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시험법안에 예비시험제도의 도입을 반대한다.

올해 3월에 전국 25개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이 개원함으로써 이제 우리나라는 기존의 사법시험과 사법연수원제도를 통한 법조인양성제도를 버리고 대학에서 실무와 이론교육을 통한 법조인을 양성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기존의 사법시험과 사법연수원 제도는 이른바 ‘고시’에 합격한 소수의 엘리트에 의해 법조의 배타적 독점과 동류의식 등 여러 가지 부작용을 낳았으며, 소수의 인원만 합격하고 대다수의 수험생은 낙방하는 시스템으로 운영됨으로써 소위 '고시 낭인'을 양산하여 국가인력을 낭비하였을 뿐만 아니라, 사법시험의 고난이도에 따라 대다수의 합격생들이 법학을 전공한 자로서 법학 이외의 다른 분야에 대한 전문지식과 대처능력이 뒤떨어진다는 비난을 받아 왔다.

따라서 소수의 합격생이 독점하는 법조가 아니라 전국의 각 대학에 설치된 로스쿨에서 철학, 심리학, 물리학, 컴퓨터공학, 기계공학, 의학 등 다양한 분야를 공부한 학부 전공자들이 이론과 실무를 공부함으로써 사회의 변천과 더불어 발생하는 다양하고 새로운 문제를 법적으로 처리할 능력을 갖춘 능동적이고 인간적인 법조 실무가를 양성하자는 취지에서 이른바 ‘과거시험’이나 마찬가지였던 기존의 사법시험제도를 포기하고 미국식 로스쿨을 도입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지금 국회에서 2012년부터 시행될 새로운 ‘변호사시험법’을 놓고 시험과목과 시험방식 그리고 이른바 ‘예비시험제도’의 도입을 둘러싸고 논란을 빚고 있다.
예비시험을 도입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로스쿨과정을 거친 학생들만 변호사시험을 볼 자격을 부여하는 것은, 로스쿨에 진학할 수 없는 경제적 약자에 대한 진입장벽으로 기능할 것이며, 직업선택의 자유와 공무담임권을 박탈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므로 학력제한을 철폐하고 로스쿨에 진학할 수 없는 가난한 학생들에게도 변호사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는 논리로 “예비시험제도‘를 도입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예비시험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로스쿨에서 기존의 법과대학에서 담당한 이론교육은 물론 기존의 사법연수원에서 담당한 실무교육을 받은 사람에게 변호사자격을 부여한다’라는 로스쿨의 도입취지를 근본적으로 훼손할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도입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만일 ‘예비시험’을 통하여 로스쿨을 거치지 않고도 변호사시험에 응시할 자격을 부여한다면, 로스쿨을 도입한 유명대학에서 모두 법학부를 폐지한 마당에 법학 이외의 학문을 전공한 졸업생들이 불과 100-200장에 불과한 예비시험 합격증을 따내기 위하여 신림동 고시원에 틀어 박혀 지금과 똑같은 ‘고시낭인’을 양산하게 될 것이다. 더욱이 ‘예비시험’에 합격한 후 변호사시험에 응시자격을 부여할 경우 로스쿨에서의 이론교육은 차치하고라도 실무에 대한 트레이닝을 전혀 받지 않은 사람들이 변호사가 되어 소송실무를 수행하는 웃지 못할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또한 기존의 로스쿨에 재학중인 학생들에게도 로스쿨 교육에 대한 부정적인 메시지를 줌으로써새로운 법조양성시스템으로 출범한 로스쿨 교육 자체를 형해화시킬 우려도 있다.
실무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에게 변호사가 될 기회를 부여하여 소송실무를 담당하게 하는 것은 의과대학이나 의학전문대학원에서 아무런 임상실험도 거치지 않은 사람들에게 의사자격증을 부여하여 수술실에 들여보내는 것과 다름 아니라는 점에서 커다란 우려를 자아낼 것이 분명하다.
변호사시험법에 ‘예비시험제도’를 도입하느니 차라리 로스쿨제도를 폐지하고 기존의 사법시험을 그대로 유지하는 편이 오히려 우리 사회의 기회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극단적인 견해도 그와 같은 우려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난한 농촌 출신인 필자 역시 경제적 약자에게 변호사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어 줘야 한다는 취지에는 전적으로 동감한다. 그러나 이왕 말 많은 로스쿨제도를 전면적으로 도입한 마당에 법조인이 되고자 하는 가난한 학생들에게 폭넓은 장학금 혜택을 부여함으로써 법조인의 길을 보장하는 것이 그나마 로스쿨을 통한 법조인력양성제도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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