皇華臺
이춘구의 세상이야기

89-해양강국 후백제의 오래된 미래

 
  우리가 후백제 역사를 바르게 세우며 역사의 퍼즐을 맞추고자 하는 뜻은 역사를 관통하는 정신과 문화를 이해하는 데 있다. 송화섭 중앙대학교 교수에 따르면 후백제는 고대 동아지중해의 해양강국으로서 국제교류를 활발히 한 국가였다. 후백제는 해양과 내륙수로를 활발하게 활용함으로써 후삼국 가운데 가장 강력한 왕국을 건설할 수 있었다. 우리는 해양강국 후백제의 오래된 미래를 살핌으로써 새만금·전북시대를 열어가는 전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견훤대왕은 순천만과 섬진강 권역을 중심으로 889년에 거병하고, 892년 광주를 점령하며 스스로 왕위에 올랐다. 이 때 신라서면도통지휘병마제치지절도독전무공등주군사행전주자사겸어사중승상주국한남군개국공식읍2000호(新羅西面都統指揮兵馬制置持節都督全武公等州軍事行全州刺史兼御史中丞上柱國漢南郡開國公食邑二千戶)라고 자칭했다. 또 원주의 적수(賊首) 양길(梁吉)에게 비장이라는 벼슬을 내리는 등 세력을 확장했다. 견훤대왕은 900년 백제의 역사와 전통을 잇겠다고 광주에서 선언을 한 뒤 전주(완산주)에 도읍을 정하고 후백제왕이라 칭했다. 이 때 모든 관서와 관직을 정비하고 왕국으로서 위용을 갖추게 됐다.
  견훤대왕은 백제 역사문화의 전통을 계승하기 위하여 전주자사(全州刺史)가 되겠다는 야심을 밝힌 것이다. 견훤이 전주를 후백제 도읍지로 선정한 기준은 대외교류를 위한 수로교통과 해상교통의 비중을 검토하였을 것이다. 견훤은 해양강국 백제의 역사와 전통을 잇는 것을 중시한 것이다. 백제는 중국의 문화정통성을 가진 강남 세력들과 문물교류를 하였다. 여기에서 강남은 양자강 이남 지역을 가리킨다. 중국 유학의 정통은 항소(杭蘇:항주, 소주)에 있었다.
  백제시대 중국과 해상교류 중심지는 해상교통의 거점지인 항주만과 한반도 서남부 항포구이었다. 삼국시대 위?촉?오가운데 오나라가 항주만 일대를 장악하고 있었으며, 5호 16국시대에는 동진이 항주만을 장악하고 있었다. 남북조시대에는 송, 제, 양, 진이 강남을 교대로 장악하고 있었다. 동진의 마라난타가 백제불교를 전래해주었으며, 이에 따라 동진제 청자가 백제에서 다수 발견됐다. 특히 중국 강남지역에서 직수입한 계수호(鷄首壺)가 백제, 가야 고분에서 출토되고 있다. 남북조시대에는 백제 동성왕대 이후 남조의 양나라와 문물교류가 빈번하였고, 백제 무령왕릉의 전축분은 중국 강남세력과 밀접한 교류를 가늠케 해준다. 수?당대를 거쳐서 5대 10국시대(907?960)가 도래했을 때 한반도에서도 후삼국시대가 전개됐다. 이 때에 맞추어 견훤대왕은 백제의 대중교류 전통을 이으려고 항주만을 장악한 오월국과 대외교류에 정성을 들였다.
  요컨대 견훤대왕은 서해 해로권과 영산강 수로권 등을 장악하고 국가발전을 꾀하며 중국과 해상교역 및 문물교류를 시도했다. 문제는 영산강 수로권의 장악이었다. 나주 금성산성 일대 10여 개 군현은 당시 해상세력을 기반으로 하는 오다린이 장악하고 있었다. 오다린은 중국 등과 교역을 통해 세력을 유지하는 호족의 대표로서 견훤대왕보다 당진·송도 등 해상세력과 연합을 유지하는 게 더 유리한 것으로 판단했다. 이들 해상세력은 왕건을 맹주로 내세우고 고려 건국에 이바지하게 된다.
  견훤대왕은 나주의 오다린 세력을 포섭하는데 끝내 실패하고 멸망의 길을 가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나주 세력은 889년 후백제 건국 원년부터 930년까지 해양세력으로 왕건의 실질적인 통치를 받았다. 견훤대왕은 절치부심 끝에 930년부터 935년 4월까지 나주지역을 복속시켰다. 그러나 왕건의 집요한 공략으로 다시 고려에 나주지역을 빼앗기며 삼한통일을 눈앞에 두고 936년 나라가 망하는 비극을 겪어야 했다. 전주와 나주의 대립은 우리 역사의 판도를 바꿔놓았다. 결국 영산강 수로권과 서남해 해로권 쟁탈전에서 견훤대왕이 완전하게 장악하지 못함으로써 견훤대왕의 꿈은 비극으로 끝나고 말았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 새만금개발의 호기를 맞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새만금을 국제특구로 지정하고 개발속도를 높이겠다고 했다. 견훤대왕의 꿈을 실현시켜 나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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