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기일(진안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

현재의 진안군은 1개읍과 10개면의 행정구역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조선시대까지도 남부의 ‘진안현(鎭安縣)’과 북부의 ‘용담현(龍潭縣)’으로 구분되는 지역이었으며, 그 이전인 삼국시대에는 마령현(馬突縣)과 난진아현(難珍阿縣), 물거현(勿居縣)의 세 지역으로 나뉘어 있었다. 물거현(勿居縣)은 용담지역의 삼국시대 지명으로, 현재의 용담면, 동향면, 안천면, 정천면, 주천면 일대를 일컫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인 757년(경덕왕 16)에는 이 지역을 청거현(淸渠縣)이라 칭하기도 하였으며, 고려가 건국된 이후 1313년(충선왕 5)부터는 용담현으로 지명이 고쳐진다. 결국 지금의 진안군 북부지역인 용담면, 동향면, 안천면, 정천면, 주천면 일대의 역사와 문화는 물거현과 청거현, 용담현의 역사라고 볼 수 있겠다.

1990년대 이들 용담지역에 댐이 건립되면서 수몰지역에 위치한 문화재의 조사가 대규모로 추진되었다. 전북대학교 박물관을 중심으로 추진된 조사는 고고, 역사, 고건축, 조경, 생태계, 민속, 사회인류학 등 다양한 분야를 대상으로 진행되었다. 특히 매장문화재를 주된 대상으로 하는 고고분야 조사에서는 고인돌, 무덤군, 유물산포지, 기와가마터 등의 존재가 확인되며 유적의 성격 등을 세부적으로 파악하기 위한 네 차례의 발굴조사가 함께 이루어졌다. 또한 수몰지역 내의 보전가치가 있는 문화재는 이전 복원하여 용담지역의 역사를 전승할 수 있도록 하는 사업도 추진되었다. 이에 진안의 역사와 문화재를 2회에 걸쳐 싣는다

용담댐 수몰지역에 대한 문화재 발굴조사는 1995년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이를 통해 청동기시대 지석묘를 제외하면 보고된 유적이 거의 없던 용담지역의 다양한 매장문화재들이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1) 선사시대

① 구석기시대(진그늘 유적)

구석기시대 용담의 문화상은 정천면 모정리에 위치한 진그늘 유적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진그늘 유적은 후기 구석기 늦은 단계의 유적으로, 조사 당시 전북지역에서 최초로 조사된 구석기시대 유적으로 주목받았다. 유적에서는 돌날석기를 포함하고 있는 문화층이 확인되었는데, 이 문화층에서는 약 12,000여점의 석기와 석기제작터 20여곳이 발견되었다. 이 외에도 유적에서는 완성된 형태로 모여 있는 슴베찌르개 90여점과 몸돌·격지, 부스러기·대형밀개 등이 발견되었다.

진그늘 유적은 고지대에 위치한 유적의 입지, 돌날 제작에 유문암을 주로 사용한 점, 슴베찌르개가 다수 발견된 점 등을 근거로 양질의 석재 산지에서 당시의 사냥용 석기인 슴베찌르개를 대량으로 생산하고, 처리?가공했던 ‘생산지유적’, 즉 석기제작터로 판단되고 있다. 진안고원 지역은 산지지형으로 사냥감과 식물자원이 풍부하였을 것이고, 진그늘 유적 건너편의 좁고 긴 골짜기들은 몰이 사냥하기에 좋은 지세이기에 이러한 입지 특징이 유적의 성격과 연결된다고 볼 수 있겠다.

진그늘 유적은 전북에서 최초로 발굴된 구석기유적으로, 전북지역 고고학 연구에서 시간적 외연을 확대하였을 뿐 아니라 후기 구석기시대의 표식유물인 슴베찌르개가 가장 많이 나온 대규모 유적 중 하나로 동북아시아 구석기 연구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평가되고 있다.

 

② 신석기시대(갈머리 유적)

신석기시대 용담지역의 대표적인 유적은 정천면 갈용리에 위치한 갈머리 유적이다. 갈머리 유적은 신석기시대 생활유적으로, 주거지 3기와 적석노지 53기 등이 조사되었다. 적석노지(積石爐址)는 돌을 쌓아 만든 화덕자리로, 난방과 조리 등을 위해 불을 피우던 자리를 말한다. 갈머리 유적의 적석노지는 대부분 땅을 약간 오목하게 만든 후 자갈을 1~2단 쌓아 만든 것으로, 여기서 추출한 토양시료에 대한 잔존지방산 분석 결과 도토리껍질 성분이 확인되었다. 이를 통해 이 적석노지가 도토리 가공과 관련된 시설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갈머리 유적 출토유물로는 완형의 빗살무늬토기 등 여러 종류의 무늬가 있는 토기편과 굴지구, 갈판과 갈돌 등이 있다. 가장 많이 출토된 유물은 땅을 파거나 일굴 때 쓰는 굴지구(掘地具)로, 전체 석기의 40%를 차지한다. 다음으로 비중이 많은 석기는 갈돌과 갈판으로, 원래 열매나 곡물의 껍질을 벗기고 가루를 만드는데 사용한 초기적인 도구이나, 여기서는 주로 도토리를 가공하는 용도로 이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갈머리 유적은 남부 내륙이나 금강유역의 신석기시대 유적들과 출토 토기나 석기 조합상에서 유사한 양상을 보이고 있어 다른 동시대 유적과 비교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③ 청동기시대의 진안

용담댐 수몰지역에 대한 발굴조사에서 확인된 청동기시대 유적은 크게 생활 관련 유적과 무덤 관련 유적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대부분 금강으로 합류하는 두 지류인 안자천의 구곡, 수좌동, 안자동, 풍암지역과 정자천의 여의곡, 망덕, 모곡, 진그늘, 농산지역에서 집중적으로 조사되었다. 특히 이들 유적에서 주목되는 것은 청동기시대 주 무덤형태인 고인돌이다.

전북지역에서 확인된 고인돌은 약 3,000여기로, 전북지역의 대표적 고인돌 밀집지역인 고창지역에 못지 않은 고인돌이 진안을 중심으로 한 전북 동부 산간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용담지역에서 확인된 고인돌은 단독으로 한 기씩 존재하는 고인돌과 여러 기가 군집을 이루는 형태로 존재하는 고인돌로 구분하여 살펴볼 수 있는데, 군집을 이룬 고인돌은 타원형 또는 사각형의 돌무더기가 바닥에 깔려 있는 묘역이 설치된 것이 특징으로, 출토유물과 층위를 고려할 때 사각형 묘역의 고인돌이 타원원 묘역의 고인돌에 비해 시기적으로 먼적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또한 수기의 고인돌이 밀집하여 군집을 이루고 있는 것은 무덤에 묻혀있는 인물들간의 혈연관계를 보여주는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이처럼 용담댐에서 발견된 고인돌 대부분은 방형이나 원형의 정연한 묘역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지석묘 형태와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또한 고인돌이 가장 밀집 분포한 지역인 전라북도 서부와 전라남도 지역에서는 거의 대부분이 지하에 나든 무덤방에 바로 뚜껑으로 덮는 개석식 고인돌인 것에 반해 용담댐 일원에서는 묘역이 부가된 고인돌이 거의 대부분인 특징을 보이고 있어 이러한 형태의 고인돌을 ‘용담식 고인돌’이라 칭하기도 한다.
 이러한 용담지역의 고인돌 유적 중에서 유구의 형태나 출토유물 등으로 볼 때 가장 이른 시기에 조성된 유적은 안자동과 수좌동, 풍암의 고인돌이다. 이들 고인돌은 사각형의 묘역부를 가지고 묘역 내의 적석시설은 중앙으로 갈수록 높아지는 저분구형태를 띠는 단독묘로서, 일정한 거리를 두고 독립적으로 분포하며, 묘역의 규모가 상대적으로 초대형에 속하고, 매장주체부는 모두 돌덧널이라는 공통된 특징을 지닌다. 이들 단독묘에 이어 여러 고인돌이 군집을 이루며 연접한 고인돌이 등장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용담지역의 대표적인 청동기시대 유적은 정천면 모정리에 위치한 여의곡 유적이다. 여의곡 유적에서는 다수의 고인돌이 확인되었는데, 지하의 무덤방은 돌덧널형이며, 묘역은 긴 사각형형, 사각형, 원형, 타원형으로 3개 정도의 묘역이 열을 지어 연접되어 있다. 무덤 내부에서는 간돌검과 돌화살촉, 붉은간토기 등의 부장품(껴묻거리)이 출토되었다. 특히 유적에서는 지석묘 상석을 이동한 시설로 추정되는 길의 흔적이 확인되어 주목되는데, 이는 지석묘 축조방법과 장송의례 연구 등에 귀중한 자료라 할 수 있다. 유적에서 확인된 지석묘는 현재 용담댐 주변 생태공원으로 이전·복원되어 보존·관리되고 있다.

또한 여의곡 유적에서는 청동기시대의 넓은 밭이 조사되었다. 밭의 면적은 약 4,300㎡로, 밭 유구에 대한 분석 결과 조, 율무, 피 성분이 확인되어 이들 곡물이 재배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여의곡 유적의 밭 유구는 호남지역에서 처음으로 확인된 것으로, 당시의 생산경제체제를 파악하는데 역시 귀중한 자료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인 농경의 시작은 청동기시대로, 이때부터 벼를 비롯한 보리, 조, 피, 수수 등의 생산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고, 각종 농기구가 증가하며, 생산과 가공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노동력과 자원을 조직하고 관리할 수 있는 사회조직이 형성되어 간다. 이 무렵 축조된 거대한 고인돌은 당시 농경문화와 관련된 마을 공동체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외에도 용담지역의 청동기시대 고인돌 유적으로 망덕유적과 모곡 유적 등이 있다. 정천리 모정리에 위치한 망덕유적에서는 총 23기의 고인돌과 및 돌널무덤이 조사되었는데, 청동기시대의 고인돌과 석관묘는 단위별로 군집을 이루고 있으며, 기본적으로 원형, 사각형의 묘역을 갖추고 중앙에 지하 무덤방을 두고 있다. 묘역은 열을 지어 서로 연접하거나 부가되는 양상을 띠고 있는데, 지하 무덤방과 묘역 사이에는 돌을 쌓았다. 특히 쌓인 돌과 개석 상부에서 확인되고 있는 토기편과 석기편 등은 장송의례와 관련성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천면 모정리에 위치한 모곡 유적에서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5~6기 정도와 석관묘 2기가 조사되었다. 조사된 고인돌은 역시 사각형의 묘역을 갖추고, 그 중앙에 지하 무덤방을 축조하여 여의곡 유적과 유사한 양상으로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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