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적한 시간여행

이원복(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실장)

바야흐로 삼복三伏이 낀 염천炎天, 피서여행이 제격인 휴가의 계절이기도 합니다. 여전히 어려운 경제상황은 선뜻 목표를 정하기 용이하지 않습니다. 음력 4월 15일부터 시작해 7월 15일이면 끝나는 스님들의 하안거夏安居처럼 아예 문을 걸어 잠그고 방콕을 택하는 이들, 두 시간을 때울 영화관을 찾는가 하면 대형서점에서 독서로 염장군과 씨름하는 이들도 적지 않을 것입니다. 여름이건 겨울이건 방학 때 책이 잘 팔리는 것은 같은 맥락일 것입니다. 피서지로 냉방장치 잘된 대형 쇼핑센터나 은행을 떠올릴 분들도 있을 겁니다. 다른 곳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강원도부터 제주도까지 도道마다 하나 이상이니 전국에 12곳이 있습니다. 북한北韓 국립박물관도 마찬가지로 한 도에 하나씩 있습니다. 이곳은 유물 관리 측면에서 일정온도가 요구되기에 제법 시원한 공간으로 뙤약볕이나 장마에도 전혀 걱정이 없습니다. 오후 6시까진 종일 머무셔도 무관하며 토요일은 영화도 볼 수 있고, 때론 음악회도 열립니다. 다름 아닌 복합문화기관으로 탈바꿈한 국립박물관이 바로 그곳들입니다. 한국 박물관 100주년을 맞아 올해는 연말까지는 입장료를 받지 않습니다. 서울의 경우도 기획특별전이 열리는 일정 공간을 제외하곤 무료입니다.
원추리[萱花]가 주홍색을 뽐내고 나라 꽃 연보라색 무궁화에 이어 배롱나무[木百日紅]가 붉은 꽃망울을 터트리고 연꽃이 만개한 시절이기도 합니다. 고도古都로 여행 중이라면 하루쯤은 가까운 국립박물관을 찾아 시간여행과 더불어 내일을 위한 숨고르기, 재충전의 시간을 갖는 것도 값진 일로 생각됩니다. 온고을 국립전주박물관에서는 ‘전북의 명품’(7.21-8.23)이 개최됩니다. 전북소재 박물관과 미술관 40여 기관이 소장한 대표성과 정체성을 지닌 것들이 두루 망라된 연합특별전입니다. 이 중에는 국보 제232호인 조선왕조에서는 처음으로 발급된 녹권이자 조선 태조 건국주역들의 공적을 파악하는데 귀중한 자료인 <의안백이화개국공신녹권義安伯李和開國功臣錄券>과 지난해 보존처리를 거치고 전주로 귀향한 보물 제931호인 <태조어진太祖御眞> 등 보물 3점, 시도유형문화재 3점 등 그야말로 지역을 대표하는 명품 200여 점이 한 자리에서 선보입니다. 선사시대부터 조선말까지 장기간에 걸쳐 이 지역의 역사와 미감美感이 다소곳 배인 유물로 구성된 1부 ‘전북인의 일상과 의례’와 자연과 이곳에 똬리 틀어 삶을 영위한 어질고 착한 사람들, 그들의 멋과 흥취 등 세 주제로 꾸민 2부 ‘색깔 있는 전북의 명품’으로 구성됩니다.
사실 학생은 물론 일반인들에게도 박물관이란 단어는 꽤나 묵직한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스스로 원해서가 아닌 숙제하기 위해 강제로 동원되거나 단체관람은 늘 부담을 느껴야 했고, 나아가 과거와 현실의 거리뿐 아니라 그것은 역사나 전통의 무게일지도 모릅니다. 박물관 탄생이 서구열강西歐列强 경우 제국주의 산물로 전리품戰利品 성격이 강했음도 부인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아울러 미국의 경우는 자신들의 짧은 역사와 함께 인류까지 범위를 넓혀 세계 문화유산을 아우르며 자연사까지 확장합니다. 다 그 나름의 이유가 있지요. 국립중앙박물관의 경우 주말이면 관람객이 1만 명을 웃돕니다. 지난 세기 박물관은 국가 정통성正統性의 상징인데 대해 오늘날은 국가 브랜드의 상징이자 미래를 키우고 담는 그릇으로 다방면에 걸쳐 새로움 창출의 보고寶庫로 그 역할이 기대됩니다.
이미 신문지면을 통해 아시겠지만 한국 박물관 100주년을 맞아 기념추진위원회가 결성되어 기증 기부 운동을 전개해 국내뿐 아니라 호주와 일본에서도 기증유물이 쇄도하고 있으며, 지난 5월 22일 용산 뮤지엄 콤플렉스 조성을 주제로 한 국제학술대회가 성황리에 개최되었습니다. 전국 국, 공, 사립, 대학박물관과 미술관 들이 금년 초부터 각종행사가 이어져 축제祝祭의 장을 펼칩니다. 이들과 더불어 빠트릴 수 없는 것이 국립중앙박물관의 기존 1층 상설전시실이 새롭게 바뀌는 점입니다. 십년 가까운 기간을 거쳐 2005년 가을 국제적으로 손색없는 규모의 당당한 매머드 건물에서 재개관한 국립중앙박물관은 1층 역사의 가로 좌우에 위치한 고고관考古館과 주제별로 구성된 역사관歷史館이 틀을 바꾸는 작업이 진행 중에 있습니다. 이미 고조선을 아우르며 고구려실을 개편했습니다. 이어 통일신라실과 발해실을 신설하고 고려실을 새로 꾸며 7월 24일 새롭게 문을 여니 이 날은 고려 건국 하루 전날입니다. 그리고 조선왕조 건국일에 맞춰 내년 8월 5일 조선실이 열리니 명실공이 통사적 흐름으로 환골탈태換骨奪胎 됩니다. 이로서 1층을 통해 선사시대부터 조선말에 이르기까지 일맥상통一脈相通한 우리 역사를 체계적으로 살필 수 있게 됩니다. 무더운 시절 피서의 일환으로 우리 민족의 성장과 발전 그리고 삶의 희로애락이 펼쳐진 박물관에서의 시간여행에 여러 분과 동행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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