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한 어묵 파치 / 황석현(한국전기안전공사)

 예전 할머니댁 근처에 작은 어묵 공장이 있었다. 그곳을 지날 때면 고소한 냄새가 행인을 유혹했다. 입속 가득 침이 고일 정도였다. 목적지로 가던 발걸음이 그 향기에 현혹되어 어묵 공장으로 향했다. 이미 통제를 벗어난 몸은 주체하지 못하고 침이 밖으로 나왔다. 부끄러운 내 모습을 누가 볼까 봐 황급히 발걸음을 돌리니 괜스레 배가 고파졌다.
 어린 시절, 할머니는 손자가 놀러 올 때마다 어묵탕을 끓여주시곤 했다. 동네잔치를 벌여도 될 만큼 한 솥 끓이셨다. 아마 먹성 좋은 손자가 배불리 먹고 가길 바라는 마음에 그렇게 했을 것이다.
 할머니표 어묵탕은 음식점에서 볼법한 요리와는 다르다. 반듯하게 각 잡힌 어묵과는 달리 두께도 모양도 제각각인 투박한 느낌이다. 시중의 어묵탕이 프로가수들의 무대라면 할머니의 어묵탕은 아마추어들이 나오는 전국노래자랑 같다. 그렇게 느껴진 것은 어묵 파치 때문이다. ‘파치’는 깨어지거나 흠이 나서 못쓰게 된 물건을 지칭하는 말이다. 어묵 파치는 제품을 만들고 남은 자투리 어묵이나 잘못 만들어진 어묵이다.
 어묵 파치는 모양이 참 제각각이다. 같은 공장에서 만들었는데 개성을 자랑한다. 호리호리한 몸매를 자랑하는 어묵, 인심 좋은 사장처럼 넉넉한 두께를 자랑하는 어묵, 예술작품처럼 특이한 모양을 자랑하는 어묵 등 먹는 재미만큼이나 보는 재미도 있었다.
 어묵 파치는 모양과는 달리 맛에는 차이가 없다. 하지만 외모에서 낙제점을 받아버린 파치는 시중에서 자신을 뽐낼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이름도 없는 큰 봉투에 담겨 싼 가격에 팔려나가기만을 기다릴 뿐이다.
 성인이 된 후 할머니표 어묵탕 맛이 그리워 가끔 해먹을 적이 있다. 집 근처 마트에 파치가 없어 일반 어묵으로 요리를 했지만, 그 맛이 전혀 나지 않았다. 반듯한 어묵에서는 파치에서 접했던 개성을 느끼지 못해 그럴 것이다.
 요즘은 어떤 과일이나 야채를 사도 모양이 반듯하고 예쁘다. 사과를 보아도 모양이 찰흙으로 빚은 작품 마냥 상처 하나 없이 참 곱다. 이렇게 예쁜 사과를 생산하는 농민들이 존경스럽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파치 같은 비애가 있을 것이다. 과수원 근처를 지나다 보면 가끔 못난이 과일을 싸게 파는 것을 볼 수 있다. 못난이 사과들도 모양이야 어떻든 똑같이 비바람을 맞으며 자랐을 것이다. 하지만 아름답지 못하다는 이유만으로 뒷전에서 싼 가격에 팔리고 있다.
 파치가 겪는 불합리한 일들은 우리 사회에서도 볼 수 있다. 흔히 첫인상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외모지상주의’라는 말이 있듯이 외모에서 낙제점을 받으면 이후의 이미지를 만회하기가 상당히 힘들다.
 어느 신문에서 ‘외모도 경쟁력이라고 생각하는가?’ 라는 설문조사를 보았다. 설문은 2030 직장인 2,361명을 대상으로 하였는데 결과가 놀라웠다. 설문자 90%가 ‘외모도 경쟁력’이라 답변하였고, 5명 중 3명이 ‘사회생활 중 외모로 인한 차별을 경험했다.’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사회에서 외모지상주의 개선하려는 움직임이 조금씩 보인다는 것이다. 한 가지 예가 의류 광고 모델이다. 몸매 좋은 모델의 고유영역이었던 의류 광고에서 평범한 체형 모델이 출연하는 것을 들 수 있다. 예전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의류 광고는 다른 세상에 사는 비현실적인 모델들의 무대였다. 실용성보다는 그들의 체형에서 오는 선의 아름다움이 강조되었다. 선의 아름다움 못지않게 일반인 체형 모델에서 느껴지는 실용성이 강조되기도 한다. 오히려 그 점이 주목받아 더 잘 팔리기도 한다.
 외모보다 내면의 가치가 인정받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어묵 파치도 못난이 사과도 시장에서 마트 진열대에서 인기 있는 상품으로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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