀을 군산항으로 운반할 수단이 필요했다. 그렇게 아픔을 간직한 우리나라 최고(最古) 간이역 춘포역이 만들어졌다. 지원병과 정신대, 금붙이, 쇠붙이 우리 조상의 피와 땀을 나르며 일제강점기 춘포역은 혹독하고 치열했던 시간을 보냈다. 

당시 일본인 농장이 설립되면서 근처에 형성된 ‘대장촌’이라는 일본인 이민촌이 있었기 때문에 일본인들이 많이 이용했던 역사 가운데 하나이다.

춘포역사는 일제강점기의 아픈 역사를 온몸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이곳에서 생산된 쌀을 군산으로 실어 나르고, 수탈을 위한 농사에 필요한 물자가 역을 통해 들어 왔던 슬픔을 담은 역사이다.

익산시는 일제 잔재 청산의 일환으로 본래의 지명을 찾기 위해 조례를 개정하여 1996년 1월 1일부로 춘포면 대장촌리를 춘포면 춘포리로 개칭했다.

이에 대장역 역시 현재의 이름인 춘포역으로 바뀌었으며 2007년 6월부터 여객과 화물을 취급하지 않았으며 현재 역의 기능은 사라져 버렸다.

춘포역사는 슬레이트를 얹은 맞배지붕의 목조 구조로서 일제강점기 당시 전형적인 소규모 철도의 소규모 철도역사의 전형을 잘 보여주고 있는 건물로 평가받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역사로 건축사적, 철도사적, 근대사적 문화재로 가치를 인정받는 철도역사이다.

100여년의 시간을 보내고 폐역이되어 2005년 11월 11일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210호로 지정됐다. 

 

▲ 김성철 가옥(호소카와 농장 주임관사)

춘포면 동네에는 일본의 호소카와 가문은 1904년부터 조선의 농지를 매입하기 시작했으며 대장촌에도 호소카와 농장을 운영했고, 현재 이 건물과 대장정미소, 호소카와 농장 주임관사(김성철가옥) 등이 일부 남아있다. 마을엔 대장미용실을 비롯 대장교회, 대장촌 식당 등이 당시의 지명에 대한 흔적을 보여주고 있다.

춘포면 춘포리 103-3에 위치한 김성철 가옥은 2층 목구조건물로 106.78㎡의 규모이다. 원래 ‘호소가와 농장 주임관사’였다. 이 가옥은 호소가와가 세운 대장도정공장에서 100여m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본래는 어느 부유한 일본인이 홀로 사는 어머니를 위해 집을 지었는데 주인이 사망한 뒤 인근의 대농장인 호소카와 농장에서 주임관사로 사용하였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김성철 가옥은 현재까지도 1920년대 일식가옥의 자재와 원형을 그대로 유지한 채 잘 관리되고 있는 점이 눈길을 끌고 있다. 

2005년 11월11일 등록문화재 211호로 지정되어 있다.

 

▲ 대장정미소 

춘포면 대장촌 동네는 예로부터 넓고 비옥한 곡창지대의 마을이다. 호소가와 농장 주임관사 가옥바로 옆집은 중촌경로당이 자리잡고 있으며 길 건너편에는 중촌정비소가 있지만 오래된 세월의 적이 묻어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곳에서 면사무소 방향으로 100m 가량을 걷다보면 세월의 흔적이 쌓인 건물이 눈에 띤다. 대장도정공장이라는 간판을 알리고 있는 커다란 정미소가 나타난다.

대장정부양곡 도정공장은 원래 ‘호소가와 도정공장’이었다. 지상1층, 연면적 2,056㎡의 건축물인 이 건물은 1914년에 세워진 도정공장이다. 

이 도정공장은 춘포 일대를 소유했던 일본인 대지주 호소가와 모리다치가 인근 농토에서 거둬들인 벼를 현미로 가공하여 일본으로 보내기 위해 세운 것이라 한다. 

당시 일본은 막대한 양의 쌀을 사들여 자국에서 다섯 배 이상의 가격에 쌀을 팔았으며 조선의 쌀이 대량으로 수탈되면서 우리나라 쌀값는 큰폭으로 오르게된다. 

 

▲ 다양한 볼거리

춘포면 인근에는 다른 볼거리도 많다. 춘포면을 지나는 만경강 수변공원은 갈대와 억새로 장관을 연출하고 있어 수많은 관광객들이 강변을 찾아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다.

강둑 하천부지 옆에는 잘 조성된 자전길과 함께 캠핑장과 쉼터, 파크골프장 등이 있어 여가생활을 즐기는 시민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만경강 둑방길의 단풍든 벚나무 가로수 길 너머의 강가에 피어난 갈대와 물억새는 강바람이 흔들릴 때면 눈부신 햇빛을 받아 은빛 파도처럼 출렁이며 시원스럽게 달리던 자전거도, 차량도 일단 멈춤으로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춘포지구는 야트막한 언덕하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사방이 훤히 뚫려있어 마을풍경이 모두 쌀이 익어가는 풍요로운 평야지대로 변화되며 한가롭고 평온한 모습을 마음에 담게한다.

이처럼 우리가 주변의 관광지를 보고 느끼는 바는 셀 수 없이 많다. 하지만 억압과 수탈의 역사를 간직한 내용은 갈수록 희박해지고 있어 역사의 현장을 소중하게 간직하면서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전영수 역사문화재과장은 “아직도 조금이라도 남아있는 춘포역을 비롯 파출소와 면사무소, 학교 등은 일제 강점기의 유물이다”며 “아픔의 역사적 흔적은 부서지는 것보다 보존에 더욱 가치가 있을 수 있다. 부서진다고 일제 강점기의 치욕이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익산=김종순기자.soon@


김종순 기자  soonkim223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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