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정책이 이상하다.

이철량

시계바늘은 뒤로 가는 법이 없다. 오직 앞으로만 갈 뿐이다. 그래서 항상 시계는 창조의 시간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속의 시계는 종종 뒤로 가려는 시도를 하는 경우가 있다. 자신의 경험의 한계를 넘어서기가 두려운 탓일 게다. 앞으로 나아가기는 언제나 고통이 따르기 마련이지만,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창조의 시간은 오지 못한다. 전주시의 시계가 자꾸 뒤로 가려고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지난달 전주문화재단에 우석대학교 총장이 이사장에 취임하였다. 현직 대학 총장이라고 전주시가 출연하는 문화재단에 이사장을 맡아서는 안 된다는 규정이 없으니 괜한 시비가 될까? 그런데 문제는 이번 문화재단의 경우만이 아니라는데 의아심을 갖게 된다. 지난해에는 전주한지축제 조직위원장에 전주대학교 총장이 앉았다. 그런가 하면 지금 전주전통공예관은 전주대학교에서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다. 물론 전라북도에서 위탁하는 한국소리문화의전당도 예원대학교에서 위탁경영하고 있으니 같은 범주에서 논의해 보는 것이 좋겠다. 전주의 중추적인 문화공간들을 각 사립대학에서 위탁경영하고, 나아가 현직 대학총장들이 축제나 문화재단의 책임자가 된다는 것은 아무리해도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좋은 의미로 대학의 우수한 인력과 경험을 자치단체가 활용한다는 다소의 명분이 있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바람직한 일은 아닐 것이다.
잘 알려져 있는 대로 작금의 대학들은 생존의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앞선 두 사립대학들도 예외가 아니다. 수백 명씩 정규 입학생이 모자라 계속하여 추가모집을 해야 할 정도로 대학은 위기의 시기이다. 나아가 현저히 뒤떨어져 있는 대학 간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지구가 좁다하고 뛰고 있는 것이 요즘의 대학 현실이다. 대학 총장이 그렇게 한가하지 못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세상 어느 일도 그러하겠지만 특히 문화는 갈래가 많고 복잡하며, 섬세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어느 곳 못지않게 전문가의 노력이 필요한 곳이다. 그런데 말이다, 그렇게 바쁜 대학총장들이 축제를 계획하고 관리하며, 감독할 수 있을까. 복잡하고 섬세하기 그지없는 문화 판을 들여다 보면서 전주문화재단을 이끌어갈 시간이 있을까. 물론 문화에 대한 식견은 전문가 수준일 거라 믿지만 말이다. 어차피 일은 아랫사람들이 할 것이라는 생각이라면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문화를 표방하면서 가장 비문화적인 아이디어는 아무래도 의심받게 마련이다. 대학총장이 무언가 도움 되는 일이 있는지 모른다는 의심 말이다.
한국의 전통문화 중심도시를 표방하고 야심차게 구호를 외치고 있지만 전주시의 문화정책에 대한 일련의 흐름을 보면서 걱정하는 소리가 많다. 전주시는 이러한 문화기관을 공무원들의 산하기관 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이 솥뚜껑 보고 놀라는 격일까. 과거 관료주의 시절이 떠오르는 것이 기우가 아니길 바란다. 예전 관료주의 시절에는 정부출연 산하기관을 공무원들의 피난처처럼 다루었던 기억이 있다. 퇴직을 앞둔 공무원들이 책임자로 내려앉거나, 아니면 모양내기로 측근인사의 배려차원에서 낙하산 인사하듯 했던 시절이 있었다. 물론 이 시기는 문화에 대한 일반의 인식도 부족하였을 뿐만 아니라 문화는 구색 맞추는 정도로 생각하던 때의 일이였다 무늬는 화려하나 현장을 지키기 어려운 인사를 앉히고 아래서는 공무원들이 관리감독이라는 명분을 세워 기관을 좌지우지 하는 일들이 있었다. 관료들은 아직도 이러한 향수를 느끼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문화중심을 표방하는 전주시가 설마 그럴 리가 있을까 마는,

우리는 너나없이 문화의 새로운 가치와 그 확산에 주력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문화가 국가의 경쟁력이라는 이야기는 이제 지루하기까지 하다. 여기에 발맞춰 각 자치단체에서도 지역의 독자적 문화 인프라를 구축하는데 골몰하며. 새로운 가치창출을 위하여 각종 이벤트를 벌리고 있다. 지역마다 넘쳐나는 축제의 폐해가 우려될 정도인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전주가 한지축제에 많은 공을 들이며 적지 않은 예산을 쓰고 있다는 것도 이런 맥락일 것이다. 나아가 문화?재단 같은 전문기관의 제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새삼 인식할 필요가 있다. 문화는 문화인들에게 맡겨야 한다. 다소 소란스럽고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문화는 그들이 해야 신명나고 창조가 발생한다. 문화가 제일 두려워하는 것은 그것이 권력의 도구화 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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