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주의 색채와 구도로 한국의 혼을 캔버스에 승화시켰던 고창출신의 서양화가 진환(1913-1951).

한국 근대미술의 여명기를 열었던 진환은 ‘소의 작가’로 한국미술계에 소개돼 왔다. 현재 그가 남긴 작품중 ‘소’와 관련되는 작품은 80%에 이른다. 그가 소를 작품의 주된 소재로 선택한 것은 일제강점기에서 소가 상징하는 민족성이다.

최근들어 도내 문화예술계에서 기축년 ‘소의 해’를 맞아 진환을 제대로 알기 위한 작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특히 그가 남긴 작품 일부가 고창 무초회향미술관에 1점 소장되었으며 옥션 등을 통해 공개 매입이 전개되고 있지만 전북도립미술관 등에 그의 작품이 소장과 전시되어 있지 않아 그의 삶을 재조명하고 그가 남긴 작품들을 정리하는 작업이 절실하다는 여론이 비등하다. 더욱이 그의 작품들이 유족과 일부 미술관 등에 뿔뿔이 흩어져 있어 진환에 대한 재조명사업은 예향 전북에 필수적이라는 평이다.

특히 한우를 마치 민족의 현실을 상징하고 있듯이 진환 특유의 조형어법으로 형상화했던 진환은 초기부터 줄곧 소를 통해 민족의 애환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바 있다.

미술평론가 윤범모씨는 “식민지하에 있어서 소가 주는 의미는 마치 조국강토를 빼앗긴 한민족의 한 상징으로 보여지기에 충분하다”며 “고향 고창군과 전라북도 등 지자체들이 나서 진환 작품에 대한 미술관 건립이 절실하다”고 말한다.

또한 지난 2002년 조선대에서 ‘진환의 회화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은 김종주씨는 “진환의 소 그림은 기존의 소 그림과 차원을 달리했으며 특히 소의 힘차고도 온순하며 조용한 동작과 그 밖의 특징들을 부드럽고 간결하면서 대담한 필치로 그려냈다”며 “색상도 암갈색과 황토색 계통의 밝는 화면을 보여주었다”고 말했다.

결국 한국적인 서정성과 토속성을 짙게 풍기고 있는 그의 작품은 식민지하에서의 우리민족의 강인한 생명력과 현실극복의 염원을 함축하고 있다는 평이다.

이처럼 민족적인 색채가 강한 회화로 한국 근대미술계를 열었던 그의 작품은 현재까지 집대성되지 못하고 뿔뿔이 흩어져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진단이다. 최효준 도립미술관장은 “전북미술사에서 진환을 빼놓고는 논할 수 없을 정도로 그의 작품세계는 대단했다”며 “미술관 자체에서도 그의 그림을 구입하기 위한 노력을 전개했지만 어려운 점이 많았다”고 밝힌다.

이처럼 그에 대한 생애와 작품세계에 대해 재조명작업이 시급한 시점에서 전북도와 고창군 등지의 각별한 애정이 절실하다는 지적은 비단 소의 해에 소의 작가를 조명하는 차원을 넘어 전북 미술의 한켠을 밝히는 사료적 가치 또한 높다는 점에서 풀이된다./이상덕기자·leesd@

■진환은 누구인가.
고창 무장에서 태어나 고창고보를 졸업하고 1931년 보성전문학교 상과에 입학했다, 곧 중최하고 미술공부를 시작하는 그는 1934년 일본으로 가 일본미술학교에 입학, 1943년 귀국때까지 그곳에서 독립미술전, 조선신미술가협회전 등에 참가하고 1940년 동경미술공예학원 수료와 동시에 강사에 발탁된다.

1941년 이중섭, 최재덕 등 유학생들과 조선신미술협회를 결성, 창립전을 갖기도 했다. 8.15광복 후에는 조선미술건설본부 회원이 되고 부친이 설립한 무장중학교장을 역임했으며 1948년 홍익대교수로 취임했다, 그러나 1951년 1,4후퇴때 유탄에 맞아 고향에서 작고했다. 비록 불운하게 삶을 마감했지만 소를 즐겨 그렸던 화가는 우리민족이 처한 현실의 상징적 비유로 ‘소’를 소재로 삼아 집요하게 작품세계를 펼쳐나갔다.

저작권자 © 전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