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계 거듭나는 한해 되길

이철량(전북대 미술학과교수)

전라북도 문화예술계가 심상치 않다. 최근의 경제적불황이나 사회적 불안정만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예술가들의 움직임이 둔해지고 문화계의 활동도 공허하다. 이런 현상은 점점 더 심화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 예사롭지 않다. 새해에는 뭔가 새로운 움직임이 있어야할 것 같다.
이런 현상의 근본은 전문가 집단의 안이한 자세와 무관하지 않다. 그리고 그 중심에 전문기관들이 자리한다고 생각된다. 전통음악의 중심으로 도립국악원이 흔들리고 있고, 미술의 중심인 도립미술관은 지난 5년여 동안 끊임없이 내우외환에 시달렸다. 소리문화의 전당은 대관에 급급하고, 전주전통문화센타 역시 확실한 이미지 구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들 전북의 대표적인 문화기관들이 왜 이렇게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는지 안타깝기만 하다. 그리고 그 근본원인은 아무래도 이들 전문기관들의 연구력 부족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이들 기관에는 전문 인력으로 학예관, 학예사, 큐레이터 등이 포진해 있다. 그러나 최근 이들 기관들에서 연구논문이 발표되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논문은 고사하고 변변한 안내책자 한권 내기가 쉽지 않은 형편이다. 그저 공연이나 전시 등 이벤트에만 매달린다. 그러나 연구력이 부족하니 공연이나 전시가 내용이 충실해 질 수가 없다. 미술관은 전시 메우기에 급급하고, 국악원은 교육기관으로 전락한 느낌이다. 우리지역의 예술계가 멀리 보고 발전하려면 이들 전문 인력들의 연구력을 높이지 않으면 않된다.
예술가들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 예술가들의 삶은 항상 고단하다. 시대나 지역에 구분하지 않고 예술가들의 빈곤은 항상 있어왔다. 그렇다고 용기마저 버릴 수는 없다. 지난 연말에 오픈한 도립미술관의 청년작가전엔 지역에서 역량 있는 젊은 작가들이 초대되었다. 그런데 이들 다수의 작가들의 작품이 이미 여기저기서 발표되었던 작품이 걸렸다. 우리 미술계의 좌절을 보는 듯하다. 중견작가들의 작품은 점점 왜소해지고 청년작가들은 열정이 없어 보인다. 그런가 하면 원로예술인들은 뒤로 숨어 버린 지 오래되었다. 이래서 우리 예술계는 참으로 조용하다.
문화계도 별반 다르지 않다. 전북이 전통문화를 살려야 한다는 문화계 인사들의 소리는 빈번하나 그 구체성은 참으로 부족하다. 한옥, 한지 등을 살리자는 발언 등이 무성하다. 한식을 비롯한 한브렌드 산업을 키워야 한다는 소리는 크지만 구체적으로 이해하기는 참 어렵다. 말하자면 총체적 논리는 맞지만 세부적으로 j내용이 매우 빈곤한 경우가 많다. 예컨데 한지를 살리려면 한지의 “무엇을 어떻게 누가” 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래야만 공허한 전통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제 또 새로운 한해를 시작한다. 우리는 이제 다시 우리 자신의 근본부터 되돌아 볼 시간이 온 것 같다. 예술가들은 작품을 보여라. 미술인들은 전시공간을 채우고, 소리하는 사람들은 소리가 들리게 해야 한다. 전시장에 볼거리가 없고, 공연장엔 유능한 소리꾼들의 공연이 없다면 관중들로부터 스스로 외면당할 수밖에 없다. 이는 예술가들 자신이 무덤을 파는 일이 될 수 있다. 그리고 학예사, 큐레이터 등 이론가들은 연구를 해야 한다. 그들 이론가들의 발언이 예술가들에게 권위를 가지려면 이론으로 무장해야 한다. 전시나 공연은 예술가들 스스로도 할 수 있는 일이다. 지역 예술계를 통찰하는 논문을 내라, 그래서 예술가들을 자극하고, 한편으론 일반 시민들의 이해를 높이고 참여할 수 있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 더불어 문화운동가들에게도 주문하고 싶다. 지방정부나 단체들이 정책으로 수용할 수 있는 구체적 주장을 펼쳐야 한다. 그래야 작은 것에서부터라도 변화가 생기게 된다. 올 한해 우리에게 많은 변화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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