皇華臺
이춘구의 세상이야기

황화대 칼럼-110 백두대간 품속 가야 이야기
 
  전북 동부지역에서 펼쳐진 가야사(伽倻史)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백두대간 품속 가야 이야기』가 다할미디어에서 발간됐다. 군산대학교 곽장근 교수가 40여 년 동안 전라북도 백두대간을 오르락내리락하며 발굴한 피와 땀과 눈물의 고고학 성과이다. 장계 삼봉리 야산 속 눈 더미에 몸을 숨긴 가야 고총을 발견했을 때 그 기쁨을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진안 동향 제철지에선 계곡을 덮어버린 쇠똥(슬래그)들이 가야를 오늘 되살아나게 한 생명의 핏줄이었다.
  전북가야는 남원시와 완주군·진안군·무주군·장수군·임실군·순창군, 충남 금산군을 안고 있다. 순창 출신 신경준의 『산경표』대로 지리산, 팔공산, 운장산, 덕유산 등 백두대간 금남정맥을 샅샅이 찾고 다니며 봉화 루트를 발견했다. 주민의 구술을 통해 가야사의 편린을 놓치지 않고 정리했다. 전북 동부 산간에 축적된 고고학 자료를 문헌에 접목시켜 운봉가야를 기문국, 장수가야를 반파국으로 비정했다. 당시 문헌에 등장하는 역사적 사실을 고고학 자료로 입증, 충족시켰다고 한다.
  곽장근 교수가 전북가야사를 연구하게 된 동기는 일제 식민사학자 금서룡(今西龍)이 주장한 섬진강 가야설의 존재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다. 금서룡은 섬진강 하류 남원 지역을 하기문, 임실 지역을 상기문으로 주장했다. 그러나 곽장근 교수는 이 지역에서 가야 고총을 찾을 수 없었다며, 오히려 운봉을 기문국, 장수를 반파국의 중심이라고 보았다. 기문국에서 110여 기, 반파국에서 240여 기 등 350여 기의 가야 고총을 찾아냈다.
  또 한 가지 주요한 연구 동기는 고령 중심의 대가야가 전북 동부지역 반파, 기문가야를 지배했다는 학계의 주장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고령 중심의 대가야설을 주장하는 근거는 봉화 루트이다. 그러나 고령 중심의 대가야 주변에서는 봉화 루트를 찾을 수 없었다. 그 대신에 장계 중심의 반파가야는 8갈래의 봉화가 집결했다. 전북가야는 120개의 봉화를 남겼다. 한 마디로 반파가야는 봉화국가인 셈이다. 사학자들은 삼봉리 봉화유적과 산성이 가야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확인했다. 전북 동부에 가야 봉화망을 구축하려면 반드시 국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전북가야가 봉화를 운영할 수 있었던 것은 강력한 철기문화를 배경으로 한다.  반파가야나 기문가야에서는 250여 개소의 제철유적이 발견됐다. 예나 지금이나 국력의 원천은 철이다. 철광석을 녹여 철을 생산하던 제철유적은 오늘날 포항제철과 그 의미가 같을 것이다. 또한 고총의 출토유물을 보면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등 동북아를 아우르는 당대 최고급 위세품들을 거의 다 모았다. 가야 고분에서 나온 금동신발, 철제초두는 모든 가야 영역에서 한 점씩만 출토됐다. 중국 양나라에서 바다를 건너온 계수호와 청동거울도 역시 운봉가야 고총에서만 출토됐다.
  백제 무령왕은 521년 가야로 본격 진출할 때 기문국의 복속을 선언했다. 반파국은 기문국을 지키기 위해 백제와 3년 전쟁을 불사했고, 신라와는 적대관계인 봉화 왕국이다. 최근 곽장근 교수의 전북가야사 체계화 연구에 일부 반대 움직임이 있다. 그러나 곽장근 교수는 “가야 소국의 위치 비정은 역사고고학의 범주에 속한다. 문헌의 내용이 유적과 유물로 입증되면 학계의 논의가 시작되고, 이를 근거로 결론 도출도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특히 식민사관 운운하며 발굴, 연구 성과를 비난하고 왜곡하는 것은 오히려 학문의 자유를 침해하며, 한국사 정립에 혼돈과 부작용을 일으킬 것이다. 세계문화유산 전문가들은 유곡리·두락리 가야고분 현장을 점검할 때 곽장근 교수의 사론이 가장 타당성이 있는 이론이라고 높이 평가한 바 있다. 이같이 고고학적 성과와 문헌사적 분석을 통한 과학적 입증이 주효한 것이다.
  같은 한국 사학의 길을 걸어온 송화섭 후백제학회장, 박경하 향약연구원장, 이도학 한국전통문화대학교 교수 등 대표 사학자들이 전주 행원에서 조촐한 출판기념회를 열고 곽장근 교수의 역작 「백두대간 품속 가야이야기」출판을 축하할 예정이다. 지구를 몇 바퀴 도는 백두대간 탐사를 발로 쓴 반파?기문가야사의 정립을 뜨거운 가슴으로 격려하는 자리였다. 곽장근 교수는 그동안 백두대간 가야문화 탐사로 무릎 연골이 다 닳아 더 이상 등산이 힘들다고 한다. 더 이상 가야사 연구를 이어가는 게 벅차다고 한다. 그래도 딛고 일어서서 전진하기를 염원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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