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 면앙정의 주인 전라감사 송순

최병호 기자l승인2022.05.03l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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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순은 전라도 담양 출신으로 가사 문학의 대가이며 면앙정의 주인이다. 그는 중종 37년(1542) 5월에 전라감사에 임용되어 이듬해 2월 이임하였다. 이후 명종 13년(1558)에는 전주부윤도 역임하였다. 그는 장수하여 과거시험에 급제한지 60주년에 나라에서 열어주는 회방연(回榜宴)의 영예를 안았다. 

▶전라도 담양 출신
송순(宋純, 1493~1582)의 본관은 신평(지금의 충청도 당진)이며, 자(字)는 수초(遂初)ㆍ성지(誠之), 호는 면앙정(?仰亭)ㆍ기촌(企村)이다. 담양 출신으로 아버지 송태(宋泰)와 어머니 순창 조씨 사이에서 3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처가는 순창 설씨이다.
지금의 전라남도 담양군 봉산면 기곡리 상덕마을(담양도호부 기곡면 상덕리 기촌)이 그 출신지이다. 그의 집안은 충청도에 살다가 고조부 노송당(老松堂) 송희경(宋希璟) 때 담양으로 내려왔다고 전한다. 
허균의 시문집 『성소부부고(惺所覆?藁)』에 의하면, 송순은 고위직을 지냈음에도 가문이 한미해 마을 원로들에게 잔치를 베풀고서야 담양 향안(鄕案)은 입록될 수 있었다고 한다. 향안은 그 지역 향청(유향소) 향원 명부로 사족(士族, 양반) 명부이다. 
향안에는 3향(鄕), 2향, 1향, 무향(無鄕)이 있다. 부향(父鄕), 모향(母鄕), 처향(妻鄕)이 3향으로, 부, 외숙, 처부 모두 향안에 입록되어 있으면 3향이다. 3향은 향안에 바로 입록되고, 2향 이하는 향원들의 권점(圈點), 즉 투표를 해서 입록 여부를 결정했다. 
송순은 외가가 남원에서 왔고 처가도 순창 설씨이다. 그러므로 권점의 대상인데, 사헌부 대사헌(종2품)으로 고향에 내려와 잔치를 베풀고 향안에 입록되었다. 허균은 송순의 집안에 현달한 인물도 없다고 보았다.  
송순은 그렇게 한미한 가문이 아니다. 고조부 송희경이 조선초에 금산군수를 지내고 회례사가 되어 일본에 다녀와 『일본행록(日本行錄)』을 지은 유명 인사이다. 경제력도 대단해 송순이 8남매에게 남긴 분재기에 보면 노비가 160구, 전답 700여 마지기에 달했다. 또 당시 송순은 고위직 인사였다. 그럼에도 향원들에게 잔치를 베풀고 향안에 입록되었다. 조선사회의 독특한 면모이다.

▶전라감사와 전주부윤 역임
송순은 송흠과 박상의 문하에 들어가 배웠다. 정읍 태인 출신의 송세림에게도 수학했다. 송세림은 패관문학으로 유명한데, 능주현감으로 있을 때 송순이 찾아가 배웠다고 한다.
송순은 21세 되던 중종 8년(1513) 진사시에 3등 18위(100명 중에 48위)로 합격하고, 중종 14년 27세 때 별시 문과에 을과 1위(전체 19명 중에 3위)로 급제하였다. 중종 14년이면 조광조가 집권하고 있을 때이다. 기묘사화가 일어나 조광조 세력이 숙청되고 그 시험도 취소해야 한다고 했는데, 송순의 답안지는 주제와 내용이 맞다고 하였다.
승문원권지부정자를 시작으로 이듬해 사가독서를 마친 뒤, 세자시강원 설서, 사간원 정언이 되었다. 중종 28년 김안로가 권세를 잡자 귀향하여 면앙정을 짓고 시를 읊으며 지냈다. 김안로가 사사된 뒤 홍문관 부응교에 제수되고 홍문관 부제학, 충청도 어사, 승정원 우부승지, 경상감사 등을 지내고 중종 36년 대사간을 거쳐 대사헌에 올랐다. 
중종 37년(1542) 4월 모친의 병으로 대사헌을 사직하고 5월에 전라감사에 임용되었다. 중종이 전라감사로 나가는 송순을 인견하고, 굶주린 백성들을 구휼하고 농사를 권장하며 학교를 일으키고 형(刑)을 신중히 하라고 전교하였다. 당시 전라도에 전염병이 극심해, 7월에 전염병으로 죽은 백성이 나주 419명, 영암 308명, 강진 232명이었다. 중종 38년 2월에 전라감사직에서 교체되어 이임하였다.

▶“꽃이 진다하여 새들아 슬퍼마라”
 송순은 명종 즉위년(1545) 을사사화가 일어나 윤원형 세력에 의해 많은 사림들이 화를 입자 「상춘가(傷春歌)」를 지어 애도하였다. ‘꽃이 진다하여 새들아 슬퍼마라/ 바람이 흩날리니 꽃의 탓 아니로다/ 가노라 희짓는 봄을 새와 무엇하리요’ 봄을 슬퍼하는 노래로 희생된 사림들을 낙화에 비유한 것이다. 
명종 2년(1547)에 동지중추부사가 되어 ??중종실록??의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그해 5월에 주문사(奏聞使)로 북경에 다녀와 개성부유수가 되었다. 명종 5년에 대사헌, 이조참판이 되었으나 구수담, 허자 등과 함께 탄핵을 받아 충청도 서천으로 귀양 갔다. 귀양에서 풀려나 명종 8년 선산도호부사에 임용되었다.
명종 13년(1558)에는 전주부윤에 임용되어 명종 15년에 병으로 사직하였다. 명종 16년 나주목사에 임용되었으며, 이후 형조참판에 올랐다. 선조 2년(1569) 77세 때 한성부판윤에 초배되었다가 바로 의정부 우참찬으로 제수되었는데 병을 이유로 사직하고 낙향하여 면앙정에서 시가와 풍류로 노년을 보내고 선조 15년 90세에 졸하였다. 

▶가사문학의 산실 면앙정 
가사문학의 본향 담양은 면앙정, 식영정, 소쇄원, 환벽당 등 누정이 즐비한 곳이다. 담양권에는 60여개의 정자가 있었다고 한다. 담양에는 한국가사문학관이 있다. 면앙정은 송순이 41세 때 세운 정자로 원효계곡 끝자락, 제월봉으로 오르는 높은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다. 사방이 탁 트여 주변의 빼어난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면앙정 편액은 당대의 명필 성수침의 글씨다.
고봉 기대승은 「면앙정기」에서, “정자가 있는 곳은 지형이 높고 탁 트였으며 또 대나무와 나무들이 둘러싸고 있어서 인간 세상과 서로 접하지 않으니, 아득하여 마치 별천지와 같다.”고 하였다. 임제, 김인후, 고경명, 임억령, 박순, 이황, 소세양, 윤두수, 양산보, 노진 등 많은 인사들이 출입하여 호남 제일의 가단(歌壇)을 형성하였다. 
면앙정은 송순의 호이기도 하다. 면앙은 굽어보면 땅이요, 우러르면 하늘이라는 뜻이다. 송순은 「면앙정가」를 지어, “굽어보면 땅이요 우러르면 하늘이라/ 정자 가운데 있어 호연한 기상 일어나네/풍월 불러들이고 산천을 끼고 앉아/ 지팡이 짚고서 백년을 보내리라 [?有地 仰有天 / 亭其中 興浩然 /招風月 揖山川 /扶藜杖 送百年]”라고 하였다. 심수경은 『면앙정가』에 대해, 송공은 평생 동안 가사를 잘 지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잘된 작품이라고 하였다.

▶회방연(回榜宴)과 ‘하여면앙정(荷輿?仰亭)’ 
면앙정에는 유명한 회방연 일화가 전한다. 회방연은 과거급제 60주년에 나라에서 베풀어주는 큰 잔치이다. 송순이 87세 때 면앙정에서 회방연을 열었다. 임금이 꽃과 술을 내려주었다. 
회방연이 파할 무렵 정철이 선생이 탄 가마를 제자들이 메자고 하였다. 정철, 고경명, 임제 등이 가마를 메고 면앙정을 내려왔다. 이 일화가 널리 알려진 ‘하여면앙정(면앙정 선생의 가마를 메다)’이다. 
정조 22년(1798)에는 광주에서 열린 외방별시 도과(道科)에서 ‘하여면앙정‘을 시제로 출제하였다. 도과(道科)란 각도에 설치하여 그 지역 출신이 응시하는 과거 시험이다. 여기에 급제하면 3차시험 전시에 응할 수 있는 자격을 주었다. 
송순은 풍류를 즐기고 바른 말도 잘했다. 실록의 상진 졸기에 보면, 상진이 송순에게, "자네는 어찌하여 불우하고 침체되기가 이러한가?"하니, 순이, "내가 만일 목을 움츠리고서 바른 말을 하지 않았으면 정승의 지위를 벌써 얻었을 것이네."라고 하였다.

 
이 동 희 (예원예술대학교 교수, 前 전주역사박물관장)

 

 


최병호 기자  cbh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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