皇華臺
이춘구의 세상이야기

88-만경강 수로는 후백제의 간선 교통로

 
  서기 922년 만경강 새창이나루(新倉津)에서 후백제 견훤대왕은 당시 고승인 경보스님을 마중한다. 경보스님은 892년 당나라로 건너가 불교 선종 공부를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견훤대왕은 도선국사의 제자로서 당대 동리산문의 주석인 경보스님을 국사로 모시기 위해 새창이나루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 자리에는 태자와 신료들이 함께 있었다. 경보스님은 견훤대왕이 불제자로서 세 번 절을 하게 한다. 견훤대왕은 경보스님의 명대로 세 번 절을 한다.
  경보스님은 세 번 절을 하는 견훤대왕의 그릇이 큰 것을 확인하고, 백제의 국사 자리를 수용한다. 견훤대왕은 남복선원(南福禪院)에 머무르게 하고, 국정에 대해 자문을 구했다. 경보국사는 나중에 도선이 머무르던 광양의 옥룡사로 옮겼다. 936년 후백제가 멸망하자 고려의 태조 왕건 역시 그를 국사로 모셨다. 이후 태조의 아들 혜종과 정종 대에 이르기까지 국사로서 개경에 머무르다가 옥룡사로 내려와 그곳에서 열반했다. 견훤대왕과 경보스님의 만남을 돌이켜 본 것은 만경강 포구로서 새창이나루의 중요성을 이해하기 위한 것이다.
  4월 16일 송화섭 중앙대학교 교수가 이끄는 ‘만경강 교통로 현장답사단’은 새창이나루에서 벌어진 역사적 사건을 돌아보았다. 새창이나루는 후백제 때 중국 오월국과 교류하는 주요 포구였다. 새창이나루나 군산 포구를 출발해 비스듬하게(斜斷) 남진하여 중국 항주만으로 진입하여 전당강을 따라 항주까지 올라가 교역했을 것이다. 이 사단항로와 더불어 영산강, 금강, 해남 등지에서 중국 산동반도로 이어지는 횡단항로가 대세를 이룬다. 새만금 바닷바람이 저 멀리 중국의 항주만 향기를 전해주는 것 같아 감개무량이다.
  후백제 만경강 교통로는 김제 만경읍 화포를 거쳐 익산 춘포면 대장(大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 강점기인 1930년경 만경강 직강화 사업에도 불구하고 새로 쌓은 제방 옆으로 옛날 강이 그대로 남아서 흐른다. 대장은 큰 장터가 섰음을 말해주는 지명이다. 후백제가 생산한 철과 젓갈류 등이 이곳에서 거래됐을 것이다. 일제 때에는 일본인들이 갯벌을 간척하며 농장을 만들고 식량을 수탈해간 고난의 현장이다. 우리 어머니는 한 여름 모래찜을 하려고 삼례에서 이곳까지 오셨다.    
  한내대교 바로 위쪽의 고산천과 전주천 합수지를 거슬러 올라가 회포대교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회포는 말 그대로 강물이 소용돌이치며 급히 흐르는 곳이다. 회포대교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석양 무렵에 소금과 물고기를 실은 배들이 용진포구로 들어가는 동포귀범의 명승을 연출한다. 송화섭 교수는 회포까지 중선배가 올라왔다는 문헌 근거를 제시한다. 한참을 올라가 전주천과 삼천이 만나는 추천대에 섰다. 추천대 또한 강물이 넘쳐나 전주 도성으로 가는데 충분한 수량을 확보해준다.
  답사단은 익숙한 호남제일성 풍남문 수로 대신에 모래내 시장 수로를 탐사했다. 지금은 모래내천이 복개돼 모습을 감추고 있지만 후백제 때에는 배들이 금암동 배멘바위를 의지해 정박을 했다. 금암동 주민 조영휘씨(76)는 50년 전만해도 강경 새우젓 배들이 이곳에 올라오고, 이 일대에 젓갈공장이 15개 정도 있었다고 전해준다. 배를 멘 자리 위에는 항해의 안전과 풍어를 비는 거북바위가 있다. 이 거북바위는 거북이 형상을 닮았는데 옛 KBS 터 앞마당에 있었다.
  모래내천을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모래내 시장이다. 모래내 시장 바로 앞에서는 수직으로 성벽을 이루고 있는 후백제 왕궁이 위용을 자랑했을 것이다. 송화섭 교수는 모래내 시장은 후백제 궁성 북문 밖 시장으로서 후백제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중요한 시장이라고 설명한다. 모래내 시장은 전주의 4대문 밖 시장과는 결이 다르다. 만경강 교통로가 모래내까지 이어질 수 있는 것은 바닷물이 밀물(潮水) 때 이곳까지 강물을 밀어내기 때문이다. 전주는 이처럼 바다와 강이 도심 깊숙이 이어질 때 왕도로서 위용을 자랑했다. 후백제가 후삼국 가운데 가장 융성한 문화를 누릴 수 있었던 것도 바다와 강을 활용한 교통로 덕분이다. 전주의 발전은 후백제의 오래된 지혜를 따라 하는 데서 이룩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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