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가 깃든 곳

이원복(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실장)

우리만이 아닌 너나없이 지구촌(地球村) 모두 전례가 드문 경제위기(經濟危機)에 직면해 있습니다. 인류 역사상 영원한 강자가 없듯 대국이라는 미국도, 가까운 일본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어렵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일방적으로 어느 한 쪽에서 도와줘 해결될 단계는 이미 지난 듯 합니다. “잘 부탁합니다.”로 해결될 성격이 아닌 서로가 서로에게 “우리 서로 함께 합시다.”로 가닥을 잡아야 할 것입니다. 상생(相生)만이 살 길입니다. 마치 검은 구름이 지구 전체를 에워싸 아직도 꽁꽁 언 차디찬 겨울 어둠에서 벗어나질 못하는 것 같습니다. 경제 구역의 봄날은 언제나 다가올지 마냥 막연합니다. 이에 위축되었으며 세한(歲寒)의 터널이 너무도 깁니다. 그러나 대자연의 운행(運行)이 늘 그러하듯 내려 가다보면 전환점(轉換點)은 반드시 있는 법, 우리는 그리로 향하고 있는 것이라 믿고 헤아려 봅니다. 모든 것이 끝이 있으니 질곡(桎梏)도 마지막은 있는 법 아니겠습니까? 봄날은 반드시 올 것이니 말입니다.
봄이 와서 꽃이 핀 것인지 꽃이 피어 봄이 온 것인지, 이와 같은 물음에 대해선 답이 망설여질 때가 있습니다. 둘 다 그럴듯해 하나만 강요된 선택이 주춤케 하는 난제(難題)의 핵심인지도 모릅니다. 여하튼 우리 삶의 여정엔 이와 같은 질문이 간혹 다가옵니다. 왜 사느냐는 물음도 같은 부류인 양 싶습니다. 당위성(當爲性)에 앞서 존재(存在)가 선행된 경우가 그러합니다. 경칩(驚蟄)이 지나니 매화 화신(花信)이 호남을 넘어 서울도 아파트 남벽 쪽엔 산수유가 노란 꽃망울을 터트렸고 매화들도 봉오리가 봉긋합니다. 물오른 버드나무 연두색 안개도 좋지만 자작나무 가지마다 늘어진 벌레 같아 보이는 것들이 꽃임을 아는 이들은 흔치 않은 것 같습니다. 아니 축 처진 어깨와 고개를 숙인 시선에 어찌 꽃을 볼 여력이 있으련가 되묻게 됩니다.
백화만발(百花滿發), 백화제방(百花齊放)이 가시화 될 시간이 멀지 않았습니다. 봄 처녀는 사뿐사뿐 아닌 씩씩하게 때론 성큼성큼 우리들에게 다가옵니다. 천하에 그득한 봄기운은 축 쳐진 마음과 정신에도 생기(生氣)를 부여할 것입니다. 눈부신 화사함을 뽐내는 식물들과 달리 고등동물은 춘곤(春困)을 느껴야함이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약동(躍動)하는 생명력으로 꽃 앞에서 현란 몸짓을 짓는 마냥 부산한 벌, 나비처럼 소생(蘇生)의 기쁨을 노래하고 춤추고 싶어집니다. 이를 행하는 게 돈이 든다거나 힘든 일은 결코 아닙니다. 행복해서 기쁨이 아닌 미소 지으며 기뻐하니 행복해지는 것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봄날 꽃망울을 터트린 꽃처럼 가녀려 보이지만, 마음을 밝고 환하게 하는 우리에게 있어 봄꽃 같은 존재가 다름 아닌 예술입니다. 텅 빈 가슴을 어루만지는 한 구절의 시(詩), 내면에 깃든 잠재력을 깨우는 웅혼한 소리인 음악, 축 처진 어깨에 새로운 힘을 솟아나게 해 독수리 활갯짓을 일으키는 춤사위, 피안(彼岸)에 이른 듯 별천지를 엿보게 하는 산수화, 짓누른 고뇌가 깃든 처절한 삶의 현실을 담아 고통의 느낌이 주는 카타르시스 등 예술은 정치나 경제와 무관할 수는 없으나 이들의 시녀(侍女)는 결코 아닙니다. 나름의 존재의 독자성(獨自性)을 지니며 나아가 정치와 경제에 힘을 주며 소생을 부여합니다. 아름다움은 스스로 빛나며 생명력이며 힘이기에 절망을 극복케 합니다. 그리고 결국 우리를 구원(救援)합니다. 봄을 향한 간절한 소망이 꽃을 피우듯...
위대한 예술은 소유자가 정해진 것이 아닙니다. 굳이 이야기 하자면 민족이나 국가, 시대를 초월해 인류에 귀속됩니다. 가장 지혜로운 이는 모든 이의 이야기에 듣고 자기 것으로 만드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이 어려운 시절 우리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인류의 예지(叡智)와 아름다움이 응축(凝縮)된 걸작과 지혜의 원천인 고전(古典)을 자주 만나야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전해주는 소리에 귀 기우려 지혜를 구하며 기(氣)와 힘을 받아야 합니다. 르네상스가 바로 이 같은 행위로 이루어진 것임을 우리는 압니다. 박물관(博物館)과 미술관(美術館), 도서관(圖書館)을 찾아야 합니다. 이곳들에 우리의 바람직한 미래를 담고 있습니다. 대자연의 봄기운을 몸 전체로 받고, 어느 시인이 읊었듯 예술을 통해 ‘죽음의 물 못이던 이 눈엔 생기를 가슴엔 사랑을’ 불붙게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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