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의 한시(漢詩)

황석현(한국전기안전공사)

 할아버지의 취미 중 하나는 공부이다. 연세가 드셨음에도 학문 정진을 게을리하지 않으셨다. 연금을 받으시면서 편히 쉬셔도 괜찮을 텐데 이름만 들어도 머리가 아픈 한자와 유학(儒學)을 공부하시는 모습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아버지는 자기개발을 중요하게 여기셨다. 그에 걸맞게 할아버지의 책상 위에는 항상 책이 놓여있었다. 항상 무언가를 공부하셨던 할아버지는 손자, 손녀에게 본보기가 되어주셨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는 동생이 공부에 관심 갖게 하려고 “공부하니까 재미있네.”라며 소리 내어 책을 읽으셨던 적도 있다. 학문에 정진하는 본인의 모습을 보면 손녀가 따라 해줄 것이라는 바람을 가지셨다. 하지만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자식 농사이다. 철없는 동생은 기대와는 다르게 “할아버지, 공부가 재미있으면 제 것도 해주세요.”라고 답해 할아버지를 당황하게 했던 적이 있다.
 누구보다도 학구열이 넘쳐났던 할아버지는 동네 향교에 입교하여 학업을 이어나가기도 하셨다. 할아버지댁 벽에 걸려있는 전통 예복을 차려입고 향교에서 찍은 사진은 할아버지의 자기 수련을 향한 열정을 보여준다.
 그런 할아버지가 한시(漢詩) 창작에 빠져 드셨다. 그동안 할아버지께서 했던 공부들은 자기 수양을 위한 공부였다. 성과는 중요치 않았으며 생각해볼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한시에 도전한다는 것은 문학의 길에 들어서는 것이다. 문학을 시작한다는 것은 자기 수양과는 엄연히 다른 영역에 발을 들인다는 것이다.
 문학은 내면을 닦는다는 점에서 자기 수양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본인의 만족에 그치는 자기 수양과 달리 문학은 다른 이의 시선도 생각해야 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곧 독자와의 소통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한시를 배우시고 자신의 실력을 가늠해보고자 한시 공모전에 응모하셨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처음에는 빈번히 낙선하셨다. 자기만족으로 했던 공부와는 다르게 경쟁의 영역에서 펼치는 문학은 그 문턱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열정을 가지고 창작활동을 이어나가셨다. 오래지 않아 지자체에서 주최한 한시대회에서 상을 받으셨고, 한시인명록에도 얼굴이 실리기도 하셨다. 할아버지는 자신이 인명록에 실렸다며 손자에게 자랑하셨다. 할아버지는 손자를 볼 때마다 자신이 지은 작품들을 보여주시며 작품이 수록된 책자를 선물로 주셨다.
 안타깝게도 할아버지는 느지막이 가진 새로운 취미를 이어나갈 수 없었다. 야속한 세월은 할아버지가 본격적인 문학인의 길에 들어서는 걸 허락해주지 않았다. 몸이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는 상황에서 할아버지는 자신의 창작활동을 내가 이어가길 바라셨다.
 할아버지의 뜻을 잇고 싶으나 한시에 입문하는 건 상당히 고민되는 일이었다. 한시에 입문할 만큼 한자 지식이 충분하지 않거니와 활동 영역도 한정적인 한시 분야에서 창작활동을 이어나갈 자신이 없었다.
 대신 차선책으로 수필창작에 재미를 붙여 글을 써나가고 있다. 글을 쓰다 보니 책도 내고 한국문인협회에 적을 두며 작품활동을 펼쳐나가게 되었지만 기라성 같은 거장들의 글을 읽노라면 문학적 성취를 이루기 위한 길은 아직도 멀었음을 직시하게 된다.
 세월은 항상 야속하여 할아버지께서 자신의 꿈을 내 곁에 내려놓으시고 소천(召天) 하시게 되었다. 이제는 못다 한 꿈을 이어나가야 할 차례가 온 것이다. 책장에 꽂혀있는 할아버지의 책을 펼쳐본다. 그 책에서 할아버지의 온기와 열정을 느껴본다. 할아버지가 바라보고 계셨던 문학적 성취의 끝은 알 수 없으나 내 힘이 닿는 곳까지 노력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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