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학에는 최소율의 법칙(The Law of the Minimum)이라는 게 있다. 이 법칙은 생물이 갖는 양분 중 성장을 좌우하는 것은 넘치는 요소가 아니라 가장 부족한 요소라는 것이다. 좀 쉽게 풀어보면 식물은 필수 원소가 최소량 이하이면 다른 원소가 아무리 많아도 정상적인 생육을 할 수 없다는 뜻이다.  
  예를 들자면 논에 아무리 인산 등 다른 양분들이 충분하더라고 질소가 최소한이라도 주어지지 않으면 벼는 자랄 수 없다. 물통으로 설명하는 경우도 있다. 물통이 아무리 크더라고 한 귀퉁이가 낮으면 그 이상 물을 담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법칙은 독일의 과학자 유스투스 리비히가 제기했다고 해서 ‘리비히의 법칙’이라고 부른다. 리비히는 화학을 전공한 교수로 농업에도 크게 기여했다. 
  리비히의 법칙은 과학 분야에서만이 아니라 사회영역에서도 잘 적용된다.
  각종 고시에는 과락 제도가 있다. 아무리 다른 점수가 좋더라고 한 과목이라도 최저점수 아래로 처지면 불합격이다. 회의 시간도 그렇다. 아무리 여러 사람이 제시간에 와도 회의 시작은 맨 뒤에 도착하는 사람에 의해 정해진다.
  이를 사회적 약자 배려 문제에도 적용할 수 있다. 사회 전체의 발전 수준은 그 사회의 가장 취약한 계층의 삶의 질에서 결정된다. 장애인들은 아무래도 능력에 제한을 받는다. 정상적인 노동이 벅차고 그래서 의존적일 수밖에 없다. 그만큼 생활하는데 어려움을 겪게 마련이다. 그들에 대한 배려는 사회가 감당해야 할 부분이다. 리비히 법칙에 따르면 우리 사회의 삶의 질은 장애인과 같은 사회취약계층이 얼마나 인간다운 삶을 누리느냐에 달려 있다. 
  그래서 근대국가에서는 제도적으로 장애인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배려를 명문화하고 있다. 
  올초부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이 이동권과 권리예산 보장을 요구하며 지하철 출근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를 놓고 찬성과 반대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특히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비문명적’이라며 날선 비판을 하면서 사태는 좀처럼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10일에도 전장연은 대통령 취임식이 열리는 여의도에서 시위를 계속했다. 기자회견서는 장애인 권리예산이 내년 기재부 예산 가이드라인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구를 거듭 강조했다.
  장애인을 차별하는 것은 뿌리 깊은 관행이다. 하지만 근대국가에서는 제도적으로 기본권과 평등권, 인격권, 생명권 등을 보장한다. 우리나라 헌법 11조와 34조는 평등권과 기본권을 강조한다. 그렇지만 현실에서는 아직 인식이 덜 된 것이 사실이다. 장애인 이동권과 권리예산 요구는 그래서 20년째 제자리걸음이다. 지하철 시위가 비문명적인지 아니면 차별이 비문명적인지 생각해보면 분명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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